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과 극 한국-스페인 라이더, 직접 비교해봤더니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배달원 종사자는 45만 명. 배달앱 라이더와 택배, 우편 종사자까지 포함된 수치입니다. 이는 3년 전에 비해 10만 명이 넘게 늘어난 것입니다. 현재 배달앱 라이더만 집계한 정부의 공식 통계는 아직 없습니다. 다만 온라인을 통한 음식서비스 거래액은 2017년 2조 7326억 원에서 2021년 25조 6847억 원으로 연 평균 75.1% 폭발적인 상승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배달앱 라이더의 법적 지위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2021년 5월 라이더 권익보호법안을 만든 스페인을 찾아, 두 나라 라이더들의 일상이 어떻게 다른지 그 나라의 변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은 무엇인지 들여다봤습니다. <편집자말>
[류승연, 이희훈 기자]
▲ 한국 라이더 김용석씨와 스페인 라이더 오마르 |
ⓒ 이희훈 |
여기 두 명의 라이더가 있다. 한 명은 민트색 헬맷을 쓰고, 민트색 오토바이를 탄 채 서울 강남 거리 한복판을 달렸다. 또다른 한 명은 노란색 유니폼을 입고 역시 노란색으로 덧칠해진 오토바이를 타고 스페인 마드리드 북부를 달렸다.
작은 크기의 스쿠터, 휴대전화를 고정시키기 위해 계기판 근처 달아둔 거치대, 스쿠터 뒤에 고정된 네모난 배달 가방까지. 오토바이 색깔이 다르다는 걸 제외하면 두 라이더가 이용하고 있던 오토바이는 꼭 같은 모습이었다. '외관'뿐만 아니다. 업무까지 동일했다. 둘은 배달앱을 통해 주문이 접수되면, 준비된 음식을 픽업해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일을 했다.
그런데도 두 라이더가 사는 삶 속엔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있었다. 한 쪽은 노동자였고, 다른 한 쪽은 노동자가 아니었다.
지난 9월과 10월, <오마이뉴스>가 각각 만난 배달의민족(아래 배민) 라이더 김용석(54)씨와 글로벌 배달앱 운영사 글로보(Glovo)의 라이더 베탄코트 드북 오마르(Vethencourt Dubuc Omar, 33)씨 이야기다.
플랫폼 '노동자', 라이더의 또다른 이름
남들 버는 만큼 벌기 위해서라면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하루 10시간은 도로 위를 달려야 하는 사람들.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아야만 일할 수 있고 그들의 지시대로 움직이면서 나아가 GPS로 업무 동선까지 통제 당하는 직업군. 하지만 근무 시간을 선택하는 등 자유가 있다는 이유로 노동자로는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
라이더. 한국 사회는 그들을 플랫폼 '노동자'라고 불렀다. 그들의 정체를 둘러싼 사회의 복잡다단한 시선이 압축적으로 반영된 이름이다.
한국에서 라이더는 근로기준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특수형태근로종사자'다. 그러면서 동시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상 '근로자'다.
그런데 라이더가 이름뿐인 플랫폼 노동자가 아니라 '진짜 노동자'인 나라가 있다. 지난 2021년 5월 스페인에선 그동안 자영업자 신분을 유지하던 라이더들이 노동자가 됐다. 라이더를 자영업자가 아닌 노동법상 노동자로 보는 내용의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다. 일명 라이더법(디지털 플랫폼 유통에 종사하는 개인의 고용 상태에 관한 법률)이다.
스페인 사회는 배달앱 기업이 알고리즘을 통해 라이더들을 통제하려는 힘이, 라이더들이 배달앱을 통해 일할 때 누리는 자율성보다 강하다고 보고 이같은 판단을 내렸다.
스페인에서 라이더법이 제정된 지 약 1년 6개월. 노동자가 된 라이더들의 삶은 전과 어떻게 달라졌을까? 두 나라 라이더들의 일상 비교를 통해 스페인의 변화가 한국에 주는 시사점을 살펴봤다.
▲ 배민 라이더 김용석씨 |
ⓒ 이희훈 |
▲ 배민 라이더, 김용석씨 |
ⓒ 이희훈 |
자영업자인 김씨에겐 선택의 자유가 있다. 언제, 어디서 일할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일한 만큼 돈도 벌었다. 김씨가 라이더로 첫 발을 내디딜 무렵, 배달앱 기업들이 했던 이야기는 현실과 엇비슷했다.
