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를 잇다] 음악을 살고 사랑한 여성들! 한국 최초의 클래식 오케스트라 지휘자 김경희와 음악 연구가 김호경

이경진 2022. 12. 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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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위에 대담한 행적을 그려온 두 여성이 만났다.

INTERVIEWEE 김경희

63세. 숙명여대 작곡과에서 수학한 뒤 독일로 향해 동양 여성 최초로 독일베를린국립음대 지휘과를 졸업했다. 1989년 대전시향 초청 지휘를 시작으로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지휘자로 데뷔했다. 지난 30여 년간 KBS교향악단, 서울시향, 부산시향, 수원시향을 비롯해 국내 각지의 오케스트라와 러시아필하모닉오케스트라, 소피아국립오케스트라, 일본 아시아 연합 오케스트라 등 해외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현재 숙명여대 음악대학 관현악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꾸준히 무대에 오르는 대한민국 클래식 음악 신의 상징적인 여성.

블랙 재킷은 Dint.

INTERVIEWER 김호경

36세. 음악을 듣고 쓰고 연구한다.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했고, 졸업 후에는 공연 예술 전문 매체 〈객석〉에서 클래식 음악 전문 기자로 일했다. 현재는 음악을 듣는 사람들을 탐구하는 연구자로 활동하며 음악 지평 실험을 위한 연구소 설립을 앞두고 있다. 현대 감상 환경에서 클래식 음악세계를 그린 에세이 〈아무튼, 클래식〉과 동시대 음악 감상 행위를 관찰한 책 〈플레이리스트: 음악 듣는 몸〉을 냈다. 김윤아 ‘나인 너에게’,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Your Light’ 등 대중가요의 가사를 쓰기도 했다.

코트와 팬츠는 Dint.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슈즈는 H&M.
김경희가 입은 화이트 재킷은 Johnny Hates Jazz. 이너 에어로 입은 블랙 드레스는 Diagonal. 김호경이 입은 코트와 팬츠는 Dint. 화이트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슈즈는 H&M.

Q : 만나게 돼 기쁩니다. 저는 클래식 음악 작곡을 전공하고 음악 기자 생활을 거쳐 음악 듣는 사람을 탐구하는 연구자로 일하고 있어요. 교수님께서 ‘대한민국 여성 최초의 지휘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30년 넘게 활동해 오며 여성 지휘자가 느낀 어려움과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해왔죠

A : 어떤 분야든 여성과 남성을 구분해 ‘할 수 있다’와 ‘할 수 없다’를 단정 짓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누구도 가지 않았던 불모지라도 내가 헤쳐 나갈 용기와 끈기가 있는지가 중요해요. 오케스트라 지휘 역시 제가 귀국한 1988년엔 여자가 할 수 없는 분야로 생각했어요. 지금은 세계 각국에서 선두 주자들의 노력과 시대 분위기에 힘입어 활동 중인 여성 지휘자들을 봅니다. 독일에서 활동을 마치고 귀국했던 당시 인터뷰에서 “나의 지휘 활동을 시작으로 여성 지휘자가 생소하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 시대가 오기를 희망한다”고 했던 게 떠올라요. ‘화살촉 효과(Arrow Head Effect)’라고 하잖아요. 아무리 강력하고 단단한 물체일지라도 화살촉이 한 번 뚫고 지나면, 뒤따라오는 화살은 그걸 절로 통과할 수 있다는 거죠. 모든 이들이 누군가에게 화살촉이 될 수 있다는 단단한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Q : 어린 시절 TV로 마에스트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연주를 보고 지휘자의 꿈을 키우고, 독일 유학을 결심했다고 들었습니다. 독일에서 지휘 공부를 하는 동안 카라얀의 스타일을 학습하기 위해 노력했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 음악적 방향과 지향점은 어떻게 달라져 왔나요

A : 초기엔 모든 무대가 여성 지휘자로 살아남기 위한 장으로 느껴져 하나하나 살벌하고 두려웠어요. 내 음악이 관객에게 어떻게 전달됐는지도 모를 정도였죠. 나부터 무대를 즐겨야 연주자와 관중이 함께 음악을 즐기고 감동할 수 있음을 깨달았어요. 그러면서 내가 무대에서 편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중학생 시절 TV에서 베를린 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혼연일체를 이루는 카라얀의 모습을 봤어요. 베를린으로 가서 공부해 보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했죠. 꿈은 이뤘지만 당시에도 음악회 티켓은 학생에겐 큰 부담이었죠. 값싼 티켓을 사려면 온종일 서서 기다려야 했어요. 그렇게 필하모닉 홀의 구석 자리에 앉아 무대로 입장하는 카라얀을 보며 눈물이 핑 돌았던 순간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Q : 지난해 펴낸 저의 책 〈아무튼, 클래식〉에 이렇게 썼습니다. “완성된 그림이나 글을 내놓는 화가나 문학가와는 달리 연주자들은 청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그림을 그려 나간다. 수백 수천 명 관객 앞에서 몇 십 분의 과정을, 그것도 여러 번 해낸다. 놀랍다. 몸으로 행하는 예술가들을 동경하게 되는 이유다. 대담함 그리고 솔직함.” 지휘자는 몸으로 예술을 행하는 사람이기도 하니, 포디엄에 올라 수많은 사람 앞에 설 때의 감각이 늘 궁금했습니다. 지휘자로 섰을 때 특별히 발휘되는 면이 있나요

