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날두 울리고 4강 신화 썼다…모로코 선수 14명의 비밀
아프리카 국가 최초로 4강에 오른 모로코는 '다국적군'이다. 복수국적자들을 대거 귀화시켜 강한 팀을 만들었다.
모로코는 11일 오전 0시(한국시각) 카타르 도하의 알투마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카타르월드컵 8강전에서 포르투갈에 1-0으로 이겼다. 모로코는 1986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아프리카팀 최초로 16강에 오른 데 이어 36년 만에 4강까지 오르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이번 월드컵에선 역대 최다인 137명의 귀화 선수가 출전했다. 가장 많은 나라가 모로코다. 출전선수 26명 중 절반이 넘는 14명이 귀화 선수다. 대다수가 프랑스, 네덜란드, 스페인 등에서 태어난 이민자 자녀다.
로맹 사이스, 소피앙 부팔(이상 프랑스), 소피앙 암라바트(네덜란드), 무니르 모하메디(스페인), 아나스 자루리(벨기에), 압델하미드 사비리(독일) 등 다양한 나라에서 자라난 선수들이 모였다. 이번 대회 내내 뛰어난 선방을 펼친 골키퍼 야신 부누는 캐나다에서 태어났다.
모로코 리그에서 뛰는 선수는 겨우 2명에 불과하다. 21명이 유럽 리그에서 활약중이다. 유세프 엔네시리(세비야)처럼 모로코 태생이지만 유럽에 진출한 선수도 많다. 아프리카 팀이라기보단 유럽 국가라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스페인과 프랑스 등에 사는 모로코인들은 포르투갈전 승리에 환호하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벨기에에선 폭력 사태가 일어나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이들이 모로코 국기 아래로 모인 건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서였다. 태어난 나라는 축구 강국이라 대표 선수가 되기 어렵다. 반면 모로코로선 이 선수들이 합류하면 전력에 큰 보탬이 된다. 그래서 연령대별 대표팀에서 뛰다 성인 대표팀을 위해 국적을 바꾸는 경우도 있다. 잉글랜드 첼시에서 활약중인 미드필더 하킴 지예시(29)가 대표적이다.
모로코는 1960년대부터 노동자들이 네덜란드로 떠났다. 지예시의 부모도 모로코 출신이다. 네덜란드의 작은 도시 드론텐에서 태어난 지예시는 20세, 21세 이하 네덜란드 대표팀에 발탁되어 뛰었다. 하지만 성인 대표팀엔 부름을 받지 못했고, 2015년 모로코 대표팀을 택했다. 2018 러시아월드컵 이후 바히드 할릴호지치 전 감독과 불화로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지만, 다시 돌아와 4강 신화를 함께 이뤘다.
모로코의 귀화파 선수들은 '오일 머니'로 표현되는 중동의 귀화 선수들이나 중국으로 귀화한 브라질계 선수들과 다른 점이 있다. 바로 언어와 문화다. 모로코는 아랍어를 쓰지만, 프랑스 식민지배를 받아 프랑스어도 공용어로 쓰인다.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둔 스페인어도 널리 통용된다. 게다가 유럽으로 떠난 이민자들은 무슬림 문화와 관습을 이어간다. 자녀들도 이슬람권 문화에 익숙하다. 귀화를 했지만, 의사소통이나 단합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스페인에는 약 90만 명의 모로코인이 산다. 이슈라프 하키미도 마드리드에서 태어나, 8살 때 레알 마드리드 유스팀에 들어갔다. 그는 잠시 스페인 연령별 대표팀에 소집됐으나 17세 때부터 모로코 대표팀을 선택했다. 하키미는 "스페인 대표팀에선 집에 있는 것과 같은 편안함을 느끼지 못했다. 모로코 대표팀에선 모로코인다움이나 아랍 문화를 느낄 수 있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공교롭게도 모로코의 준결승 상대는 프랑스다. 프랑스는 '무지개 팀'으로도 불린다. 이민자 자녀 비중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다양한 인종, 문화 때문에 시끄러울 때도 많지만 축구라는 이름으로 모여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2번(1998년, 2018년)이나 들어올렸다. 15일 새벽 4시 열리는 이 경기는 다민족, 다문화 국가가 늘어나는 21세기를 축약한 한 판이 될 듯하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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