그런데 특별한 날을 제외하면 김씨는 사실상 역삼역으로 출근했다. 그곳엔 콜이 많았다. 알고리즘이 지정한 콜당 단가도 강남 다른 구역보다 높았다. 애초에 '대구 사람'인 그가 아내, 아들과 생이별하면서 상경을 결심한 것도 같은 시간을 일해도 더 많은 돈을 벌겠다는 결심 때문이었다. 배민은 서울에서 일하는 라이더들에게 기본료로 몇백 원을 더 얹어주고 있었다.
▲ 배민 라이더, 김용석씨 |
ⓒ 이희훈 |
▲ 배민 라이더, 김용석씨 |
ⓒ 이희훈 |
그는 근무 시간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다. 요즘 그는 오전 9시 30분이 되면 오토바이에 오른다. 종전까지 오전 11시였던 그의 출근 시간은 '비수기'를 맞아 앞당겨졌다.
그도 그럴 게 서울에서 가장 배달 수요가 많은 강남, 그것도 하루 중 가장 많은 주문이 몰리는 피크 시간. 지난 여름 최소 7000원이었던 콜당 단가가 4000~5000원 사이로 눈에 띄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최근 3000원대 콜까지 봤다. 단순히 '비수기'라는 이유로만 감소 폭을 설명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노동의 대가'가 줄어들게 된 이유를 아는 사람은 없다. 이전과 같은 돈을 벌겠다 다짐한 김씨는 결국 노동시간 늘리기를 선택했다.
"정확한 이유는 회사만 알겠죠? 제 생각에는 그냥 이제 비수기라서 그런 것 같아요. 또 코로나 거치면서 전업 라이더 수가 많이 늘었거든요. 배달앱 회사들이 신규 라이더들을 많이 모집했으니까요. '수요 공급 법칙'에 따라서 알고리즘이 바로 배달 단가를 낮추더라고요. 회사도 프로모션을 확 줄였고요."
▲ 배민 라이더 김용석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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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무렵으로 접어들자 김씨의 배달앱엔 콜이 끊겼다. 지독한 '콜사[콜과 한자 죽을 사(死)의 합성어, 콜 끊김]'였다. 하는 수 없이 김씨는 근처 식당으로 향해 빠르게 점심을 해치웠다.
그리고는 앱상 콜이 많은 지역을 표시하는 붉은 빛을 따라 서쪽으로 향했다. 남부터미널역, 방배역을 거쳐 이수역으로 이동하자 GPS를 통해 그의 움직임을 추적하고 있던 알고리즘이 다시 김씨에게 콜을 줬다.
"요즘은 콜사 시간이 하루에 1/3은 되는 것 같아요. 길거리에서 버리는 시간이 더 많은 거죠. 하도 콜이 없으니까 '고센(고객센터)'에 전화를 해본 적도 있어요. 그런데 그쪽에서도 콜이 없으면 있는 곳으로 이동하라는 말만 하더라고요."
어느덧 그의 오토바이는 관악구 신림으로 향했다. 출발지(역삼)에서 편도로 13km 이상 떨어진 곳이었다. 강남구→동작구→관악구로 이동한 셈이다.
▲ 배민 라이더 김용석씨 |
ⓒ 이희훈 |
▲ 배민 라이더, 김용석씨 |
ⓒ 이희훈 |
▲ 배민 라이더, 김용석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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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이날도 오후 1~2시 점심 피크 시간대 총 5건의 배달을 완수했다. 식당에서 음식을 가져다 소비자에게 배달하기까지, 한 콜당 약 12분밖에 걸리지 않은 셈이다. 저녁 피크 시간대인 오후 7~8시에도 4건을 배달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음식을 배달할 수 있었던 것일까.
"사실상 차간·갓길 주행을 안 하기가 힘들어요. 강남엔 외제차가 많아서 무섭지만요. 그렇게 다니다 차 백미러를 긁을까봐 큰 오토바이를 모는 라이더들은 백미러를 떼서 아래쪽에 붙여요. 더 위험해지겠지만 그렇게라도 안 하면, 돈을 못 벌거든요. 또 강남엔 큰 도로가 많아서 신호등에 잘 걸려요. 그래서 골목길로 다니죠."
피크 시간대 몇천 원을 더 벌기 위한 시도는, 어쩔 수 없이 사고로 이어진다. 그는 "오토바이는 한번 사고가 나면 사람이 많이 다친다. 올해 조합원 중에서도 사고로 돌아가신 사람이 있다"며 "특히 골목길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차가 많아 접촉 사고가 많다"고 말했다.
라이더들이 위험 운전을 반복하다 보니 그들을 향한 시민들의 시선 역시 곱지 않다. 김씨는 도로를 오갈 때마다 하루 몇 번씩 경적 소리를 듣는다.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아도, 창문을 내리고 욕설을 내뱉는 차주도 있다.
