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도 모른채 끼여있다 참사" 축제는 한순간 재난이 됐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8명 2022.10.29]
“야, 나 겨우 살아나왔어!” 핼러윈데이를 앞둔 29일 밤 10시 25분쯤 서울 이태원역 1번 출구 쪽 길가에 한 여성이 주저앉으며 이렇게 외쳤다. 뒤이어 “119에 전화 좀 걸어주세요”라고 울먹이며 도움을 청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각종 분장을 하고 거리를 활보하던 사람들은 이 목소리를 핼러윈데이의 단순 해프닝으로 치부했다.
인파로 뒤덮인 이태원역 1번 출구 일대가 아수라장으로 변한 건 순식간이었다. 여기저기서 "사람이 깔린 것 같아요" "저기 사고가 났다"와 같은 다급한 외침이 터져 나오기 시작하면서였다.
곧바로 신고를 받은 경찰과 소방 인력이 도착했지만 수많은 인파에 소란스러운 음악 소리가 뒤섞이면서 이들의 현장 진입을 어렵게 했다. 소방관이 연신 "나와달라"고 외쳤지만 좁은 골목 입구를 채운 사람들은 외침을 듣지 못하거나 길을 터주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밤 11시쯤 이 일대 통행이 통제되면서 참혹한 현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소방인력들이 사상자들을 등에 메거나 이동 병상을 이용해 옮겼지만 역부족이었다. 현장을 지켜보던 시민들이 나서 사상자 이송을 도왔다. 구조 인력은 사고 현장에서 옮겨진 사상자들의 심폐소생술(CPR)을 진행했지만, 사상자가 급격히 늘면서 "심폐소생술 가능하신 분 나와주세요!" "의사 있으면 나와주세요!"란 요청이 빗발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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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병원에 갔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애탄 호소도
사고가 일어난 현장 주위에선 생존자들과 그 지인들의 “도와달라”는 호소가 자정을 지나도록 계속됐다. 사고 현장에 있었던 강모씨는 “심폐소생술을 받던 친구가 병원으로 갔는데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며 “제발 찾아달라”고 말했다.
상황을 알 수 없었던 외국인들은 “내 친구가 병원으로 간 거 같은데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주변에 계속 물었다. 지인이 구급차에 태워진 채로 병원에 갔다는 한 남성은 길가에 앉아 눈물만 흘리다가 자리를 떴다.
생존자 “움직일 수도 없이 ‘살려달라’만 외쳐”
생존자들은 살았다는 안도감보다는 참혹한 현장의 기억 때문인지 이동 병상 위에서 몸을 떨고 있었다. 불안한 모습으로 구조현장을 지켜보던 던 김모씨는 “현장에 유명 인플루언서가 나타나면서 사람들이 몰리고, 이로 인해 사람들의 무게중심이 무너지면서 깔린 것 같다”며 “’살려달라’고 외쳤지만, 누구도 움직일 수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생존자는 “사고가 발생한 골목 안에 있었는데 벽에 붙으면서 겨우 살 수 있었다”고 말했다.
3년 만에 ‘노마스크’로 열린 축제의 장이 재난의 현장이 된 것은 좁은 공간에 지나치게 많이 모인 인파 때문으로 추정된다. 현장 생존자들과 목격자들은 “이유도 모른 채 사람들 사이에 끼어있다가 인파가 무너지면서 참사가 발생했다”고 입을 모았다.
한 목격자는 “좁은 골목 위에 있던 다른 골목을 통해 사람이 계속 들어가고, 골목 아래에선 사람들이 빠져나가지 못하면서 피해를 더 키운 것 같다”며 “사고가 난 골목에 있는 상점에 행사가 있다고 하면서 인파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30일 오전 2시 40분 기준 사상자는 220명으로 집계됐다. 120명의 사망자 중 병원으로 이송돼 사망 판정을 받은 인원은 74명이었고, 46명은 현장에서 안치됐다. 소방당국은 29일 밤 10시 22분쯤부터 이태원에서 호흡곤란 환자가 발생했다는 신고를 접수했다.
김남영·나운채·이병준 기자 kim.namyoung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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