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작가 피에트로 루포, 한국 첫 개인전 개최

서명수 2022. 12. 8.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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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작가 피에트로 루포가 그의 대표 시리즈인 입체 일러스트레이션 신작으로 구성된 ‘인류세, Anthropocene’를 다울랭 갤러리에서 선보인다. 루포 작가가 한국에서 전시회를 여는 것은 처음이다.

1978년 로마 태생의 작가는 국제적 무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지속된 이민자 문제, 유럽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잔해, 중동 지역의 민감한 정치적, 종교적 분쟁 등과 같이 현시대를 관통하는 시급한 사회적 문제들을 조명하는 작품 활동을 펼쳐왔다. 또한 사회적 이슈뿐만 아니라 크리스찬 디올, 발렌티노와 같은 세계적인 브랜드와의 지속적인 예술적 협업을 통해 강렬할 시각적인 감성과 고전적인 드로잉을 선보였고 이는 대중 소비자들의 마음 또한 사로잡았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지속적으로 탐구해온 인류와 자연 간의 관계 및 인간의 산업 활동이 기후에 미치는 유해한 영향을 조명한다. 인류세(人類世)는 인류로 인해 빚어진 새로운 지질 시대를 칭하는 용어로 인간이 초래한 환경적 변화가 지구에 돌이킬 수 없는 압도적이고 광범위한 영향을 끼친다는 특징을 지닌다.

이번 전시회에서 보이는 그의 작품은 직사각형 캔버스 위 놓인 종이에 복합적 이미지가 빼곡히 들어선 형태를 하고 있다. 얼핏 보면 추상적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자연의 굴곡진 역사가 눈에 띈다. 흡사 자연에 내재한 인류를 표현하듯 조밀하게 들어선 자연의 이미지에 해골 두개골이 한데 얽혀있는 것 같다. 낭만적인 산과 바다 풍경, 넝쿨 줄기와 정교하게 표현된 동식물군, 이 모든 요소들이 낡은 지도와 유럽 건축 도면의 조각조각들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전근대 거주 지역과 농경사회의 역사를 보여주는 흔적도 찾아볼 수 있는데,이는 선사시대 이후 식량, 보금자리, 생존을 위한 인간의 투쟁과 기후의 연관성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재사용된 낡은 노랑, 갈색의 파편들이 강렬한 파랑과 그 위를 관통하는 선명한 보라색 줄기를 만나 인간의 개입으로 급변하는 자연계를 상징한다.

이처럼 화면 가득한 그의 작품은 구성적 통일을 보이며 이 모든 것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작품 속 조각조각들은 핀셋으로 세밀하게 고정되어 있는데 작가는 이를 통해 인간이 주도한 기후 변화와 이로 인해 해체되고 무너질 것들을 우리 스스로가 자초하였고 곧 다가올 혼란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로써 작가의 화폭이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이는 본질적으로 연약한 것임을 의미한다. 루포는 이번 전시회를 통해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것은 자연의 진정한 영구적 속성이며 또한 이를 길들이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이 가상되고 헛된 것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우리의 이기심은 자연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사용하게 하였다. 인류세라는 용어는 지질 시대를 바라보는 인간 중심적 사고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지구상에서 인류의 종말을 야기하지만, 결단코 지구의 종말을 초래할 만큼 강력하지는 않다"고 말한다. 이처럼 작가에게 있어 인간 중심주의는 자만적 표현이며 그의 신작 시리즈에 선명하게 나타나는 해골 형상으로도 드러난다. 해골의 두개골은 미술사에서 오래도록 바니타스(인생무상 허무주의)의 상징물로 사용되어 왔는데 지질학적 시간성과 기후 위기에 대한 작가의 관념적 문맥을 통해 추가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즉 작품 속 해골은 개인의 죽음을 상기시키는 상징물이자 이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인류의 최후 멸종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이다.

이번 전시회는 9일부터 내년 2월 18일까지 진행되며, 한남동 다울랭 갤러리에서 관람할 수 있다.

서명수 기자 seo.myo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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