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아프리카에 ‘건물 기부’ 공세를 펼치는 속내 [김규환의 핸디 차이나]

김규환 2022. 12. 10.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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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8년 아프리카 40여개국 186개 정부 건물 신축·개조
아프리카국가·국민들에 환심 사고 영향력 확대가 주요 이유
광물·원유 등 천연자원을 선점하기 위한 자원외교에도 도움
건물공사 중 해킹 설비 몰래 심어 정보 빼갔다는 의혹 불거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1월29일 중·아프리카협력포럼(FOCAC) 장관급 회의 개막식에서 화상 연설을 하고 있다. ⓒ 신화통신 홈페이지 캡처

지난 4일 아프리카 중서부 나이지리아의 수도 아부자. 서부 아프리카의 경제블록인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의 청사를 건립하기 위한 공사가 첫 삽을 떴다. 1975년 5월 라고스협약에 따라 서부 아프리카 15개국의 경제통합을 목적으로 설립된 ECOWAS는 아부자에 본부를 두고 있다.


이날 기공식에 참석한 무함마두 부하리 나이지리아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중국 기업에 의해 지어질 ECOWAS 청사는 우리의 집이자 우리를 결집하는 장소가 될 것"이라며 “이번 프로젝트는 ECOWAS에 대한 중국 헌신의 상징”이라고 중국을 추켜세웠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도 “ECOWAS 청사가 완공되면 아부자 시내 세 곳에 나뉘어 있던 청사를 한 곳으로 모을 수 있게 돼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된다”고 거들었다.


중국이 아프리카 국가들에 ‘건물 기부’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중국은 기회만 닿으면 아프리카 국가에 대통령궁 또는 국회의사당 등 상징적인 건물을 무상으로 ‘삐까번쩍하게’ 지어주고 있는 것이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아프리카 남동부의 짐바브웨는 중국의 무상원조 2억 달러(약 2650억원) 규모가 투입된 국회의사당 청사를 내년 초 마무리해 정식 개관할 예정이다. 짐바브웨 국회는 그동안 수도 하라레 중심가에 있는 의사당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 의사당은 19세기 영국 식민지 시절 건설한 탓에 350명의 의원과 보좌진을 수용하기에 턱없이 비좁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새 국회의사당은 하라레에서 북서쪽으로 18㎞ 떨어진 햄든산 정상에 있으며 3만 3000㎡(약 9983평) 부지에 6층과 4층 건물 두 동으로 구성됐다. 짐바브웨 정부는 하라레의 혼잡도를 줄이기 위해 햄든산 지역에 의사당 등 주요 기관을 이주 시킬 계획이다. 100석 규모인 현 의사당을 본회의장과 의원실, 사무공간 등을 갖춘 650석 규모로 넓고 크게 지은 것이다. 에머슨 음낭가과 짐바브웨 대통령은 마무리작업 중인 새 의사당을 찾아 “짐바브웨와 중국의 전략적 동반관계와 형제애 덕분에 새롭고 웅장한 의사당 건설이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2억 달러를 들여 준공한 짐바브웨의 새 국회의사당 전경. ⓒ AP/연합뉴스

중국은 앞서 2014년에도 하라레에 건설비 9800만 달러가 들어간 짐바브웨 국립국방대학의 건립을 지원했다. 이 덕분에 중국은 짐바브웨의 공항 현대화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2012년에는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2억 달러를 들여 아프리카 55개 국가들의 모임인 아프리카연합(AU)의 본부 청사를 건설했고, 2015년에는 아프리카 수단의 대통령궁을 지어줬다. 2018년엔 3460만 달러를 쾌척해 세네갈 흑인문명박물관 건립했고, 2019년에는 2200만 달러를 들여 부룬디에 대통령궁을 건립해 넘겨줬다.


올 초에는 아디스아바바에 53층짜리 상업은행 건물이 완공돼 문을 열었다. 건물 높이가 209m에 이르는 동아프리카 지역 최고층 빌딩이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중젠(中建)그룹이 코로나19의 산발적 대유행과 현지 정세불안 등 악재에도 어려움을 극복하고 고품질의 임무를 완수했다”며 “이 프로젝트는 에티오피아에서 3000여개의 일자리를 제공했으며 양국간 우호의 고리가 됐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지난 5월 말에는 잠비아에 국제회의센터(케네스 카운다 인터내셔널 컨퍼런스센터)를 지어 양도했다. 중국은 현재 아디스아바바에 8000만 달러를 투입해 아프리카 질병통제예방센터 본부 청사도 건설 중이다.


