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인의 교육벤처] 배운 것을 버리고 다시 배우기
벌써 2022년 마지막 달이 되었다. 올 한해에 가장 중요했던 말을 돌아보면 ‘언런(Unlearn)’ 이라는 단어를 들고 싶다. 배운 것을 지운다, 버린다는 말이다.
이 말을 처음 들은 것은 올해 5월이었다. 주식이 폭락하고 경제가 나빠질 것이라는 경고음이 울리면서 스타트업 업계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실물 주식이 내려가면 스타트업의 가치도 하락하고 투자 심리가 얼어붙는다. 회수가 어려운 벤처투자는 인기가 없어진다. 벤처 투자에 의존해서 성장하던 스타트업들이 혼란에 빠지자 경험 많은 투자회사가 ‘배웠던 것을 버리라’는 조언을 전했다. 호황기의 사업 전략은 불황에서는 통하지 않으니 그동안 배운 것을 버려야 새로운 상황에 대응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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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존 가치·상식 흔들렸던 올 한해
가짜·과잉 정보 잘 버리는 게 관건
교육에 대한 개념도 바꿔야 할 때
」
배우는 것이 무조건 좋은 일이라는 막연한 상식을 가지고 있어 ‘배운 것을 적극적으로 지워버린다’는 생각이 놀랍고 충격적으로 들렸다. 그러나 올해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변화된 국가간 관계, 코로나 방역이 완화된 삶, 인플레이션과 불황으로 접어든 경제 등 사회의 많은 부분이 크게 바뀌다 보니 몇년간 경험하고 배운 것으로는 바른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개인의 자산투자로부터 회사의 전략 수립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들을 버리고 새로 배워야 했고, 그러면서 ‘버리라’는 조언의 유용성을 절감했다.
‘배운 것을 버린다’는 표현은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가 1990년대에 했던 말이다. “21세기에서의 문맹자란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고, 배운 것을 버리고, 다시 배우는 능력이 없는 사람을 말할 것이다.”
40여년 전 컴퓨터 일반화 초창기부터 디지털 정보의 위력이 앞으로의 사회에 가져올 충격과 변화를 예측했던 토플러의 말대로 다시 배우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기후변화를 맞아 사람들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방법, 계절을 준비하는 법, 살아가는 방법을 다시 배워야 한다. 지구의 자원이 부족하니 기업들이 이익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사회·기업의 구조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직업의 형태가 바뀌고, 쓰는 기술이 바뀌었고, 사회 구조가 바뀌었다. 공동체의 상식 또한 바뀌어, 한때는 용인되었던 태도나 행동이 더이상은 용인되지 않기도 한다.
배우는 방법조차 바뀌어서 새로 배워야 한다. 인터넷과 디지털 미디어, 인공지능(AI)이 발전하면서 정보는 문자 뿐만 아니라 음성과 영상 등 다양한 형태로 공유된다. 필자도 이전에는 종이책으로 배우는 것이 가장 우월한 방식이라고 생각했는데, 최근 들어서는 점점 많은 부분을 유튜브 강의로 듣거나 인터넷 정리본에 의존하고 있다. 숨가쁘게 변하는 IT 트렌드는 어떤가? 업계 전문가와 미래학자들이 SNS와 커뮤니티에서 갑론을박을 펼치고, 또 이렇게 경험하는 실시간 정보가 무엇보다 빠르고 생생하다. 또한 정보가 부족하기는커녕 너무 많은 실정이다. 낡은 정보, 가짜 정보, 과잉 정보가 문제 되니 잘못 배운 정보를 골라서 잘 버리는 것이 지식의 질을 결정한다. 앨빈 토플러의 말을 확장해서 해석하면, 21세기 인재란 지식이 많이 쌓인 사람보다 지식의 갱신이 옳고 빠른 사람일 것이다.
많은 학부모와 교육 관계자들은 빠르게 바뀌는 세상에서도 배움의 근본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배움의 근본이라고 이야기되는 것의 많은 부분은 기성세대가 공부한 방법을 말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책을 잘 읽는 기술, 교사가 가르친 것을 오래 기억하는 역량, 그리고 이런 역량이 훌륭한 사람부터 줄을 세우는 입시 제도 등이다. 그러나 지식이 사방팔방에서 쏟아지는 시대에서 지식의 경쟁력은 학교에서 배운 것과 기억력에서 오지 않는다. 그 대신 옳은 것을 선택하는 창의력과 결단력, 배운 것을 제 때에 버리고 다시 배울 수 있는 유연함과 겸손함에서 온다.
학부모로서, 혹은 교육자나 정책가로서 교육에 관여하는 기성 세대들은 배움이라는 것에 대해서 얼마나 유연하고 겸손할 수 있을까. 우리와는 다른 삶을 살아갈 다음 세대에게 지식을 심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지식을 배워 나갈 호기심을 심어 줘야 한다. 실패하지 않은 사람을 고르는 대신 실패로부터 배우는 역량을 길러주고 지식 역량을 끊임없이 갱신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가르치는 역할을 맡은 우리들이 교육에 대해 배워온 것을 제대로 버리고, 다시 배울 수 있을지 되돌아볼 때다.
이수인 에누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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