선플 달다 돌연 악플…누구냐 넌, 두 얼굴의 헤비 댓글러

조민영,김나래,김성훈,나경연 2022. 12. 11.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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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때 다른 댓글…정치이슈서 극단적 돌변
특정 연령·소수가 지배한 댓글창…한계·모순 인지하고 봐야
이미지 제작 디자인러버스.


“XX 답 없다. 애들 뇌를 XXX XXXX(이하 욕설)”“삼가 고인에 명복을 빕니다”

두 문장은 모두 지난 10월29일 벌어진 이태원 참사 이후 네이버 뉴스 기사에 달린 댓글들이다. 한 기사는 참사 직후 한덕수 국무총리가 정부 공식 입장을 발표한 내용을, 다른 하나는 이태원 참사로 아들을 잃은 미국인 아빠의 사연을 다룬 것이었다. 둘다 이태원 참사 관련 기사였고, 시기도 10월 30일과 31일, 참사 직후라는 점에서 비슷했다. 무엇보다 두 댓글을 쓴 작성자는 같았다. 참사 희생자에 대한 지원 소식에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하던 이가 외국인 희생자에겐 애도를 표한 것이다. 이처럼 돌변하는데 24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20대 아들을 둔 어머니인 듯한 댓글러는 보육원 출신 청년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연 기사에 “아들 또래라 더 안타깝고 얼마나 외롭고 의지할 데 없이 큰 벽을 느꼈을지...”라며 마음 아파했다. 그러나 정치 댓글, 특히 자신과 직접 관련이 있을 법한 이슈 앞에서 돌변했다. 정권 교체가 이뤄지기 전인 지난 4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대책 관련 기사에선 “XX아, 아우 저 미친 민주당 XXXX” 등의 비속어를 거침없이 내뱉었다. 병역 관련 기사에도 적극 반응했고, 여성단체 등에 대한 거부감도 강하게 드러냈다.

그때 그때 다른 댓글…정치이슈서 극단적 돌변

국민일보는 2021년 1월부터 지난 6월까지, 그리고 이태원 참사 당일부터 11월9일까지 열흘 간의 네이버 정치·사회 섹션 기사 댓글을 분석하면서 댓글을 많이 쓴 ‘헤비댓글러’와 혐오 표현·욕설 등이 있는 댓글을 쓴 댓글러(이하 악플러)의 댓글 이력 일부를 추적했다.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이원재 교수팀에 의뢰한 빅데이터 분석 결과를 토대로 네이버 뉴스가 제공하는 ‘뉴스 댓글 모음’ 기능을 활용했다.

얼굴도, 이름도 모두 감춘 채 자유롭게 의견을 달 수 있는 온라인 포털 뉴스 댓글 속에서 전혀 다른 ‘두 얼굴’의 댓글러를 찾긴 어렵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로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통한을 다룬 기사에 서 유족을 냉소하고 비난한 댓글러는 몇 달 전 제주도 남방큰돌고래가 이미 죽은 새끼를 자기 등에 업고 다니는 모습이 포착됐다는 기사에선 “엄마 고래의 모성이 눈물겹다”며 따스한 공감을 남긴 사람이었다.

한 댓글에선 “자신과 무관하고 정치성향이 다르다고 악플다는 사람들아, 그러는거 아니다”며 악플러를 꾸짖은 사람이 불과 9시간 뒤 다른 기사 댓글창에선 “입만 열면 좌파 **거리는 것들은 좌파 우파 개념은 알고 지껄이냐”며 정치성향이 다른 이들을 비난하기도 했다.

젠더 갈등 이슈에서 여성을 비난하는 댓글을 쓰면서 “나도 여자”라고 언급한 댓글러가 다른 기사 댓글에선 여성을 ‘누나’라고 부르는 등 성별을 마음대로 바꾸는 경우도 있었다.

