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로 먹고살기] 좋은 사람이 좋은 글을 쓴다
아내가 스마트폰으로 누군가 페이스북에 쓴 글을 읽으며 화를 냈다. 왜 그렇게 흥분했느냐고 물으니 서울에 살다가 강원도로 내려가서 농사를 짓는 분의 글을 읽었는데 자기가 재배한 배추 자랑을 하느라 남쪽 지방의 배추를 헐뜯고 있다는 것이었다. 설마 그럴 리가하고 그 농부 이름을 검색해 들어가 보니 정말로 남도 배추와 강원도 배추를 매우 편파적으로 비교 평가하고 있었다.
문제는 공정성을 잃은 비방이었다. ‘남쪽 배추는 허우대만 멀쩡하지 김치를 담가 놓으면 몇 달도 못 가서 물러 버린다. 반면에 우리 배추는 일년이 지나도록 아삭한 맛을 유지한다.’ 대충 글의 요지만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다. 아내는 작년에 이 글을 쓴 농부의 배추도 사고 남도의 배추도 사서(집에서 요리 수업을 하는 바람에 그녀는 그해 김장을 두 번 했다) 김치를 담갔는데 둘 다 맛이 좋고 오래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글은 공정성을 잃은 것은 물론 선량한 농부들의 밥줄까지 끊으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내는 화끈하게 그의 배추를 다시는 사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글이란 그런 것이다. 한 줄의 글은 어린 소년의 운명을 바꿔 놓기도 하지만 낙향한 농부의 고객을 한 명 사라지게도 한다.
아내 직업은 출판 기획자다. 그래서 글에 대한 철학이 일반 독자보다 분명한 편인데 그녀가 가장 먼저 보는 것은 태도다. 글을 쓰는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알면 그가 평소 어떤 판단을 하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지 다 드러난다는 것이다. 나를 남자 친구로 선택할 때도 내가 쓴 글을 읽고 마음에 들어 결심했다는데(그때 아내가 읽은 글은 친구들과 술 마시고 바보짓 한 이야기들을 모아 연재한 ‘음주일기’ 중 몇 편이었는데. 아무튼 그 얘기는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자) 조금 신빙성이 떨어진다.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오래 생활을 하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부부가 둘 다 놀고 있다’는 내용의 책을 냄으로써 작가 생활을 시작한 나도 글쓰기에 있어서만큼은 아내와 같은 생각이다. 글이란 생각을 담는 그릇이고 그 생각은 자신과 타인을 변화시켜야 의미가 있다. 그런데 기왕이면 좋은 쪽으로 변화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무조건 좋은 이야기를 쓰라는 게 아니다. 남을 비웃거나 헐뜯는 글은 당시엔 쾌감을 줄지 모르지만 반드시 동티가 나게 마련이다. 자신이 예전에 했던 말이나 썼던 글 때문에 화를 당한 유명인을 나는 많이 알고 있다.
그럼 재미없더라도 긍정적인 글만 써야 하느냐고? 문학평론가 신형철에게 누군가 물었단다. 너는 어떻게 다루는 작품 중 좋지 않았다는 평이 하나도 없냐. 그거 흔히 말하는 주례사 비평 아니냐. 이에 대한 신형철의 답은 “저는 읽고 좋았던 것만 쓰기로 했습니다”였다고 한다. 굳이 작가의 부족한 면을 들춰내고 후벼 파서 상처를 주는 글보다는 그가 이룩한 성과를 좀 더 부각해 더 많은 독자와 만나게 해주는 게 좋은 평론가가 할 일이라는 걸 그는 오래전에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글쓰기 강연을 할 때마다 ‘좋은 사람이 좋은 글을 쓴다’는 말을 한다. 나쁜 마음으로 가득 차 있거나 누군가를 속이려 드는 사람이 좋은 글을 쓸 리가 없다. 아니, 어쩌면 좋은 글을 쓰려고 노력하다 점점 좋은 사람이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글쓰기는 타인의 마음을 어루만져 위로와 공감을 주는 것은 물론 일용할 양식을 만들기도 한다. 우리가 직장에서 날마다 쓰는 기획서나 보고서도 글로 이뤄져 있고 세계의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K드라마도 몇 줄의 시놉에서 시작된다. 이번 칼럼을 의뢰받고 생각해 낸 코너 제목이 ‘글쓰기로 먹고살기’다. 내가 글을 쓴다고 하면 만나는 사람마다 “글을 써서 먹고살 수 있어요?”라고 묻기 때문이다. 네, 글 써서 밥도 먹고 술도 마십니다라고 대답하기에 지쳐 칼럼으로 써보자 마음먹었다. 너는 카피라이터 출신이고 어렸을 때부터 글을 써왔으니까 그렇지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아니라고 대답하겠다. 다만 글을 쓰면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나는 이 칼럼을 읽는 분들에게 글쓰기의 즐거움을 전파하고 싶다. 글을 써서 먹고사는 것까지는 모르겠지만 평소 글을 쓰면서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삶은 확실히 다르다. 사이토 다카시 교수의 ‘내가 공부하는 이유’엔 “책 읽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는 말이 나오는데 글쓰기도 그렇다. 자신의 글을 쓰는 사람은 언제나 젊다. 현재를 살기 때문이다.
편성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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