A : 글이나 그림은 종이 위에 남지만 소리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아요. 지휘는 스쳐 지나가는 한 음 한 음에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야 하고 음악을 다듬어가며 원하는 소리를 이끌어내는 작업이죠. 내가 표현하는 몸짓으로 소리를 끌어내는 것이니 손가락의 작은 움직임 하나라도 확실치 않으면 사고가 납니다. 음악을 깊이 있게 느낄 수 있는 대담함과 능수능란함, 순발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분위기에 맞는 음악부터 디저트 같은 맛깔스러운 앙코르에 이르기까지, 어쨌든 무대에 선 지휘자는 멋진 음악 한 상을 차려낼 수 있어야 해요.

Q : 사실 지휘자는 연주자들과 리허설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고 그때 더 많은 역량이 발휘된다고 합니다. 각자의 세계가 있는 예술가들을 설득해 소리를 완성해 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A : 리허설 시간마다 호랑이 굴에 막대기 하나 달랑 들고 들어가는 느낌은 안 겪어 본 사람은 몰라요. 그야말로 잡느냐, 잡아 먹히느냐 하는 싸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 전투는 모두 리허설 시간에 이뤄지죠. 음악적으로 완벽하게 끌고 가야 하지만 매 순간 일어날 수 있는 사람들과의 부딪힘에 있어서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늘 염두에 둬야 해요. 단원들이 집중할 수 있도록 그들의 긴장과 이완을 조절해 가며 이끌어야 하죠. 가장 중요한 것은 지휘자의 음악이 단원들에게 이해를 넘어 감동으로 다가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죠.

Q : 음악의 힘을 체감했던 경험 역시 궁금해요. 제 경우에는, 책을 쓰면서 과거의 일을 많이 떠올려요. 돌아가신 아버지 얘기를 많이 썼거든요. 어릴 때 놀이공원 같은 곳에서 트럼펫 연주를 하셨던 장면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고, 슈만의 ‘어린이 정경’이나 드뷔시의 ‘어린이 세계’ 같은 피아노곡을 들으면서 누군가를 기억하거나 감정의 파도를 달랬죠

A : 개인적으로 많이 힘들고 지칠 때 지휘봉을 잡으면 감정의 파도를 달래기보다 오히려 더 힘들 것 같아요. 다만 지휘를 시작할 때와 끝났을 때의 제가 많이 달라져 있음을 느낍니다. 음표 하나하나가 저에게는 살아 있는 생명체예요. 내 호흡으로 그것을 터치할 때 죽은 세포들이 살아나고 거기서 다시 힘을 얻는 신비로운 세계가 형성되죠. 각각의 음은 흩어졌던 마음을 모을 수 있는 강력한 힘도 있어요. 음악이 주는 감동 속에 여럿이 함께 빨려 들어갈 때, 혼연일체가 되어 강한 결속력을 발휘할 때가 있잖아요. 음악이 가질 수 있는 마력이라고 생각해요.

Q : 한 분야에서 오래 활동한 여성으로서 나누고 싶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1989년 지휘자로 데뷔했을 때 촬영된 KBS 다큐멘터리를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는 걸 아시는지

A : 네! 얼마 전, 지인이 그 다큐멘터리를 보내줘 저도 수십년 만에 그 영상을 다시 봤답니다.

Q : 그걸 보니 교수님께서 저희 어머니와 동갑이고, 저는 큰 따님과 동갑이더군요. 거기서 따님인 담온이가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모습을 보며, 당시 교수님의 심경이 궁금했습니다. 저는 지금 출산한 지 1년 됐어요. 출산과 함께 나름대로 예술을 향유하던 방식, 창작활동의 방식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물리적인 시간이 없는 건 물론이고, 정신적인 여유가 없다고 느끼고 있어요. 그 시절에는 이런 틈을 어떻게 확보했나요

A : 앞만 보고 달리던 시절이라 힘들어도 힘들지 않다고 생각하며 정신력으로 버텼습니다. 주로 모두 잠든 밤에 내 시간을 확보하고 음악을 위한 준비를 하곤 했어요. 젊을 때니까 했지 지금은 저도 힘들어요(웃음). 세상의 모진 풍파와 견디기 힘겨운 일상생활의 연속은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자신감도 떨어뜨리지만, 사실 그런 날을 겪으면서 이겨낸 시간 역시 내 음악의 깊이를 더하는 요소가 됐다고 생각해요. 당시에는 힘에 부치는 일상 때문에 내 일을 못할 것 같았는데, 바로 그것에서 내가 살아 있는 이유를 찾을 수 있거든요.