중국은 그간 아프리카를 겨냥해 경제력을 이용한 금권 외교활동을 활발히 펼쳐왔다. 중국이 ‘건물 기부’하는 이면에는 아프리카 저개발 국가들에 상징성 있는 최신식 공공건물이나 랜드마크를 건설함으로써 각국 정부와 국민들의 환심을 사고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2000년 중국·아프리카협력포럼 출범 이후 본격화됐다. 미국 국방대 아프리카전략연구센터에 따르면 중국은 2000년부터 2018년까지 아프리카 40여개국에서 186개의 정부 건물을 신축하거나 개조한 것으로 집계됐다. 폴 난툴랴 국방대 아프리카전략연구센터 연구원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아프리카인들은 (중국이 지어준) 건물에 들어설 때마다 중국의 존재감을 느낀다”며 “중국은 자신들이 아프리카에 존재하고, 아프리카 정부들과 연대하는 지속적인 파트너라는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2019년 중국이 지어 선물한 부룬디 새 대통령궁. ⓒ 연합뉴스

특히 중국은 아프리카에서 건물을 건설할 때 무상으로 지어주거나 때로는 무이자 대출이나 보조금을 지원한다. 그런데 중국의 건물 기부 대상이 대통령궁이나 총리 관저, 의회 건물, 외교부 청사, 군·경시설 등 각국에서 상징성을 갖는 건물이다 보니 각인효과가 크다. 전문가들은 이를 ‘초상화 외교’(portrait diplomacy)라고 표현한다.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중국의 긍정적 이미지를 심어주는 효과가 매우 크다는 설명이다.


데이비드 신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중국은 2019년 부룬디에 2200만 달러 규모의 대통령궁을 선물했고, 2021년에는 케냐의 새 외교부 건물 건립에 3800만 달러의 보조금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이는 특별히 비용을 많은 들이지 않고 호의를 베풀면서 중국 정책에 대한 아프리카 관료들의 협력을 보장 받으려는 노력”이라고 분석했다.


광물과 원유 등 현지의 풍부한 천연자원을 선점하기 위한 자원외교의 일환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중국은 2000년대 초부터 아프리카 국가들과 정상외교를 통해 아프리카산 원유·가스 수입의 길을 열었다. 2004년에는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국가주석이 가봉·알제리·이집트 등을 순방하는 동안 중국 국유기업인 중국석유천연가스공사(CNPC)는 세 나라와 장기 원유 도입계약을 맺고 유전 탐사계약을 체결하는 등 일찌감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의 건물 기부 활동은 중국 기업이 자재와 인력 대부분을 조달하는 식이어서 아프리카 현지에 경제적 파급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짐바브웨 국회의사당의 경우 중국 정부가 건설비 2억 달러 전액을 지원해 3년 반 동안 중국인 기술자 500명을 데려 왔다. 아프리카연합 청사 건설 당시도 건설노동자를 데려온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주요 자재와 실내장식품까지 중국에서 공수해왔다.


철권통치하는 독재국가를 지원해 국제사회의 눈길도 곱지 않다. 2015년 1월에는 아프리카 수단의 대통령궁을 중국이 무상으로 대통령궁을 지어준 사실이 알려지자 인권침해와 대량학살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체포영장까지 발부된 오마르 알바시르 수단 대통령의 처소를 지어줬다며 성토의 목소리가 들끓었다.


짐바브웨의 새 국회의사당 건설은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이 짐바브웨를 독재 통치하던 2016년 결정됐다. 인권침해와 선거부정 등을 이유로 서방이 제재를 강화하자 중국은 무가베의 지원 요청에 막대한 인프라 건설로 화답한 것이다.


ⓒ 자료: 신화통신·글로벌 타임스 등

더욱이 중국이 건물 기부한 아프리카연합(AU) 청사를 통해 수년간 아프리카 국가들의 각종 정보를 빼내갔다는 언론보도가 나와 파문이 일으켰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프랑스 르몽드지는 중국이 아디스아바바에 있는 AU 본부에 해킹 장치를 설치한 뒤 지속적으로 정보를 빼갔다고 전했다. 지난 5년 동안 AU 본부 건물 안에 있는 컴퓨터들의 각종 정보가 중국 서버로 흘러들어 갔다는 것이다.


AU 본부는 중국 국유기업인 중국건축공정공사(CSCEC)가 건설했다. 중국이 이 건물을 지으면서 해킹 설비를 몰래 설치하고 지속적으로 건물 안 컴퓨터에 담긴 각종 정보를 빼냈다고 르몽드는 비판했다.


해킹은 매일 자정부터 오전 2시까지 두 시간가량 집중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AU 기술진은 AU 조직의 비밀 자료가 중국 상하이에 있는 서버로 복사된 사실도 적발했다.


AU는 지난해 중국의 해킹 사실을 파악하고 서버를 포함한 건물 내 정보기술(IT) 시스템을 모두 교체했다. AU는 악성 코드에 대한 대대적인 수색 작업을 벌여 책상들과 벽에 감춰져 있는 마이크로폰까지 찾아 제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AU는 쉬쉬했고 중국 정부는 "근거 없는 보도로 완전히 난센스"라고 강력히 부인했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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