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보이스] 변하는 것들이 쓸쓸하지만은 않은 이유

이마루 2022. 12. 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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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변화함으로서 우리는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 연말, 인사를 고하는 것들이 반드시 아쉽지만은 않은 이유

변하는 것들이 쓸쓸하지만은 않은 이유

모든 것이 그리워지는 연말이다. 하루도 카톡을 그친 적 없던 절친, 세탁기에서 꺼내기 무섭게 다시 입고 나가던 티셔츠, 테이프였다면 진작에 늘어났을 반복 재생한 노래, 겨우겨우 구했던 한정판 키 링, 꼬박꼬박 뿌리던 향수, 골목 어귀에서 눈이 마주치던 고양이. 영원할 것 같던, 영원히 사랑할 것 같던 것들 모두 예고도 없이, 이유도 없이 사라진다. 내심 삶의 축이라 여겼던 그들 일부는 스스로 떠났고, 또 다른 일부는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멀리 어딘가로 보내줘버렸다.

‘변치 않는 것’에 대한 평가는 동서고금 어디서나 거룩하지만,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기분상 더욱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이토록 다이내믹한 사계절을 지내다 보면 1년 내내 독야청청한 소나무가 확실히 눈에 띈다. 꽃봉오리가 움트나 싶으면 장마가 드리우고, 은행잎이 떨어지나 싶으면 코끝이 언다. 그리고 내린 눈을 밟아볼 새 없이 다시 도지는 춘곤증. 정신없는 시간의 파도 속에 휩쓸리다 보면 항상 한자리에 우뚝 솟아 있는 암초 같은 존재가 간절해지겠지. 누구나 뭐라도 붙잡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변한다. 안타깝게도 이것만은 틀림없겠지 하고 붙들고 있던 바위조차도.

애초에 무구한 시간 속에서 깎여왔기에 당신의 눈앞에 놓이게 된 것이다. 지각의 뒤틀림이 없었다면, 해일의 쓸림이 없었다면 그도, 당신도 그 자리에 없었다. 감히 말하자면 세상에 변하지 않는 단 하나는 ‘모든 것은 변한다’는 명제 하나뿐이다. 시간은 원망할 새도 없이 흐른다.

그리고 한편 우리는 그 덕에 산다. 시간이 흘러서. 내 마음이 변해서. 모든 것이 바뀌어서. 사멸하지 않는 세포는 암이 되고, 비우지 않은 마음은 강박이 된다. 모든 것을 끌어안으면 모든 것이 내 품 안에서 곪고 썩었을 테지. 유치원 앨범에 쓰인 내 장래 희망은 화가였다. 열다섯 살에는 오직 마름만이 예쁨이라고 여겼다. 스물세 살 때는 철석같이 그와 결혼할 줄 알았고, 서른 몇 살 때는 여기 나가면 답이 없다며 울면서 회사에 다녔다. 그리고 올해는 어땠더라? 무엇을 그렇게 확신했는지조차 가물가물한 기억.

“영원한 건 절대 없어”라는 선언과 함께 시작했던 노래도 내년이면 10년이다. 그동안 시대의 아이콘도 변하고, 어디서는 국경선도 변했다. 그러니 그 다음의 가사 “결국에 넌 변했지”라는 말은 비난받기 어렵다. 세상에는 변하지 않아서 안타까운 사람이 훨씬 많다. 모처럼 옛 동창과 만나 껄끄러운 뒷맛이 남을 때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들이 너무나 옛날 그대로인 데 씁쓸함의 이유가 있었다. 마치 과거의 미성숙한 나와 마주하는 불편함.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변하지 않아 낡고 지리해진 생각들.

심지어 아이돌 가사도 변했다. 하염없이 오빠를 부르며 뭐든지 들어주고 싶다던 여자아이들이 이제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와 사랑에 빠지고, 야망을 드러내고, 지저분한 시선을 똑바로 마주 보며 ‘변태는 너’라고 말하더라. 이러니 나 하나 달라지는 것쯤이야. 취향에, 감상에 또는 어떤 결심에 꾸준하지 못한 걸 부끄러워하거나 자책하지 말자. 놓지 말아야 할 유일한 것은 계속 더 좋은 쪽으로 나아가려는 의지일 것이다.

그리고 고이지 않으려고 스스로 흔들리는 마음. 시간은 분명 우리 등을 떼밀지만, 고집스러운 발걸음을 떼는 건 결국 나다. 편안하고 나른한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면 애를 써야 한다. 멈춰서 촉촉하게 과거를 돌아보는 건 꽤 달콤한 일이지만, 불필요한 것을 내보내고 떠나가는 것의 발목을 잡지 않으려면 때로는 턱이 아릴 만큼 이를 꽉 물어야 한다. 내게 침전시켜야 할 것과 부상해야 할 것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채처럼 열심히 흔들려야 알아차릴 수 있다.

결국 삶은 변화 속에서 계속된다. 화가 말고 다른 직업을 모르던 나는 종종 운동 인플루언서라고 불린다. 체육관과 바를 운영하며 책을 냈고, 이따금 여기저기에 글을 쓴다.

근육은 크고 두꺼울수록 좋다는 ‘거거익선’의 아름다움을 여자들에게 전파하고 있다. 결혼은 어찌 됐든 남자와 할 것 같지는 않다. 일단 지금은 그렇다. 내년엔, 또 그 다음엔 어떻게 변할지 나도 모르겠다. 그저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변수를 놓치지 않고 실험할 수 있기를 바랄 뿐. 여러 번 실수하고 후회하더라도 그 모든 것이 정반합의 무한한 과정에 있기를. 당신의 새로운 해에도 놀라운 변화가 가득하기를.

에리카여성 전용 헬스장 샤크짐 공동대표. 사무직 직장인으로 살다가 30대에 완전한 ‘운동인’으로 각성했다. 더 많은 여자가 운동해야 한다는 믿음하에 〈떼인 근력 찾아드립니다〉를 펴냈다. 칵테일 바 에리카 운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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