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의 음식과 약] 사과 먹는 시간
겨울철 사과를 먹는 것은 건강에 좋은 습관이다. 하지만 속설과 달리 아침 사과는 금사과가 아니다. 빈속에 사과를 먹으면 배가 아플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과에는 과당이 많이 들어있다. 사람에 따라 과당을 빠르게 소화 흡수하지 못하여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흡수가 덜 된 상태로 과당이 대장으로 내려가면 장내 미생물에 의해 발효되면서 배에 가스가 차거나 아플 수 있다.
사과에는 펙틴과 같은 섬유질, 소비톨과 같은 당알코올도 들어있다. 섬유질과 당알코올도 소장에서 소화 흡수가 안 돼 대장까지 내려가는 것은 마찬가지다. 변비 완화에 좋다는 프룬(말린 서양자두)에 소비톨이 특히 많이 들어있다. 하지만 사과의 경우, 문제의 주원인은 역시 과당인 것으로 나타났다. 1993년 네덜란드 과학자들이 실험으로 입증한 사실이다. 사과 주스를 마시고 소화 흡수가 잘 안 되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과당, 소비톨, 둘을 함께 준 경우를 비교한 결과 과당이 제대로 흡수되지 않은 경우가 제일 많았다.
과당에 예민한 정도는 개인차가 있다. 5g도 안 되는 소량에도 배가 아픈 사람이 있는가 하면 50g 이상을 줘도 별문제 없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한 번에 많은 양을 빈속에 먹으면 가스가 차거나 복통을 겪을 생길 가능성이 높다. 2009년 임상시험에서 과당 50g을 섭취하도록 한 결과, 참가자 80%가 소화 흡수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당은 이름처럼 과일에 많이 들어있다. 사과·대추·배·포도·체리·바나나 같은 과일이 대표적이다. 채소 중에는 양배추·가지·양파에 많이 들어있다. 꿀과 같은 감미료, 콜라·사이다 같은 청량음료에도 액상 형태로 과당이 들어있다. 하지만 청량음료를 마시고 배가 아픈 사람 수는 예상보다 적은 편이다. 과당과 포도당이 1:1에 가까운 비율로 들어있기 때문이다. 기전은 분명치 않으나 포도당이 동일 비율로 들어 있을 경우 식품 속 과당이 더 잘 흡수된다.
배가 자주 아프고 가스가 차는 사람이라면 과당이 많이 들어있는 식품을 적게 먹을 때 증상이 나아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건강에 유익한 채소와 과일을 먹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대개의 경우 다른 음식과 함께 또는 식후에 먹는 것만으로도 쉽게 증상이 좋아진다. 식후에 먹으면 위장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져 과당이 소화·흡수되기에 충분한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아침 빈속에 사과를 먹어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대로 좋다.
하지만 배가 아픈 사람이라면 저녁 식후에 먹는 거로 바꾸는 게 낫다. 변비약을 저녁에 먹고 자는 것과 마찬가지다. 저녁에 사과를 먹으면 아침에 화장실에서 배변이 시원하도록 도와준다. 즐겁고 건강한 삶의 기초는 이렇게 나 자신과 내가 먹는 음식에 대해 알아가는 데 있다.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모텔서 "여성 동료 의식없다" 신고한 남성…CCTV 딱걸린 폭행장면 | 중앙일보
- 20대 여교사가 50대 남교사 성희롱?…사립중 입사 동기의 전쟁 | 중앙일보
- 아내 죽고 "혼자 살아 뭐해"…곡기 끊은 노인 살린 '가평의 기적' | 중앙일보
- “조만간 삼성아이파크 압도” 어깨에 힘들어간 청담삼익 | 중앙일보
- [단독]'文 보고문건' 꺼낸 서훈…법원 "공문서가 왜 밖에 있나" | 중앙일보
- [단독]'#이재명과 정치공동체' 캠페인…野 169명중 2명만 동참 | 중앙일보
- “자식 죽은 집에서 과일 깎아먹어” 날 분노케 한 어느 가족 | 중앙일보
- 인생샷 건지는 '19금 온천' vs 아이와 파도 풀 즐기는 '가족 온천' | 중앙일보
- 그랜드캐니언 절벽서 아찔 티샷…'팔로워 700만' 20세 여성 최후 | 중앙일보
- "우리를 비난 말라" 손흥민 인상 찌푸리게 한 외신 질문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