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기, 기도, 실전이 한데 모아 만든 기적의 이야기
[김형욱 기자]
▲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더 트랩트 13> 포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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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북부 치앙라이주, 24살의 코치가 유소년 축구교실을 맡아 훈련하고 있다. 상당수 아이들이 성인이 되기 전에 마약의 길로 빠지곤 하는 동네이기에, 보호하려는 차원이기도 했다. 때는 2018년 6월 23일, 코치는 훈련을 마친 후 12명의 소년과 함께 태국 대표 인기 관광지 중 하나인 '탐 루엉 동굴'에 가기로 한다.
막상 동굴에 들어가려니 경고 표시가 있었다. 7월부터 우기가 시작되어 침수 위험이 있으니 들어가지 말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6월 23일, 평균적으로 우기가 시작되기 전이었다. 코치는 아이들을 이끌고 동굴 탐험에 나선다. 1시간 정도만 보고 나오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중간에 갈림길이 나오는데, 오른쪽으로 빠지면 너무 짧으니 왼쪽으로 빠지기로 한다. 끝까지 가면 10km가 넘는 길이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더 트랩트 13: 태국 동굴 조난 사건>은 2018년 6월 23일 태국 북부 치앙라이주의 '탐 루엉 동굴'에서 일어난 13인 조난 사건을 다뤘다. 사건에 대해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가 총망라되어 있어 사건의 전말을 상세히 알 수 있다. 비슷한 시기에 공교롭게도 같은 사건을 다룬 드라마(넷플릭스 오리지널 <태국 동굴 구조 작전>)와 영화(아마존 프라임 오리지널 <서틴 라이브스>)가 공개되었는데, 아무래도 시간이 흘러 사건 당사자들도 큰 무리 없이 사건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싶다.
탐 루엉 동굴에 꼼짝없이 갇힌 13인
가는 날이 장날일까, 운명의 장난일까. 코치와 아이들이 동굴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햇빛이 쨍쨍하던 하늘에 곧 먹구름이 끼더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13인은 이제 슬슬 나가려고 했더니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코치가 차오르는 물 속으로 들어가 입구를 찾아봤지만, 입구를 찾기는커녕 숨이 차올라 겨우 돌아올 수 있었다. 그들은 꼼짝없이 갇혔지만 자고 일어나면 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한편, 동굴 밖에선 탐 루엉 동굴 경비원이 순찰을 돌다가 동물 밖에 세워진 자전거들을 발견한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봤지만 더 깊이 들어갈 수 없었다. 2명의 경비원과 함께 더 자세히, 더 깊숙이 탐색했다. 갈림길에 도달했을 때 가방과 신발 등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물이 차올라 역시 더 들어갈 수 없었다. 그들은 동굴 밖으로 나가 당국에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동굴 안 13인은 하루 이틀이 지나며 몸과 정신이 지쳐 갔다. 아이들은 배가 고파 힘을 잃어 갔고 부모님을 다시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신이 피폐해져 갔다. 그때 코치는 계속해서 아이들을 다독이고 힘을 불어넣었다. 그는 어릴 때 동생과 엄마와 아빠를 차례차례 잃고 고아가 되어 동자승으로 10년간 수행하면서 몸과 정신을 단련시켰기에,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영원같은 기다림,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동굴 밖에선 치앙라이 주지사와 태국 네이비실 사령관을 필두로 수많은 사람이 운집해 동굴 구조에 총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고 뾰족한 수가 없었다. 마침 전 세계 미디어에서도 관심을 갖고 찾아왔는 바, 주지사는 전 세계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다. 전 세계 구조 전문가와 잠수 전문가들이 달려와 머리를 맞댔다. 희망이 보였다.
동굴 안 13인에겐 희망이 멀어지고 있었다. 며칠 동안 물만 마시며 버티고 있었는데, 갑자기 헬리콥터 소리가 났다. 누군가 그들을 찾아온 게 아닌가 싶은 희망이 일었는데, 알고 보니 물이 거세게 차오르기 시작하는 절망의 소리였다. 그들은 더 깊숙이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서 코치는 아이들에게 벽을 파게끔 하는데, 가만히 있으면 죽음만 생각할 게 불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조난된 지 10일이 될 때까지, 동굴 안이나 밖 모두 영원할 것만 같은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태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소년들이 살아 있길 빌었다. 다만, 서로 방법을 강구해 볼 뿐 어찌해 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던 10일 차 되던 날, 모두가 절망의 심연에 다다랐을 때쯤 잠수부들이 13인이 있는 곳에 나타난다. 13인 모두 기적처럼 살아 있었다. 동굴 안밖 모두가 환호했다.
끈기, 기도, 실전이 한데 모아 만든 기적
이제 한 고비를 넘겼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가장 높은 산이 눈앞을 가리고 있었다. 13인을 무사히 동굴 밖으로 데려오는 일이 남아 있었으니, 전 세계 전문가들이 다시 한 번 머리를 맞댔다. 하지만 확실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최선의 방법이 우기가 지나고 동굴에서 물이 완전히 빠질 때까지 4개월 동안 버티며 기다리는 것이었다. 동굴의 환경 여건상 여의치 않았다.
하여, 구조 역사상 최초로 남을 방법을 사용하기로 한다. 13인의 조난인들을 마취해 잠수시켜 데리고 나오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구조 직전에 한 태국 네이비씰 대원이 잠수 중에 의식을 잃어 사망한 만큼 확실한 방법은 아니었다. 또 한 번의 기적이 있어야만 모두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 것이었다.
결과는 모두가 익히 알고 있듯이 13인 모두의 무사귀환이었다. 희망이 찾아왔다가 이내 절망이 찾아오는 롤러코스터 양상을 보인 조난과 구조 과정, 조난된 모두가 별 탈 없이 기적적으로 구조되었지만 너무나 안타깝게도 대원 1명이 목숨을 잃고 말았다. 누구도 탓할 수 없는, 그저 살아 돌아와 열심히 살아갈 수 있어 기쁠 뿐이다. 동굴 안 13인의 강인하고 끈기 있는 생존과 동굴 밖 전 세계의 기도 그리고 전문가들의 실전이 한데 모아 만들어 낸 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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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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