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집 안 팔려도, 집 더 지어야"…2008년 패착이 아팠다 [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안장원 2022. 12. 7.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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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이후 공급 줄여 집값 뛰어
주 52시간 완화하고 금융 지원해야
집값 하락기가 분양가 규제 폐지 적기
다가구·다세대로 주택공급 속도 높여야

[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김승배 한국부동산개발협회 회장 인터뷰

안장원 부동산선임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주택정책 최우선 공약으로 내건 주택공급 확대가 흔들리고 있다. 임기 1년차부터 주택업계가 비용 급등과 자금난 등에 발목 잡혔기 때문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주택 부족이 심각한 서울에서 올해 주택건설 인허가 물량이 예년보다 40% 정도 급감했다(10월까지 누적 기준). 여기다 집값이 빠르게 내리면서 수요도 움츠러들어 공급 여건이 더 나빠질 전망이다.

주택업계가 공사비 급등 등 사면초가에 빠져 인허가 물량이 급감하며 윤석열 정부 주택공급 확대 계획에 빨간불이 켜졌다. 사진은 서울 강동구 둔촌 주공아파트 재건축 공사 현장. 뉴시스
김승배 회장

주택공급 혼란기를 맞아 주택개발 사업을 하는 디벨로퍼(시행자) 단체인 한국부동산개발협회의 김승배 회장(피데스개발 대표)을 인터뷰했다. 김 회장은 1983년 대우건설에 입사한 이후 40년째 주택사업에 몸담고 있다. 2003년 피데스개발을 설립했고 2020년 3월 협회 회장을 맡았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Q : 주택시장 침체기에 공급을 줄여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을 어떻게 보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집값이 하락할 때 공급을 많이 줄였다. 정부가 공공택지 개발을 축소하기도 했다. 이때 공급 감소가 문재인 정부 동안 집값 급등의 배경이 됐다. 주택 공급은 보통 토지 확보→인허가→착공→준공 과정을 거치는 데 5년 이상 걸린다. 인허가를 받았어도 사정에 따라 보류하거나 포기하는 사업이 적지 않다. 주택개발 사업은 뿌린 씨가 모두 결실을 보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농사와 비슷하다. 풍년을 기대하려면 씨를 많이 뿌려야 하듯 인허가를 늘려야 한다. 그래야 주택경기가 되살아나 집값이 다시 오를 때 단기 급등에 제동을 걸고 이전과 같은 집값 폭등 악순환을 막을 수 있다.”

Q : 인허가 감소는 주택업계가 사업을 줄인다는 뜻인데 이유가 뭔가.
“사업 수지가 안 맞기 때문이다. 원가가 올라가고 금융비용 부담이 커졌지만 값은 제대로 받지 못한다. 주택 수요자마저 주택 공급 시장인 분양시장에서 발을 빼고 있다. 한마디로 사면초가다."


외국인 채용 제한 풀어야

Q : 글로벌시장의 공급망 교란 등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나.
“건설 원가에서 갈수록 커지는 인건비를 낮춰야 한다. 코로나 이후 외국인 근로자가 크게 줄면서 인건비가 뛰었다. 외국인 채용 제한 등 규제를 풀어야 한다. 주 52시간 규제도 비용 증가 요인이다. 겨울엔 공사가 어려운 건설공사 특성상 계절적으로 탄력 조정이 필요하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Q : 자금 사정이 어떤가.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주택개발은 ‘레버리지 사업’이라고 할 정도로 금융이 중요하다. 사업 본궤도 전 단계에서 이른바 ‘브릿지론’을 통해 토지를 매입한다. 그 뒤 PF(프로젝트파이낸싱) 대출을 받아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한다.
금리가 뛴 데다 금융시장이 불안해 금융권에서 주택사업 대출을 꺼리고 있다. 지난달 협회 회원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개 사업장 중 세 곳이 자금 사정으로 애로를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 개발 PF 자금 지원책이 시급하다.
미분양이 빠르게 늘며 자금난을 심화시키고 있다. 10월 기준으로 미분양 물량이 전국 4만7000여 가구로 지난해 말 1만8000가구의 2배가 넘는다.”

Q : 가격을 낮추면 미분양을 줄일 수 있는 것 아닌가.
“정부의 가격 규제에다 사업 수지 악화로 분양가를 낮출 여지가 별로 남아있지 않다. 현재 미분양은 분양가보다 지나친 분양시장 규제 탓이 더 크다. 문 정부 때 청약과열을 막는다는 이유로 도입한 과도한 규제가 지금은 미분양을 부채질하고 있다. 최장 10년에 달하는 전매제한을 완화하고, 무주택자로 엄격히 제한된 청약자격을 풀어야 한다. 가장 안전한 대출의 하나로 꼽히는 중도금 대출에 대한 규제도 재고해야 한다.”

Q : 땅값이 오르고 집값이 하락하면서 상한제 분양가가 주변 시세와 비슷한 수준으로 올랐다.
“분양가 규제는 수요·공급에 따른 정상적인 가격 형성을 저해하고 시장을 왜곡한다. 특정한 지역을 상한제 지역으로 정하는 지정 제도는 장기적 주택사업의 불확실성을 높인다. 집값 급등기 때는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로또’를 낳아 청약과열을 조장하기도 한다. 지금 같은 시장 약세기가 분양가 규제를 풀 적기다. 규제를 완화하더라도 분양가가 많이 오를 수 없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안전진단·노후도 기준 완화해야

Q : 시장이 어려우면 민간사업도 위축되는데 주요 도심 주택공급원인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할 수 있나.
“주민들로 구성된 조합이라는 민간이 주체인 재건축·재개발을 강제로 밀어붙일 수 없다. 대신 사업 여건을 좋게 하는 유인책을 만들 수밖에 없다. 분양가상한제 가격 규제를 풀어야 한다. 집값에 따라 들쭉날쭉한 데다 이익 실현도 없이 현금을 내야 하는 재건축부담금도 없애야 한다. 개발이익 환수는 기반시설이나 공공주택 등으로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 재건축 안전진단 및 재개발 노후도 기준 요건을 없애 사업 문턱을 낮춰야 한다. 주택의 질을 높이는 데도 효과가 크다.”

Q : 주택 수요자들이 선호하는 아파트에만 주택 공급이 치중된 건 아닌가.
“다가구·다세대주택 등 비아파트 주택 공급 확대가 절실하다. 이들 주택은 아파트보다 가격 부담이 덜하고 공사 기간이 짧아 주택공급 속도를 높일 수 있다. 가족 구성원이 많아지고 소득이 늘면서 차근차근 올라갈 수 있는 안정적인 주거 사다리를 확보한다는 점에서도 비아파트 시장이 튼튼해야 한다. 다가구주택 등의 단점으로 꼽히는 편의시설·주차장·안전성 부족 등은 정부나 지자체가 지원해 공동으로 확보하면 된다.”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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