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협 "의료계약 민법에 편입시켜야"… 심포지엄 열고 개정안 제안
[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진료(의료)계약을 민법의 전형 계약으로 편입시키는 법 개정을 논의하기 위한 심포지엄이 9일 열렸다.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이종엽)는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4간담회의실에서 '진료계약의 민법 편입 개정을 위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번 심포지엄은 민주당 인재근·오기형 의원과 양정숙 무소속 의원 등 3명의 국회의원이 변협과 공동으로 주최했다.
오 의원은 개회사에서 "의료계약은 의료서비스를 받는 과정에서 일상적으로 체결되는 계약 유형 중 하나다"라며 "지난 11월 9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건강보험공단이 발간한 '2021년 건강보험통계연보'에 의하면 2021년 한 해 동안 있었던 요양급여 심사청구는 약 12억6000만건에 이른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법원의 다양한 판결 사례에 따라 의료과오 소송에 대해 일정한 법리가 형성돼 있다"며 "이러한 법리들을 정리해 의료계약에 관한 조항을 민법전에 전형계약으로 편입시킬 수 있다면, 시민들 생활의 편의에 기여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양 의원은 "민법상 전형계약에 진료계약을 편입하는 문제는 이미 10여년 전 심도 깊게 논의된 바 있으나 현재까지 입법에 반영되지 못한 상태"라며 "독일은 2013년부터 진료계약을 민법전에 전형계약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진료계약이 계약법적 근거를 갖게 되면 진료계약은 절차적 투명성을 확보하게 되고, 진료계약 당사자는 법적 안정성을 제공받을 수 있다"며 "환자와 의료인은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 생사의 문제와 질병의 고통을 해결하고자 하는 공동의 목표를 가진 동반자다. 의료분쟁 당사자 모두에게 명확한 기준을 제시할 수 있도록 관련 법제가 정비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 양 의원은 "이번 심포지엄은 법조계, 학계, 정부 부처가 함께 진료계약의 성격과 입증 문제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하는 자리"라며 "저 또한 오늘 심포지엄에서 논의된 고견을 꼼꼼히 살펴 궁극적으로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법 개정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입법적인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 협회장은 "진료계약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으며, 생명 및 건강과 직결되는 만큼 분쟁도 많이 발생하는 분야"라며 "그러나 현실적으로 의료를 제공하는 측에 자료가 편재돼 있어 과실, 인과관계 등을 입증해야 하는 환자 측이 증명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문제에 대응해 대법원은 환자 측의 입증책임을 완화하거나 일부 입증책임의 전환을 인정하는 법리를 확립해왔으나, 법관에 따라 판단을 달리하는 등 진료계약 당사자의 법적 지위를 충분히 보호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었다"며 "이에 판례로 축적된 입증책임 완화 법리의 근거를 명확히 하기 위해 진료계약을 민법상 전형계약으로 편입해 규율하자는 민법 개정 시도가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민법 개정이 무산됐고, 이후 관련 논의를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협회장은 "대한변호사협회는 중단된 논의를 이어가고자 지난 6월 진료계약의 민법 편입 개정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관련 민법 개정안 마련을 위한 연구를 지속해, 오늘 심포지엄에서 그동안 연구해 온 민법 개정안을 제안하는 자리를 마련했다"며 "다양한 관점에서 TF가 제안하는 민법 개정안을 심층적으로 검토하고, 진료계약의 당사자를 보다 강도 높게 보호하면서도 법적안정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시간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개회사에 이어 변협 진료계약 TF 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호균 변호사가 '의료계약의 민법전 편입 필요성과 개정 방향'이라는 제목으로 주제 발표를 했다.
