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넥타이 매고 “이게 뭡니까”...정치에 직언한 ‘보수 맏형’ [김동길 1928~2022.10.4]
보수 원로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가 4일 별세했다. 94세.
5일 유족에 따르면 숙환으로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 중이던 김 교수는 전날 오후 10시 30분쯤 숨을 거뒀다. 고인은 지난 2월 코로나19에 걸렸다가 회복했지만, 3월부터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
김 교수는 11년 전 생일(10월 2일)에 이철 당시 세브란스병원 의료원장 앞으로 편지를 보내 “내가 죽으면 장례식, 추모식은 일체 생략하고 내 시신은 곧 연세대학교 의료원에 기증해서 의과 대학생들의 교육에 쓰이기를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원고지 한 장 분량의 이 편지에서 그는 “누가 뭐라 해도 이 결심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며 “만약 법적 절차가 필요하면 나에게 미리 알려달라”고 당부했다.
김 교수의 임종을 지켰던 제자인 김동건 아나운서는 5일 중앙일보와 만나 이 편지를 공개하고 “평소에 늘 시신을 기증한다고 말씀은 하셨지만, 이렇게 편지까지 써놓으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제자들은 고인의 유지에 따라 연세대 동문회장으로 기획했던 장례식도 유족과 상의해 취소하고, 서대문구 자택에 분향소만 마련했다. 고인은 이 자택도 생전 누나인 김옥길(1921~1990) 전 이화여대 총장을 기리는 ‘김옥길 기념관’으로 건축해 이화여대에 기증했다.
고인은 1928년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나 46년 월남, 연세대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에반스빌대와 보스턴대에서 각각 사학과 석사,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연세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군부독재 시절 사회 비판적인 글을 쓰다가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으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고 해직 후 복직했지만, 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돼 또다시 해직됐다.
이후 민주화운동과 거리를 두며 보수 쪽으로 기운 김 교수는 1991년 강의 도중 ‘강경대 구타치사 사건’에 대한 폄하 발언으로 학생들의 반발에 부딪혀 결국 스스로 강단을 떠났다.
고인은 현실 정치에도 뛰어들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1992년 창당한 통일국민당 소속으로 14대 국회의원(서울 강남갑)이 된 고인은 “이게 뭡니까”라는 유행어를 낳으며 대중적 인지도를 얻었다. 늘 길렀던 콧수염과 매고 다녔던 나비넥타이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신민당과 자유민주연합 등에서 활동하다 1996년 15대 총선을 앞두고 탈당하며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말년에는 보수 논객으로 활동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생전에 “국민에게 사과하는 의미에서 자살이라도 해야 한다” 등의 글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려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지난해까지 유튜브 채널 ‘김동길 TV’를 운영했고, 올해 초에는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대선 후보 후원회장을 맡았다.
5일 분향소에는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과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등이 방문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노재헌 변호사와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등도 이곳을 찾았다. 안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어려웠던 대선 과정에서 큰 힘이 돼 주셨고, 단일화 과정에서도 현명한 조언을 해주셨다”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대한민국이 잘 되기만을 바라셨던, 우리 시대를 상징하는 지식인”이라고 추모했다.
평생 독신으로 지낸 고인의 유족으로는 여동생 옥영·수옥씨가 있다. 발인은 오는 7일이다.
추인영·남수현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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