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반도체 보조금 경쟁도 괜찮다" 美도 변하게 한 中 위협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반도체 제조업 부활을 위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은 국가안보 관점에서 바람직하며 그로 인해 촉발될 수 있는 한국·일본·유럽연합(EU)의 보조금 경쟁 또한 나쁜 일은 아니라고 미국 전문가가 말했다.
케빈 울프 전 미국 상무부 수출통제 담당 차관보는 지난 5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코트라와 워싱턴특파원단이 진행한 공동 인터뷰에서 "(국가 간 반도체) 보조금 경쟁은 거의 확실하게 일어날 것"이라면서 "하지만 이 핵심 기술과 관련해 중국의 행동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그것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울프 전 차관보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미국의 수출통제 체계를 세운 전문가이며, 지금은 유명 로펌인 애킨 검프에서 수출통제 및 외국인투자규정 자문 파트너로 일하고 있다.
울프 전 차관보는 국가안보 관점에서 중국 대응에는 두 개의 전략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나는 중국이 특정한 기술을 얻지 못 하게 하는 '멀리 하기 전략(Keep Away Strategy)'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을 '더 빨리 뛰게 하는 전략(Run Faster Strategy)'이다. 수출통제는 대표적인 '멀리 하기 전략'이고, 국가 지원 산업 정책은 '더 빨리 뛰기 전략'의 하나다.
울프 전 차관보는 '반도체 및 과학법'에 따라 520억 달러를 반도체 산업에 투자하는 바이든 행정부 정책으로 유럽과 일본, 한국에서 보조금 지원 경쟁이 일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전망했다. 역사적으로 수년간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 주류는 보조금이나 산업 정책을 탐탁잖게 여겼다.
울프 전 차관보는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면서 "중국 정부가 반도체 산업에 엄청난 양의 인위적인 보조금을 쏟아붓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옛 시스템에만 의존하고 산업 정책을 펴지 않는 것은 국가안보 목적에서는 해롭다"고 주장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과 한국 등 동맹이 중국의 반도체 생산에 의존하게 된다는 이유를 들었다. 울프 전 차관보는 이에 따라 "만약 중요한 핵심 부품 제조를 중국에 의존하지 않고 동맹 간, 한국, 유럽, 미국, 일본이 자체 역량을 강화한다면 보조금 경쟁이 반드시 나쁘다고 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과거 아시아 국가들의 국가주도 산업정책을 비판하던 미국이 이젠 입장을 바꿔 거부감이 별로 없다는 전문가의 시각을 보여준다. 국가 지원으로 반도체 등 첨단산업이 급성장한 중국에 맞서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인식이다.
울프 전 차관보는 한국 반도체 기업이 중국의 첨단 반도체 개발을 돕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미국에 주면 중국 공장 운영을 위한 미국 반도체 장비 반입 1년 유예 기간이 연장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울프 전 차관보는 "한국 기업들이 한국이나 미국, 다른 제3국 등 중국 밖에서 대안 생산처를 찾는 동안 중국에서 계속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도록 미국 정부와 장기 합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기업이 내부 절차와 통제장치를 마련해 정교한 기술은 한국에 남기고 중국에 이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한국과 미국 정부가 갖게 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 이런 합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 10월 미국 상무부는 자국 기업이 중국 기업에 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장비를 판매하지 못하게 하는 수출통제를 발표하면서 이 조치로 영향을 받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대만 TSMC의 중국 공장에는 1년간 적용 유예 기간을 줬다.
울프 전 차관보는 "1년 유예는 미국 정부가 대(對)중국 수출통제와 관련한 장기 정책을 어떻게 구상할지, 또 한국 등 다른 동맹과 어떻게 협력할지 결정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라면서 동맹들이 미국의 이런 노력에 얼마나 호응하고, 자체적인 수출통제 조치를 도입할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다만,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통제는 일부 최첨단 반도체 칩에만 적용되며 범용 기술을 활용한 반도체 투자나 교역은 규제하지 않으므로 동맹과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출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park.hy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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