▲ 배민 라이더, 김용석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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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더, 혁신의노예] 김용석 |
ⓒ 이희훈 |
▲ 배민 라이더, 김용석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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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에 있는 일부 대형 아파트들은 단지 내부에 오토바이가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주민들의 안전을 보호하겠다는 이유지만, 라이더 입장에선 그런 조치가 얄궂다. 음식을 배달하기 위해 입구에서 족히 1~2km를 걸어서 이동해야 하는데 그러면 왕복 30분이 훌쩍 넘어가기 때문이다. 주문이 몰리는 피크 시간에 이런 콜을 잘못 받았다간 그날 업무는 공치는 거나 마찬가지다.
원망 섞인 마음을 담아, 라이더들은 이들 단지에 '천룡인 아파트'라는 별칭을 붙였다.
▲ 스페인 글로보에서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 오마르 |
ⓒ 이희훈 |
▲ 스페인 글로보에서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 오마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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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3일 월요일 오전 8시. 태양의 나라 스페인에선 일출이 찾아오지 않은 아직은 어둑어둑한 시간.
▲ 스페인 글로보에서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 오마르 |
ⓒ 이희훈 |
▲ 스페인 글로보에서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 오마르 |
ⓒ 이희훈 |
곧 오마르와 함께 일할 3명의 동료들도 차례로 도착해 부산스럽게 업무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굳게 닫혔던 마트의 문을 열고, 노동자가 사용할 노란색 글로보 전용 오토바이 열다섯 대를 밖으로 꺼냈다. 오마르는 그중 하나를 골라 이상이 없는지 살폈다.
▲ 스페인 글로보에서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 오마르 |
ⓒ 이희훈 |
▲ 스페인 글로보에서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 오마르 |
ⓒ 이희훈 |
오마르는 수시로 눈을 비볐다. 이날부터 그의 업무 시간대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그는 줄곧 밤부터 새벽 시간대 근무를 고집했다. 야간 수당을 받기 위해서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벌어 재정적인 안정을 찾는 게 목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0월부터 그에겐 새 목표가 생겼다. 알고리즘, 빅데이터를 공부해 전문가가 되는 것. 이를 위해선 오후 시간대를 비워야 했다. 그의 스케줄을 담당하고 있던 매니저는 흔쾌히 스케줄 변경을 허락해줬다.
"피곤하겠다"는 기자의 말에 그는 "이따가 콜 없을 때 커피 한잔 하면 된다. 또 이번주 3일 휴가가 있는 만큼 그때 쉬겠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는 오토바이를 몰고 자리를 떴다.
▲ 스페인 글로보에서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 오마르 |
ⓒ 이희훈 |
오마르가 글로보의 정규직 노동자가 된 건 올해 초다. 그는 2018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자영업자로서 글로보와 계약해 일했다.
"임금이 가장 큰 이유였어요. 스페인에선 콜당 단가가 3~4유로인데, 자영업자 시절엔 한 달에 2400유로(336만 원)를 버는 게 목표였어요. 그렇게 안 벌 수가 없었어요. 자영업자 신분으로 나가는 돈이 워낙 많아서 그보다 적으면 생계 유지가 안 될 정도였거든요."
실제 스페인에선 자영업자로 등록해 일을 하기 위해 한국의 4대 보험에 해당하는 '사회 보장금'으로 매달 300유로를 내야 한다. 거기다 소득세가 20% 수준이다. 한 달 기름값으로 나가는 비용도 약 120유로. 물론 오토바이 수리 등 유지비는 별도다. 게다가 세무 관련 업무를 따로 처리해야 하는 만큼, 자문비도 한 달에 35유로씩 나갔다는 게 그의 얘기다.
▲ 스페인 글로보에서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 오마르 |
ⓒ 이희훈 |
"처음 라이더를 시작한 건 '당신이 원할 때 언제든 자유롭게 일할 수 있고 그 만큼 돈을 벌 수 있다'는 배달앱 기업의 홍보 문구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정작 라이더가 되고 보니 먹고 살기 위해선 일정 수준 이상의 돈을 벌어야 했고, 정작 자유롭게 제 시간을 쓰지 못했어요. 오히려 콜이 안 들어올 땐 마음이 불안해질 정도였어요."
더 많은 배달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그는 콜이 잘 잡히는 거리로 출근했다. 그러면서도 하루 꼬박 10~12시간 길 위를 달렸다.
