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뮤비만 심의"…K팝 애써서 구글 좋은 일만 시킨다고? 왜

중견 A 그룹은 최근 케이블 방송국에 뮤직비디오(뮤비) 심의를 신청했다가 ‘입구 컷’을 당했다. 문의해보니 ‘대기업 뮤비가 아니면 심의 접수를 받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결국 이 그룹은 등급 받기를 포기하고 뮤비를 유튜브 채널에 올리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글로벌 플랫폼인 유튜브엔 뮤비 등급 심의가 없어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똑같은 콘텐트를 국내 음악 플랫폼에 올리는 것은 불법이다.
뮤비 등급 받기, 그 ‘좁은 문’
최근 A그룹 같은 경우가 늘고 있다. 심의 받기가 어려워지면서 아예 포기하는 경우가 속출하는 것이다. 뮤비 심의는 방송국과 멜론 등 국내 플랫폼에 올리기 위해선 꼭 필요하다. SBS MTV·Mnet(엠넷)·MBC MUSIC 등 케이블 채널 3곳이나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에 신청서를 제출해야 연령 고지(전체·12·15세 관람가, 청소년관람불가, 제한상영가 등)를 완료한 심의를 받을 수 있다. 4곳 중 한 곳에서 심의를 받은 뒤에야 국내 온라인 플랫폼에 노출 가능하다. 영등위는 사업자상 ‘음반영상물제작업’ 항목에 포함된 사업자만 회원 가입을 받으며, 1만원 수준의 심의료를 낸다. 영등위에선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가요 기획사들은 대체로 케이블 방송국 심의를 이용해 왔다.

지상파 3사는 별도의 음악 영상 심의 창구를 운영한다. 각 사마다의 심의 방식이 다르다. MBC에서 심의를 받았더라도, KBS나 SBS에 송출하기 위해선 각각의 심의가 필요하다. 방송국마다 자료 화면 용도라도 송출할지 모르니, 기획사는 케이블 방송국 혹은 영등위 심의 외에도 지상파 3사 심의를 완료하는 것이 관례였다. 뮤비 하나에 적어도 4번의 심의를 해 두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7월부터 케이블 방송국 심의 통과의 문이 갑자기 좁아졌다. MBC MUSIC이 더는 심의 업무를 하지 않기로 하면서다. 엠넷과 SBS MTV는 심의 대상 뮤비를 가려 받고 있다.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이하 협회)는 “7월 1일부터 대형 기획사 이외에는 케이블 방송국에 관련 접수를 할 수 없게 됐다”고 성명서를 냈다. 가요관계자에 따르면 케이블 방송국 심의는 ‘심의했던 이력이 있는 회사’, ‘투자사 혹은 관계사’ 위주로만 받는 구조로 바뀌었다.

자연스레 심의를 받으려는 뮤비는 모두 영등위로 몰리고 있다. 이러다보니 심의에 최대 2~3개월까지 걸리는 사례도 등장했다는 게 협회 측 주장이다. 이에 대해 영등위 등급분류본부 영상팀 강성우 팀장은 “방송사가 뮤직비디오 심의를 제한하면서 풍선효과처럼 우리 위원회로 몰린 것은 사실이나 그럼에도 위원회는 2~3일 밖에 소요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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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엔 심의 불필요, 멜론엔 심의 요구
심의 받기가 어려워지면서 심의 없는 유튜브 직행이 증가하고 있다. 인디 가수 음반을 제작한 한 관계자는 “요즘엔 적어도 3000만원은 들여야 퀄리티 있는 뮤비가 나오는데 그렇게 돈 들여 찍고도 심의를 안 받아주거나 심의 기간을 예상할 수 없어 포기하고 그냥 유튜브에 올린다”고 말했다. 아이돌이 아니면 어차피 방송 탈 일이 없다는 점도 이런 경향을 가속화했다.
여러모로 현 뮤비 심의제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유튜브에 풀린 콘텐트는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에 특별한 제약 없이 유통된다. 유튜브 등 해외 플랫폼의 성장에 K팝이 막대한 기여를 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애써서 ‘구글 좋은 일이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협회는 “결과적으로 문화 콘텐트 측면에서 국가적 손실이다. 국내 콘텐트가 해외 플랫폼을 통해서만 유통되고 활성화되는 결과는 절대 국내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협회는 현 심의 창구를 시스템화 하는 한편 장기적으로 심의제를 폐지 해야한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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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비 심의 폐지 논의 시동
현재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올라오는 콘텐트는 영상물 자체등급분류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뮤직비디오는 고정된 플랫폼이나 특정 OTT에 올라가는 형태가 아니라 관계 부처의 다양한 논의가 필요하다. 협회 관계자는 “각 부처에서의 고충을 이해하고 있으나 디지털 시대에 방송사마다 제각각인 절차 및 기준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 심의 폐지 및 접수 단일화 시스템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국회엔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이 발의한 관련 법안이 계류 중에 있다. 김 의원실 측은 “BTS, 블랙핑크 등 K팝 음악이 한류의 대표적 산업으로 자리잡았고 음악산업의 핵심인 뮤직비디오와 관련한 규제를 완화하고 지원을 확대하는 산업 진흥차원의 제도정비가 시급하다. ‘뮤직비디오 하이패스법’ 개정안 통과에 노력과 관심을 기울일 것”이라고 앞서 밝혔다.

황지영 기자 hwang.jee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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