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새로움을 앞에 두라는 한 시인의 문장을 간직"
◇제41회 중앙시조신인상
맨발에게
-박화남
아내가 씻어준다는 남자의 낡은 두발
구두 속의 격식은 언제나 무거웠다
이제껏 바닥만 믿고
굳은살로 살았다
손처럼 쥘 수 없어 가진 것이 없는 발
중심을 잡으려고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바닥의 깊이를
모른다는 그 남자
하루가 감아온 발을 물속에 풀어낸다
뒤꿈치 모여있는 끊어진 길 닦으면서
아내는 출구를 찾아
손바닥에 새긴다
바닥을 벗어나려고 지우고 또 지워도
이 바닥이 싫다고 떠난 사람이 있다
맨발은 그럴 때마다
저녁이 물컹했다
■ ◆박화남
「
경북 김천 출생. 2015년 중앙신인문학상 등단. 시집 『황제펭귄』. 2022년 천강문학상 우수상 수상.
」
언제나 새로움을 앞에 두라는 한 시인의 문장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집 앞에 느티나무 앙상해지면 어떤 빛깔로도 익숙해질 줄 알았는데 시 앞에 서면 여전히 막막해집니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하는 맨발처럼 무작정 오래 껴안고 있다 보면 나도 모르는 출구가 보입니다. 그때의 기쁨으로 다시 시 앞에 섭니다.
처음엔 혼자만의 색깔로 걷는 낯선 길이 좋았습니다. 걸음을 옮길수록 내 속은 비워져 누군가에게 가닿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의 시가 한 사람에게라도 머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잎을 떨군 나무들의 그 끝에서 들은 수상 소식은 그렇게 맨발로 걸어가도 괜찮다는 대답같이 느껴져 기뻤습니다.
온몸으로 찬바람 맞으며 직지천을 다녀왔습니다. 언제나 푸른 소나무는 겨울이 가지치기를 하는 시기인가 봅니다. 곁가지를 쳐내고 알맞게 정리되어 가는 모습이 몇 번의 고심 끝에 스스로를 덜어내는 시인의 모습과 겹쳐 보입니다. 추위에 더 빛나는 소나무 한 편을 감상하며 시 잘 쓰는 법을 물었을 때 쉬지 않고 꾸준히 쓰면 된다는 선배 시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용기를 갖게 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시조를 아껴주시는 중앙일보 관계자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맨발에게 또 다른 출구가 될 것 같습니다. 중앙시조신인상의 무게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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