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1st] '8강만 두 번' 치치, 삼바축구에 남긴 것은

김정용 기자 2022. 12. 1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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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치 감독(브라질). 서형권 기자

[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치치 감독의 브라질은 카타르 월드컵 우승후보 1순위라는 평가와 달리 8강에 그쳤다. 치치의 브라질은 '역대 어느 시기보다도 유럽화된 브라질'로 요약할 수 있는 팀이었다.


9일 오후(현지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시티 스타디움에서 2022 카타르 월드컵 8강을 가진 크로아티아가 브라질을 꺾고 4강 진출에 성공했다. 연장전까지 1-1로 팽팽했지만 승부차기에서 크로아티아가 4-2로 꺾고 다음 라운드로 향했다. 크로아티아와 아르헨티나가 4강에서 격돌한다.


2016년 부임한 치치 감독은 두 차례 월드컵에서 8강에 그쳤다. 브라질은 21세기 첫 월드컵이었던 2002 한일 대회 우승 후 계속 결승 진출에 실패했는데, 그 횟수는 이번 대회까지 5회로 늘었다. 브라질이 5회 연속 결승 진출에 실패한 건 1970~90년대에 이어 두 번째다.


브라질에 있어 두 번째로 큰 대회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1회 우승, 1회 준우승으로 그럭저럭 성과를 냈다. 이는 2010년대 들어 8강 2회, 조별리그 탈락 1회로 심각하게 부진했던 것에 비하면 확실히 개선된 성적이다. 종합적으로 볼 때 성공했다고 볼 순 없는 성적이었다.


▲ 치치식 브라질의 세 가지 '유럽화'된 특징


치치 감독은 역대 브라질 감독과 다른 두 가지 전술적 특징을 보여줬다. 가장 눈에 띄고, 가장 오래된 특징은 전방 압박이다. 치치 감독이 등장한 시점은 가브리엘 제주스 등 브라질 스트라이커들도 유럽형으로 변모하던 시기다. 탁월한 드리블이나 상대 허를 찌르는 득점 감각은 부족한 대신 팀 플레이에 능하고 전방압박을 열심히 하는 공격수들이다. 이번 대회에서 네이마르 주위를 둘러싼 히샤를리송, 비니시우스, 하피냐 모두 압박과 수비가담을 열심히 한다는 특징이 있었다. 슈퍼스타 네이마르조차 어느 정도는 수비 가담을 수행하는 선수였다.


이는 역대 어느 브라질에서도 보기 힘든 특징이었다. 1970년대 이후 브라질식 4-2-2-2가 정착되면서, 브라질 축구는 둘 중 하나였다. 어떤 나라보다도 공격적인 자신들만의 축구를 밀어붙이거나, 더 수비적인 선수를 기용해 선수비 후역습을 감행하는 것이었다. 보통은 공수 균형을 신경 쓸 때 성과가 났다. 공격적인 선수를 우겨넣은 1982년이나 2006년 대표팀은 화려하지만 실속이 부족했다. 반면 4-2-2-2의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 사실상 수비형인 마지뉴를 넣었던 1994년, 아에 스리백으로 전환했던 2002년에는 우승했다. 하지만 스트라이커인 호마리우, 베베투, 호나우두, 히바우두 등에겐 수비 부담이 거의 없었다.


치치는 부임 직후부터 유럽식 '전원수비'를 전면 도입했다. 그 점이 가장 위력을 발휘한 경기가 16강 대한민국전이었다. 브라질은 체력적으로도 한국보다 우월한 상황에서 압박의 속도, 공을 탈취한 뒤의 공수 전환 속도에서 한국을 압도했다. 클럽 축구에 비유하면 마치 위르겐 클롭 감독의 팀처럼 보이는 전략을 브라질이 썼다.


이번 대회에서 두드러진 두 번째 특징은 풀백들의 공격 가담을 자제시키고, 심지어 센터백을 측면수비에 배치한 것이다. 브라질 윙백은 어느 나라보다도 공격력이 탁월하고, 이를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 오랜 상식이었다. 하지만 다른 포지션에 비해 윙백의 클래스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치치 감독은 수비적인 선수들을 선발해 배후를 지키는 데 중점을 뒀다.


대회 중 왼쪽 풀백들이 줄부상 당하자 멀티 플레이어 다닐루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시키고, 오른쪽 수비를 원래 센터백인 에데르 밀리탕에게 맡긴 건 치치식 실용주의의 상징적인 조치였다. 186cm 밀리탕은 두 주전 센터백보다도 키가 큰 선수다. 측면 공격력이 약해지더라도 측면에 센터백을 세우는 건 지난 두 대회에서 유럽팀이 우승할 때 보여준 공식이다. 2014년 독일은 베네틱트 회베데스, 2018년 프랑스는 뱅자맹 파바르 등 센터백 성향의 장신 선수를 기용해 효과를 봤다. 치치 감독은 브라질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오버래핑 대신 유럽 국가들의 우승 패턴을 따른 셈이다.


심지어 크로아티아전에서는 상대 중원이 더 강하다는 걸 인정한 듯, 멀티 플레이어인 다닐루가 풀백 자리에서 중원으로 전진해 제 3의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을 겸하게 해 소위 '인버티드 풀백'을 활용했다. 이때 브라질의 나머지 세 수비수가 스리백으로 전환하는 듯한 모습도 있었다. 유럽 클럽들의 전술 운용을 많이 참고한 모습이었다.


▲ 자충수가 된 지나친 유럽화, 다음 감독의 선택은?


치치 감독의 유럽식 축구 도입은 선수 구성 때문이기도 있었다. 브라질은 지긋지긋한 스트라이커 기근에 시달리던 팀이다. 한동안 주전감 공격수가 없어 루이스 파비아누, 프레드 등 과거에 비해 기량이 떨어지는 스트라이커를 기용했다. 치치 감독은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고, 네이마르를 공격의 중심으로 세우면서 그 보좌 역할을 하는 제주스나 히샤를리송을 전방에 배치했다. 또한 월드컵을 앞두고 비니시우스 주니오르의 기량이 급성장하자 공격 숫자를 한 명 늘리는 유연함도 보였다. 풀백 역시 갈수록 수비적인 조합이 된 건 마르셀루와 다니 아우베스의 노쇄화 등 적임자의 부족 때문이었다.


하지만 풀백 운용은 결과적으로 실패였다. 크로아티아 상대로 브라질은 일방적인 공세를 퍼부었지만 상대의 혼을 충분히 빼놓지 못했는데, 오버래핑 부족이 점점 한계를 드러냈다. 시간이 갈수록 브라질 공격이 답답해지자 좌우 풀백이 전통적인 윙어 역할까지 해줘야 했다. 이때 오른발잡이 다닐루가 오버래핑해 왼발로 부정확한 크로스를 올리기도 하고, 밀리탕이 공격에 가담했다가 공을 빼앗기는 등 공격이 부자연스러웠다. 치치 감독은 전문 레프트백 알렉스 산드루의 투입을 준비한 뒤에도 차일피일 시간을 끌다 연장전 후반에야 넣었다.


다음 브라질 감독이 '유럽화' 흐름을 뒤집고 다시 브라질식 축구로 회귀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그러려면 전문 스트라이커와 파괴력 있는 윙백의 기근 현상을 해소해야 한다. 브라질 선수들이 유럽 무대에서 뛰느라 먼저 유럽화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모은 브라질 대표팀 역시 갈수록 유럽팀처럼 변하는 건 피치 못할 현상일지도 모른다.


사진=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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