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무의 실학산책] ‘법대로’ 하는 게 최선인가
인류의 역사는 시간이 흐르면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였다. 때로는 어느 순간 후퇴하거나 거꾸로 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긴 안목으로 보면 발전의 연속이었음을 알 수 있다. 500년 역사를 향유한 조선이라는 나라는 고려의 불교국가에서 유교사상을 채택하여 건국했다. 유교에서도 성리학, 즉 주자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았다. 그러나 임진·병자의 두 큰 난리를 겪고 나자 성리학으로는 역사 발전을 이룩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 학자들 사이에서 논의되자, 새로운 통치이념으로 ‘실학’이 대두하게 됐다.
반계 유형원, 성호 이익, 연암 박지원, 다산 정약용 등 기라성 같은 학자가 배출되면서, 실학사상은 학자들 사이에서 치열하게 토론됐다. 그러나 실학사상은 국가에서 통치이념으로 자리 잡지 못해, 실학자들이 그렇게 간절하게 주장했던 실학사상은 나라를 발전시키고 국가를 지켜내지 못했다. 나라가 망한 뒤로도 한 세대가 지난 1938년에야 다산의 학문 전체가 포함된 『여유당전서』가 76책으로 간행되기에 이르렀으니 늦어도 참으로 늦었다. 나라를 경륜하고 세상을 건져내자던 다산의 사상은 조선의 역사에서는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식민지 시절에야 책이 간행됐으니, 그런 불행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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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성판윤 권엄의 지혜
“흉년에 백성 못 쫓아내”
정조의 지시에도 버텨
법 집행이 능사는 아냐
」
조선시대나 식민지 시기에도 활용하지 못했던 다산의 정책, 21세기 이 개명한 시대에서라도 제대로 활용할 수가 있다면 얼마나 다행할까. 필자는 생애를 걸고 다산의 실학사상을 세상에 알리는 일에 전념하며 살아가고 있다. 『목민심서』에서 훌륭한 목민관(통치자)으로 선정을 베풀었던 사례 하나를 보자. 다산이 제시한 내용은 그때의 지혜이지만 오늘날에도 너무나 부합되고 있기에 풀어서 설명하련다. 인류는 위대한 지혜라는 ‘법(法)’ 제도를 창안했다. 때문에 ‘법대로만’ 통치한다면 세상은 유토피아가 된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많았다. 역사가 발전하듯이 인류의 지혜도 발전하기 마련이다. ‘법대로만’의 지혜는 때로 수많은 독재자의 수단이 되고 말았던 것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경험했다.
『목민심서』 형전(刑典)의 청송(聽訟) 조항에 나오는 법대로의 지혜를 넘어서는 지혜의 훌륭한 사례다. “판서 권엄(權欕·1729~1801)이 한성판윤(서울시장)으로 일할 때다. 당시 임금의 주치의인 강명길이 왕의 은총을 믿고 마음대로 설쳐 조정이나 민간에서 모두 눈살을 찌푸렸다. 강명길은 서대문 밖의 땅을 사들여 부모의 묘소를 이장하였다. 그 산 아래 민가 수십 호가 있었다. 그는 마을 땅 전체를 사들여 10월 추수 뒤에는 집을 비우기로 약속받았다. 그런데 그해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 강명길은 종을 시켜서 한성부에 고소했으나 권엄이 백성을 몰아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땅 주인이 바뀌어 집을 비우기로 약속했으니 법으로야 강제집행하여도 너무나 적법했다. 그러나 권엄은 법대로 하지 아니하고 새로운 지혜를 동원했다.
“하루는 정조 임금이 승지 이익운을 불러, 가만히 한성판윤을 설득해서 다음 고소 때 아전을 풀어 백성들을 몰아내도록 하라고 했다.” 임금의 분부 뒤에 강명길이 다시 고소했으나 권엄은 요지부동이었다. 이러자 임금이 격노하여 호통치자 듣는 사람들이 모두 목을 움츠렸다. 그런 사정을 이익운이 권엄에게 전하자 권엄의 뛰어난 지혜가 발동했다. 권엄은 단호히 말했다. “백성들이 지금 굶주림과 추위가 뼈에 사무치는 판이거늘, 몰아내 버리면 길바닥에서 다 죽을 것입니다. 차라리 내가 죄를 입을지언정 차마 백성들이 나라를 원망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법대로 집행하지 않으면서 백성 살리는 지혜를 발휘했으니, 그 얼마나 뛰어난 목민관인가. 몇 차례 강명길의 고소에도 끝내 권엄은 물러서지 않고 법을 이행하지 않았다. 마침내 며칠 뒤, 정조가 “조용히 생각해보니 판윤의 처사가 참으로 옳았다. 판윤 같은 사람은 만만치 않은 사람이다. 경은 아마 그렇게 못 할 것이다”라고 이익운에게 말하여 권엄의 승리로 종결됐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몇 년 전의 ‘용산참사’를 기억하고 있다. 무허가 입주자들이 철거에 반대하여 농성하다가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에 끝내 주민 몇 명이 목숨을 잃고 경찰관까지 사망한 사건이다. 혹한에 법대로 하다가 참담한 비극이 발생했다. 지금도 유사한 사고가 그치지 않고 있다. 법대로야 강제집행이 그르지 않지만, 당사자들이 죽어가지 않을 길을 열어주고 집행해야 하지 않겠는가. 큰 불행을 예견하면서도 법대로만 주장하는 통치자들, 권엄과 다산의 지혜에 마음을 기울여야 하리라.
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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