"어느 순간 애초에 콜이 잘 들어오는 지역으로 출근하는 게 '통제'의 일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시간이나 장소뿐 아니라 콜당 단가도 그랬죠. 수시로 달라지는 임금에 제가 개입할 여지는 없었으니까요. 심지어 가고 싶지 않은 콜을 거절하면 '패널티'도 붙었어요. 과거의 노동 형태가 자율이라는 건 제 착각이었죠."
오마르가 정규 노동자가 된 건 더 이상 플랫폼 노동자로서 자율이라는 거짓말에 놀아나지 않겠다는 무언의 선언이기도 했다.
그의 선택은 옳았을까. 이제 그는 매달 약 1800유로(252만 원)를 받고 일한다. 업무 시간은 하루 8시간(주 40시간), 일주일에 5일이다. 자율 대신 '통제'가 있는 노동자가 됐지만 그 속엔 스케줄 조정이라는 선택지가 포함돼 있었다. 회사에서 출근 지역과, 스케줄을 정해주지만 상사와의 상의하면 변경이 가능하다.
스페인 노동자들에게 주어지는 매년 30일의 유급 휴가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올해 여름, 그는 스페인 남부에 위치한 한 해변가를 찾아 약 일주일간을 선 베드에 누워 맥주를 즐겼다.
▲ 스페인 글로보에서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 오마르 |
ⓒ 이희훈 |
노동자가 됐다고 해서 업무 강도 자체가 줄어든 건 아니었다. 그는 현재 한 시간에 2~4건의 콜을 수행한다. 이날도 그는 오전 8시 1콜(콜을 받은 시간 기준)을 시작으로, 9~10시 4콜, 10~11시 2콜, 11~12시 2콜, 12~13시 3콜 등을 수행했다. 그의 오전 근무 5시간 동안 총 12콜을 수행한 셈이다. 시간당 약 2.4콜이다.
노동자가 된 만큼, 그들은 더이상 가고 싶지 않은 지역의 콜을 거절할 수 없다. 대신 악조건의 콜을 수행하다 늦어져, 1시간에 1콜밖에 처리하지 못 하게 된다 하더라도 상사에게 설명만 잘하면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그의 여유는 특히 '콜사' 시간에 나타났다. 낮 12시 11분. 콜이 잠시 끊겼던 그 무렵, 그는 글로보 익스프레스 안에 있는 화장실을 다녀와 오토바이에 기대 잠깐의 여유를 즐겼다.
"콜이 없을 땐 사무실 안에 구비된 음료를 마실 수 있어요. 커피머신이나 오렌지 착즙기가 있어요. 냉장고가 있어서 요기를 할 수도 있고요. 당연히 콜을 기다리는 시간도 우리의 업무 시간이에요. 그래서 더이상 전전긍긍해 하지 않아요."
목숨을 담보로 돈을 좇지 않다 보니 교통사고가 줄어든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이제 그는 도로 한 가운데를 정속 주행한다. 웬만한 경우가 아니면 차간 주행도 잘 하지 않는다. '안전 운전'을 하다 보니 도로 위에서 그를 향한 경적 소리도 없었다.
"자영업자 시절엔 피크 시간에 무리하게 주행을 했어요. 안 그러면 수입이 크게 줄어드니까요. 사고도 났어요. 많을 땐 한 달에 2~3번 난 적도 있고요. 특히 비 올 때 단가가 높아지니까 더 무리를 하게 되더라고요. 이젠 안 해요. 상대적으로 더 침착하게 다니고요."
그렇게 오마르는 '시간이 돈이었던 삶'에서 해방됐다.
"저는 노예 제도가 사라지면서 '자영업자'라는 새로운 노동 형태가 생겼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과거엔 노예처럼 일했고요. 노동자가 되기 전과 후의 가장 큰 변화요? 전엔 애인이 없었고 지금은 있어요. 삶에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죠."
건당 배달료...결국 돈 때문
결국은 '돈'이었다. 자영업자 라이더가 '콜사'를 두려워하는 것도, 피크 시간에 하나라도 더 배달하기 위해 강남 도로 한복판에서 자신의 목숨을 건 레이스를 하게 된 이유도 다 돈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규직이 된 라이더의 임금은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거꾸로, 회사는 '자영업자'인 라이더와 계약하면서 얼마나 많은 돈을 아끼고 있는 것일까.
▲ 스페인 글로보에서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 오마르 |
ⓒ 이희훈 |
<오마이뉴스>는 김용석씨와 오마르의 지난 7월 수입, 임금 상세 내역을 확보해 세무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그들의 실질 소득과 비용을 추적했다.