박 변호사는 "의료계약상 채무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반적인 채무와 달리 '질병의 완치'라는 결과의 달성을 목적으로 하는 결과채무가 아니라 질병의 완치를 위해 최선의 진료를 다하면 되는 수단채무에 해당하는 이유로 '채무의 내용에 좇은 이행'을 하지 않은 사실, 즉 불완전이행 사실까지 증명해야 하는데, 진료채무의 불완전이행의 존부는 주의의무 위반이라는 과실 여부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므로, 결국 계약책임에서도 불법행위책임에서와 마찬가지로 환자측에 '추상적인 요건'인 '과실'이라는 귀책사유에 관한 증명부담이 있게 되는 결과가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래서 의료소송에서 불법행위책임이든 계약책임이든 보통 과실에 의한 나쁜 결과의 발생 즉 과실 및 인과관계를 주된 법률요건으로 볼 수 있고, 특히 의료민사책임의 존부는 과실 존부에 의존하게 되는데, 과실 개념의 추상성으로 인해 과실을 인정할 것인지 여부는 결국 개별 법관의 재량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이는 의료책임 영역에서 법적 안정성을 훼손하는 주요 원인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이와 같은 간극을 판례의 유형화를 통해 해소하는 것도 한 방안이겠으나, 우리나라 의료소송도 90년대를 전후로 활성화되기 시작해 현재까지도 30여년이 됐지만, 유형화된 판레군을 통해 의료사고 영역에서 법적 안정성이 부여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나아가 의료사고에서 의료감정을 통해 사실관계 및 주의의무에 관한 증거조사를 하게 되나, 통상 의료감정을 담당하는 감정인이 의사나 의료기관 측에 편향적인 감정의견을 내 놓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과실과 같은 법률요건에 관한 의견이 버젓이 제시되는 경우가 허다한 문제점이 있다"며 "비전문가인 개별 법관은 이러한 의료감정 결과를 근거로 환자의 청구를 기각하는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박 변호사는 "의료계약을 민법의 전형계약으로 도입해 최소한 의료제공자의 중요한 주의의무를 명확히 규정하고, 환자의 증명책임을 완화할 경우 위와 같은 법률요건의 추상성에서 비롯되는 증명의 부담 문제는 상당 부분 개선될 것이며, 법적 인정성을 부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변협은 산하 의료인권소위원회 진료계약 TF가 마련안 민법 개정안을 제안했다. TF에서는 그동안 축적된 대법원 판례와 독일 민법 규정 등을 참고해 이번 개정안을 마련했다.
변협은 "진료계약을 민법에 편입할 때 의료계약의 개념 규정, 정보제공의무, 사전동의, 설명의무와 같은 의료제공자의 의무를 담은 규정, 과실과 인과관계를 추정하는 규정이 기본적으로 포함돼야 하고, 나아가 의료법과 중복될 수도 있지만 진료기록 작성과 보존의무, 비밀유지의무와 같은 의무도 의료계약 규정에 편입시키고, 독일과 같이 진료기록 작성이나 보존의무와 관련해 일정한 사실관계에 관한 증명담보 기능을 포함하는 규정의 도입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변협이 제안한 민법 개정안에는 여러 전형계약 유형이 규정된 민법 제2장 '계약' 중 제11절 위임 뒤에 제11절의2 의료계약을 추가하는 내용이 담겼다.
구체적으로는 제692조의2(의료계약의 의의), 제692조의3(정보제공의무), 제692조의4(동의), 제692조의5(설명의무), 제692조의 6(의무기록), 제692조의 7(손해배상의무) 등 조항을 신설하고, 현재 위임에 관한 제683조 내지 제685조의 규정을 사무관리에 준용하도록 한 제738조(준용규정)을 '제683조 내지 제685조 및 제692조의2 내지 제692조의7의 규정은 사무관리에 준용한다'로 개정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주제 발표 뒤에는 변협 의료인권소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신현호 법무법인 해울 변호사가 좌장을 맡아 자유토론이 진행됐다.
토론자로는 박수곤 경희대 법전원 교수, 김기영 경희대 공공대학원 교수, 백경희 인하대 법전원 교수, 이정민 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 변호사, 남민지 법률사무소 이원 변호사, 박영호 수원지방법원 부장판사(법원 의료법연구회), 송기민 한양대 교수(경실련) 등이 참여했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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