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프리즘] 양날의 검, 임기일치제

최모란 2022. 12. 8.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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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모란 사회부 기자

지난 3월 8일 은수미 전 경기 성남시장은 성남시의료원 3대 원장으로 이중의 전 원장을 재선임했다. 성남시의료원장의 임기는 3년이다. 2개월 뒤인 지난 5월엔 성남시의료원 행정부원장을 임용하고, 이사 6명의 임기를 연장했다. 이들의 임기도 모두 3년이다.

지역 사회는 술렁였다. 6·1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단행한 인사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당시 은 전 시장은 ‘지방선거 불출마’를 선언한 상태였다. 아니나 다를까. 새로 취임한 신상진 시장은 “알박기 인사”라며 반발했다. 불편한 동거는 이 전 원장이 지난 10월 ‘건강 문제’를 이유로 사퇴할 때까지 이어졌다.

임기일치제를 추진했다가 보류한 경기도의회. [사진 경기도의회]

이는 성남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선거가 끝나면 정부는 물론 각 광역·기초단체마다 산하 공공기관장의 퇴임을 둘러싼 눈치싸움이 벌어진다. 그동안 새로운 단체장이 취임하면 기존 산하 기관장들은 관례처럼 사직서를 냈다. 하지만 일부 기관장은 “남은 임기”를 이유로 자리를 지켰다. 새로운 임명권자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며 퇴임을 종용한다. 버티는 기관장을 몰아내기 위해 해당 공공기관에 압박이 가하는 일도 다반사다.

이런 대립을 없애겠다며 각 지자체가 들고나온 것이 ‘임기일치제’다. 정무직 공무원, 산하기관장 등의 임기를 단체장과 일치시키자는 내용이다. 지난 7월 대구시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특별조례를 제정했고, 경기 이천·용인시 등도 비슷한 내용의 조례를 도입했다. 중앙정부는 물론 서울·대전·울산 등에서도 같은 취지와 내용의 조례 제정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경기도의회도 지난 10월 중순 이런 내용을 담은 ‘경기도 정책보좌공무원, 출자·출연기관의 장 및 임원의 임기에 관한 특별 조례안’을 입법 예고했다. 그러나 곧 경기도의 반대에 부닥쳤다. 경기도는 “상위법인 ‘지방자치단체 출자·출연 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지방출자출연법)’에 저촉되는 조항을 일부 담고 있어 법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해당 법률이 자치단체 산하 공공기관의 자율적 운영을 보장하고 임직원에 관한 사항은 산하기관 정관으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자치단체가 임의로 임기 등을 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치열한 논의 끝에 결국 이 조례는 지난달 열린 경기도의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임기일치제를 둘러싼 공방을 지켜보면서 씁쓸해졌다. 능력이나 실적이 아닌, 선거를 통해 관직에 오르거나 혜택을 주는 엽관제(獵官制)를 인정하는 것 같아서다. 실제로 산하 기관장 상당수가 단체장의 사람들로 채워지지 않는가.

기관장 임기를 보장하는 이유는 기관의 자율성과 독립성 보장을 위해서다. 엽관제를 위한 임기일치제는 양날의 검이나 마찬가지다. ‘누구의 후광’이 아닌 제대로 일할 기관장을 선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우선되어야 한다.

최모란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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