먼저 스페인 라이더 오마르의 기본 급여는 1069.84 유로다. 시간당 임금이 9유로로 책정돼 있는 까닭이다. 그런데 사실상의 기본급에 해당하는 돈이 더 있다. 그 아래로 붙은 세 번의 '89.15유로'다. 보통 스페인에선 1년에 월급을 14번 받는다. 스페인 근로기준법 제31조에는 '근로자는 연간 2회의 특별 상여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로보의 정규직 노동자들은 여기에 추가로 1번을 더 받는다. 노사간 협상의 결과물이다.
'추가 교통비'와 '모바일 데이터료' 역시 마찬가지다. 노조는 노동자가 회사를 오갈 때 드는 교통비를 회사가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 업무가 휴대전화 기반으로 이뤄지는 만큼 모바일 데이터료 역시 회사 부담이다. km당 오토바이 보상금도 있다. 회사가 제공한 오토바이가 아닌, 라이더가 이미 갖고 있던 자신의 오토바이를 이용해 직접 배달할 때 주는 돈으로, km당 약 0.16유로다.
마지막으로 회사에서 근무 시간을 정해주지만, 밤에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야간 수당이 따로 붙는다. 시간당 약 2유로가 추가된다.
공제 항목도 있다. 근로소득세 10%의 비중이 가장 크다. 그 다음 업무상 사고·질병과 관련 없는, 일반적인 건강 이상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의 '일반 우발 보장금'이 4.7%다. 직업 관련 기여금과 실업보험 기여금도 빠진다. 이 같은 계산식에 따라 오마르가 지난 7월 최종적으로 받은 임금은 약 1886유로, 우리 돈 약 264만 원이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이미 노동자로서 받는 혜택이 적지 않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혜택이 더 있다. 글로보 측 기여분이다. 먼저 회사 역시 노동자를 위해 '일반 우발 보장금'을 붓는다. 그런데 비율이 23.6%로 노동자(4.7%) 부담보다 크게 높다. 실업과 직업 훈련도 역시 노동자를 위한 비용이지만 부담은 더 크다.
회사는 우리의 산재보험에 해당하는 'AT(업무상 사고)&EP(업무상 질병)'도 내고 있다. 라이더가 노동자인 만큼 이 비용은 회사 홀로 부담한다. 급여보장기금은 회사의 임금 지급을 보장하기 위한 기금으로 역시 회사만의 몫이다. 회사 부담분은 총 542.7유로, 이를 더하면 오마르는 사실상 약 2429유로(340만 원)정도의 혜택을 보고 있는 셈이다.
▲ 배민 라이더, 김용석씨 |
ⓒ 이희훈 |
이제 한국 라이더 김용석씨의 수입을 살펴보자.
그는 지난 7월 1일부터 7월 31일까지 일해 총 576만 3580원을 벌었다. 얼핏 보기에도 적지 않은 수준이다. 하지만 라이더의 총 소득엔 '거품'이 끼어있다. 일할 때 들어간 비용이 하나도 빠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먼저 그는 배민에서 오토바이를 빌려 사용한다. 오토바이 대여료와 유상종합보험료를 합해 주당 8만 3300원이 든다. 기름값도 하루에 1만 원이다.
세금이나 보험료도 따로 낸다. 총 소득에서 소득세·주민세 3.3%(19만 1848원)가 빠진다. 산재보험료도 제해야 한다. 노동자라면 회사가 모두 부담해야 할 돈이지만,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신분인 라이더는 보험료(1.9%)를 회사와 반반(각 0.95%)씩 부담하고 있다. 여기다 월 보수액의 1.6%인 고용보험료도 빠진다. 이 또한 회사와 라이더가 각각 0.8%씩 부담하고 있다.
김씨는 국민연금·의료보험도 100% 부담한다. 노동자였다면 회사와 반반씩 부담해야 할 영역이다. 세무사 자문비도 연간 약 20만~30만 원으로 적지 않다. 그는 작년과 재작년, 세무사 도움을 받지 않고 홀로 업무를 처리하다 과태료까지 토해냈다.
이처럼 제반 비용을 빼면 김씨의 실질 소득은 400만 원대로 뚝 떨어진다. 그런데 지난 7월은 1년 중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성수기'였다.
무엇보다 그 돈을 벌기 위해 김씨는 매일 적게는 하루 10시간, 많게는 12시간씩 뜨겁게 달궈진 도로 위를 달렸다. 오마르의 정규 노동시간(주 40시간)과 비교해보면 주당 최대 20시간, 월간 80시간 차이가 나는 셈이다.
▲ 한국 라이더 김용석씨와 스페인 라이더 오마르의 하루 비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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