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붙으면 '열폭주'… 전기차 탈출 묘수는?[살아남기]
지난 6월 부산 강서구 남해고속도로에서도 전기차가 충격흡수대를 들이 받고 불길에 휩싸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관할 소방서가 사고 15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지만, 차량은 전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사고로 차량 안에 있던 30대 남성과 40대 여성이 탈출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조사 결과, 사망 원인은 안전벨트 미착용 등으로 인한 다발성 골절로 확인됐지만 전기차 차주들 사이에선 화재가 났을 때 탈출이 어렵다는 공포감이 커졌다.
잘 알려진 대로 전기차에서 발생한 화재 양상은 내연기관차와 다르다. 불이 순식간에 붙으며 쉽게 꺼지지도 않는다. 전기차의 리튬이온배터리가 외부 충격을 받아 손상되거나 과전류가 흐르면 단시간 내 700도까지 오르는 열폭주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 또 전기차의 배터리는 철제로 덮여있는데 소화 물질의 침투가 쉽지 않다. 불타는 철제를 개폐하기도 어려울뿐더러 배터리 전압이 높아 가까이 접근해 물을 뿌리면 감전될 우려가 있다.
전기차에 불이 붙었을 때 원칙은 최대한 빠르게 대피하는 것이다. 불을 끌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다. 테슬라의 화재 대응 매뉴얼에 따르면 배터리 화재를 완전히 진압하는 데 약 3000갤런의 물이 필요하다. 3000갤런은 1만1300여L인데 중형소방펌프차 5대가 조달할 수 있는 양이다. 특히 지하주차장 등 밀폐된 공간이라면 유독 가스에 의해 순식간에 의식을 잃고 사망할 수 있으므로 빠르게 대피해야 한다.
운전석 안에 있다면 기계식 개폐 장치를 작동시킨다. 모든 것이 전자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불이 붙어 전원이 차단되면 문을 열수 없을 거라는 인식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 전기차엔 유사시에 수동으로 문을 열고나올 수 있게 기계식 개폐 장치가 마련돼 있다. 위치나 방법이 차량마다 다르므로 사전에 숙지해 놓는 게 좋다.
문제는 차량 내부에 정신을 잃고 쓰려져 있는 사람을 목격했을 때다. 일부 전기차는 외부에서 문을 열 수 없는 구조로 돼 있다.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김필수 교수는 “달릴 때 공기 저항을 줄이기 위해 문손잡이가 차체 안으로 숨겨지도록 설계한 매립형 손잡이 또는 히든도어를 차용한 전기차가 많다”며 “이중에선 테슬라처럼 사고가 났을 때 내부에서 따로 조작을 하지 않으면 외부에선 문을 열 수 없는 차들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최근 발생한 사고에서 구조를 시도했던 주민들도 문손잡이를 찾을 수 없었다고 증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럴 때 현실적인 방법은 창문을 깨는 것이다. 단, 팔꿈치, 발길질 등으로는 어림없을 가능성이 크다. 차량의 옆 유리는 강화유리에 필름이 덧씌워진 접합강화유리다. 뾰족한 물체로 가장자리를 강하게 쳐서 균열을 내는 게 효과적이다. 창문을 깼다면 먼저 문을 여는 데 집중한다. 의자의 구조와 사람의 체중 때문에 창문으로 빼내는 게 어려울 가능성이 커서다.
더 중요한 건 전기차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다. 대표적인 게 안전교육이다. 현재 한국 법은 전기차 차주의 안전교육을 의무화하고 있지 않은데 유럽 국가들이 안전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은 고전압 배터리가 장착된 차량을 만지는 것조차 금지한 것과 대조적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기계식 개폐 장치의 존재도 모르는 차주들이 많다.
전문가들은 수입 전기차도 국내 안전법규를 준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필수 교수는 “유사시 외부에서 문을 열수 없는 매립형 손잡이를 차용한 테슬라는 국내법 위반인데도 한미 자유뮤역협정에 따라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다”며 “전기차 사용화에 앞서 먼저 해결돼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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