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합의로 상임위 통과한 한전법, 본회의서 野 뒤집었다
한국전력공사에 회사채 발행 한도를 기존 2배에서 5배로 늘려 적자를 메울 수 있도록 한 한국전력공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이하 한전법)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8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한전법은 재석 203인에 찬성 89인, 반대 61인, 기권 53인으로 부결됐다. 여야가 상임위(국회 산업자원통상벤처중소기업위)와 법사위에서 합의 처리한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좌초되는 건 이례적이다.
이날 본회의 직전까지만 해도 한전법 가결은 무난해 보였다. 하지만 국회 산자위 소속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반대토론에 나서며 기류가 급변했다. 양이 의원은 “적자가 누적되면 회사채 발생 규모가 커지고, 늘어난 이자를 갚기 위해 또 회사채를 발행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며 ‘전기요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 한전이 특혜를 받으면, 일반 기업들은 회사채 금리를 올려도 충분한 자금을 확보하지 못해 도산 위기에 빠진다”며 법안 부결을 주장했다.
반대표를 던진 의원 61명은 김영선·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을 제외하곤 모두 민주당·정의당·무소속이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박홍근 원내대표는 기권했다. 야권에서 대거 반대·기권표가 나오면서 찬성표는 의결정족수(102명)에 13표 모자란 89표에 불과했다.
민주당 원내 지도부는 “부결을 예상치 못했다. 사전 교감은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김성환 정책위의장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양이원영 의원이 반대토론을 할지 몰랐다”며 “(토론 후) 의원들 사이에서 갑자기 5배로 올리는 건 너무 심한 거 아니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한 산자위원 역시 “여야가 합의해서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인데, 민주당 많은 의원들도 관련법을 몰랐던 거 같다”고 했다.
이날 반대토론에 나선 양이 의원은 앞서 국회 산자위 소위원회와 전체회의에선 두 차례나 이 법에 대해 찬성했다. 그는 지난달 22일 산자위 소위 회의에서 “(전기요금을) KWh당 19.3원으로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30조 적자가 예상되는 만큼, (2023년) 상반기에 두 배 정도 인상해야 한다. 그것을 전제로 동의드린다”며 조건부 찬성을 했다. 그는 지난달 24일 산자위 전체회의에서도 “이의 없습니까”란 질문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여당에서 “상임위에선 찬성하고 본회의에서 부결시키는, 국회의원 자격이 없는 행동”(산자위원)이란 비판이 나온 이유다.
경영난에 몰린 한전을 살리기 위한 법안이 야당의 돌발 반대로 무산되자, 여당은 강하게 비판했다. 국민의힘 산자위원들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한전법 개정안은 한전의 재무위기 극복에 필수적인 법안”이라며 “여야 합의 법안조차 정쟁의 대상으로 삼는 민주당의 행태를 규탄한다”고 했다. 국민의힘 산자위 간사인 한무경 의원은 “내년 1월쯤 되면 한전이 파산될 지경에 이를 수 있다”며 “정기국회 끝나고 임시국회에 (다시 법안을 발의해) 통과를 목표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여당은 또 한전의 재무위기의 책임을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에게 돌렸다. 김미애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문재인 정권 5년 내내 전기요금을 사실상 동결해 한전이 146조원 빚더미에 올랐다”며 “그 부담을 고스란히 윤석열 정부에 떠넘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은 “저렴한 원전도 하지 마라, 석탄도 하지 말라면서 전기요금도 올리지 못하게 하고 한전 손실은 누가 부담하느냐”며 “이게 바로 무책임한 민주당 일부 의원들의 자기모순”이라고 지적했다.
강보현 기자 kang.bo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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