댓글러의 돌변은 정치 기사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사회 섹션의 미담 기사나 안타까운 사연에 ‘선플(착한 댓글)’을 단 사람이 정치 뉴스에선 상대 진영을 향한 무차별적인 비난이나 비아냥, 혐오를 쏟아낸 사례가 매우 흔했다.

다양한 주제 다루는 뉴스에 가볍게 반응한 댓글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김예란 광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11일 “포털 뉴스에 댓글을 다는 사람이 누구이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봐야 한다”면서 “이들은 인터넷에서 그 정도의 옷 바꿔입기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인식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 특성상 주제가 매우 다양한데, 댓글은 그때 그때 가볍게 태도를 바꿔 반응해도 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개인이 정치·사회적으로 여러 맥락에 맞닿아 있어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선 자신의 신념과 달리 이익에 따라 반응하기도 한다.


네이버 뉴스 댓글 작성자의 세대적 특성도 무관친 않다. 국민일보가 최근 3년간(2019~2021년) 네이버 댓글 사용자 관련 통계를 분석했을 때 40~60대 남성이 쓴 댓글이 53%로 절반을 넘었다. 김 교수는 이처럼 주 이용층인 중장년층이 정치에 관심이 많으면서 동시에 휴머니즘이나 인도주의적 온정주의, 가족주의 등에 더 적극 반응하는 특성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연령대가 높은 세대가 선행·미담 기사를 선호하는데 정치에서는 본인의 관심사나 성향에 따라 반응하니 격차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특정 연령·소수가 지배한 댓글창…한계·모순 인지하고 봐야

‘두 얼굴의 댓글’ 현상은 댓글창의 한계를 보여주는 증표이기도 하다. 포털플랫폼 뉴스서비스 등을 연구해온 김위근 퍼블리시 최고연구책임자는 “댓글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다중인격은 뉴스 댓글이 아무것도 설명해줄 수 없다는 걸 보여준다”면서 “댓글의 내용은 어떤 의견이라기보다 특정한 지향점을 가지고 기사에 따라 즉각적으로 보이는 반응에 가깝다”고 꼬집었다. 댓글창에 여론이나 공론장으로서의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2021년1월~2022년6월 사이 정치 혐오 댓글 상위 10대 헤비댓글러. 해당 댓글러가 쓴 댓글 중 가장 많은 순공감을 얻은 댓글 사례.

포털 뉴스를 이용하는 사람에 비해 댓글을 쓰는 사람은 극소수이고, 익명성에 기대 쉽게 왜곡될 수 있다는 점도 댓글창에서 보이는 모순의 원인으로 꼽힌다. 실제 두 얼굴을 보인 댓글러들은 수백개에서 많게는 수만개의 댓글을 쓴 ‘헤비댓글러’다. 그런데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상위 100대 헤비댓글러의 대표적 댓글(순공감을 가장 많이 받은 댓글)을 뽑아본 결과는 의심스러웠다. 이해하기 힘들게 단어가 나열되고 문장 구성이 어색해 외국인이 번역기를 돌렸거나 로봇이 쓴 게 아닌가 의심되는 경우도 많았다. 정치 혐오가 포착된 댓글 중 상위 10대 헤비댓글러가 쓴 댓글엔 비방과 욕설이 나열됐을 뿐이다. 양극단으로 나뉘어 상대를 공격하고 비방하는 것 자체가 목적인 댓글이 많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처럼 소수가 쓰는 댓글에 영향을 받는 이는 많다는 점이다. 기사를 읽고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운 어린 학생 등은 댓글을 통해 의견을 정립하려는 경향이 있다. 반면 매우 확고한 극단적 사고를 가진 이들은 댓글을 보고 다시금 편을 가른다. 전문가들은 뉴스 자체뿐만 아니라 수용자들이 뉴스에 달린 댓글을 어떻게 걸러서 보고 판단할 지 교육하는 ‘댓글 리터러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혐오 발전소, 댓글창’ 시리즈의 상세한 데이터와 사례는 인터랙티브 페이지(https://westophate.kr)에 게시됩니다.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조민영 김나래 김성훈 나경연 기자 my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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