Q : 〈객석〉에서 기자로 일하던 시절 여러 음악가를 만나면서 알게 된 점이 있습니다. 좋은 사람이 좋은 예술을 한다는 사실이죠. “좋은 예술이 좋은 삶과 등을 맞대고 있다는 건 과연 사실이다. 좋은 예술은 좋은 삶으로부터 나오며, 그 좋은 예술이 예술가에게 다시 좋은 삶을 마련한다”고 책에 쓰기도 했어요

A :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제 경우에는 기독교 신앙에 해답이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어요.

Q : 좋은 음악을 위해 설득력 있는 음악을 전하기 위해 삶 속에서 했던 노력, 지키려 했던 태도가 있다면

A : 교회 안의 내가 세상 속에서도 같은 모습이길 바라며 사는 것이 제 인생 방식이었습니다. 세상 속에서 갈등과 어려움을 잘 해결해 나가며 좋은 생각으로 채우고 내가 할 수 없는 나쁜 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힘을 얻어왔어요. 좋은 삶이야말로 좋은 예술의 밑거름이라고 생각합니다.

Q : 강의로 학생들을 만나고 계시죠. 예비 음악가들은 교수님의 시대와는 다른 삶에서, 새로운 철학을 품고 새로운 삶의 가치를 꿈꿀 텐데요. 요즘 학교에서 어떤 것들을 보고 느끼시나요? 무엇을 중요하게 가르치는지도 궁금합니다

A : 고전에 깃든 진리는 여전하지만, 확실히 젊은 음악가들과 생각의 차이는 존재한다고 느낍니다. 빠르게 변해가는 여러 가지 환경도 한몫하겠죠. 시대 흐름이 우리 세대와 다른 생각을 가지게 하는 것 같아요. 음반과 동영상이 귀했던 세대에는 혼자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요즘은 많은 매개체를 통해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죠. 아이디어를 제공받기도 하고요. 공부하기에는 훨씬 더 편리한 시대라고 생각했는데, 모든 것이 풍족하다 보면 스스로 해내야 하는 일 앞에 약해지고, 타인에게 도움을 줘야 하는 일에 소극적일 수 있다는 단점도 있죠. 혼자만의 세계는 강해지는데, 함께해야 하는 일에는 많이들 약해져 있어요. 과열된 경쟁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서로 도우며 어우러질 때 행복과 삶의 가치가 커진다는 사실을 깨닫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Q : 클래식 음악이라는 분야가 과거와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클래식 음악이라는 예술을 우러러보며 체험하는 기쁨이 큰 부분을 차지했죠. 지금은 음악을 듣는 일이 과거에 비해 쉬워졌고, 음악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를 생각하는 면이 더 중요해진 것 같아요. 많은 이들이 클래식의 대중화를 이야기해 왔지요. 그것도 중요하지만, 클래식 음악이 계속 새롭게 존재하는 일, 연주자들에 의해 생생히 존재하며 시대를 관통하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요

A : 음반이나 영상으로 보는 음악과 실제 현장에서 듣는 음악은 확실한 차이가 있습니다. 많은 음반과 영상을 통해 카라얀이 클래식의 대중화 선풍을 일으켰다면, 세르주 첼리비다케 같은 지휘자는 음반이란 통조림에 불과하다며 음반과 영상 등의 자료를 많이 남기지 않았어요. 기록된 자료를 통해 큰 감동을 받을 수 있으나, 음반을 만드는 과정에는 녹음을 통해 최상의 것을 계속 재편집할 수 있죠. 현장성이 떨어집니다. 반면 같은 음악이라도 새로운 연주자들을 통해 생생하고 세밀한 호흡을 느끼며 같은 시간에 함께울고 웃으며 위로와 감동을 받는 것이 바로 무대 위의 클래식이죠. 호흡이 살아 있는 현장의 음악을 찾는 든든한 발걸음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버팀목이 돼는 움직임이죠. 클래식 음악이 탄생한 지 몇 백 년이 흐른 지금, 그 시대 사람들이 들었던 음악을 지금 우리도 듣습니다. 수백 년의 동안 살아온 음악이라는 사실, 그 진중함의 무게가 늘 우리를 감동시키죠. 이것이야말로 클래식의 가치라고 생각해요.

Q : 요즘 일상에서 당신의 즐거움을 위해 듣는 음악은 무엇인가요

A : 젊을 때는 공부를 위해서라도 음악을 가까이했는데 요즘은 뉴스를 더 많이 듣는 것 같습니다(웃음). ‘그렇다면 지금은 공부를 안 하는 건가?’라고 생각하진 말아주세요. 늘 머리가 복잡하니 일상에서는 조용한 음악을 즐겨 듣지만 모차르트의 밝은 음악과 프로코피예프의 장난기 넘치고 색채감이 진한 음악도 좋아합니다. 전엔 깊이 있고 철학적인 음악이 좋았는데 그런 마음도 세월 따라 조금씩 변하는가 봅니다. 요즘은 성탄 예배에서 연주할 헨델의 ‘메시아’도 즐겨 듣고 있어요.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마음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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