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나라'로 갔다···'한국의 디즈니' 꿈꾼 넥슨 창업자 [김정주 1968~2022.2.28]

박민제 2022. 12. 6.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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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정주 NXC 대표.

국내 1위 게임사 넥슨의 창업자 김정주 NXC 이사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54세.

NXC는 1일 "넥슨을 창업한 김정주 NXC 이사가 지난달 말 미국에서 유명을 달리했다”고 밝혔다. NXC는 “유가족 모두 황망한 상황이라 자세히 설명해 드리지 못한다”며 “다만 고인은 이전부터 우울증 치료를 받아왔으며, 최근 들어 악화한 것으로 보여 안타깝다”고 설명했다. 회사 측은 “조용히 고인을 보내드리려 하는 유가족의 마음을 헤아려주시길 간절히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정주 넥슨 창업자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산학과 박사 과정에 다니던 1994년 넥슨을 창업했다. 같은 과 친구 사이였던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와 함께 세계 최초 그래픽 온라인게임 ‘바람의 나라’를 만들었다. 이후 넥슨은 ‘퀴즈퀴즈’‘카트라이더’‘크레이지아케이드’‘메이플스토리’ 등을 히트시키며 온라인 게임 전성시대를 열었다. 2008년 던전앤파이터를 만든 네오플을 인수하면서 회사 규모가 커졌고, 2011년 일본 도쿄 증시에 넥슨을 상장시켰다.

특히 고인은 넥슨을 디즈니처럼 사랑받는 지식재산(IP) 비즈니스 회사로 만들고 싶어했다. 2015년 인터뷰가 실린 책『플레이』를 통해 김 창업자는 "디즈니에서 제일 부러운 건 (콘텐트를 즐겨 달라고) 아이들을 쥐어짜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라고 말했다.

고 김정주 NXC 대표.


그는 국내 대표적인 벤처 1세대 기업인으로도 꼽힌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86학번으로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글로벌 투자책임자(GIO)와 동기다. 두 사람은 KAIST 대학원 시절 기숙사 룸메이트이기도 했다. 모두 '한국 인터넷의 아버지'로 불리는 전길남 KAIST 명예교수의 제자들이었다. 이광형 KAIST 총장도 고인을 아꼈다.
두 창업자와 비슷한 시기 학교에 다니다 창업한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이재웅 전 쏘카 대표 등은 1세대 벤처 5인방으로 불렸다. 고인과 4명의 창업가는 2014년 유한회사 ‘C프로그램’을 공동으로 출자해 설립했다. C프로그램은 벤처자선기구(Venture Philanthropy)로 사회 변화를 이끌어 내는 혁신 기업·단체를 후원하고 있다.

정보통신(IT) 업계에선 고인을 ‘승부사 기질이 강한 사업가이자 투자자’로 평가한다. 세계 최고의 게임 회사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엔씨소프트와 글로벌 게임사 일렉트로닉아츠(EA) 인수를 함께 추진하기 위해 엔씨 지분을 매입(2012년) 하는가 하면, 글로벌 강소 브랜드와 스타트업들에도 꾸준히 투자했다. 넥슨을 2016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고, 게임 회사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긴 이후 전 세계를 돌며 벤처투자에 몰입했다. 북유럽 유모차 브랜드 '스토케'를 비롯한 명품 브랜드를 인수했고, 뉴욕 기반의 콜라보레이티브 펀드 이사로 활동하며 혁신 스타트업들을 발굴하는 데 열심이었다. 특히, 현재 넥슨의 핵심 자산이 된 던전앤파이터 개발사 네오플 인수는 국내 IT업계가 꼽는 성공적인 인수합병(M&A) 사례다. 유망한 후배 창업가들에게 엔젤투자를 하는 데도 적극적이어서 '김정주 키드'로 불리는 창업가들이 많다. 국내 손에 꼽히는 자산가이지만 등산복 차림에 배낭 메고 다니는 걸 즐겼다.

그러다 지난 2016년 고교 동창이던 진경준 전 검사장에게 넥슨 비상장 주식 4억2500만원어치를 공짜로 준 혐의를 받고 곤혹을 지르기도 했다. 그는 2018년 5월 서울고법 파기환송심에서 무죄로 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날 김정주 창업자의 사망 소식을 들은 벤처 IT업계에선 황망하다는 반응이 잇따른다. 오웬 마호니 넥슨 대표는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우리의 친구이자 멘토인 그는 세상에 헤아릴수 없을 정도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어 “항상 주변의 회의론자들을 무시할 수 있게 ‘창조적 본능을 믿으라’며 우리를 격려해줬던 그를 잃은 슬픔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며 “많은 넥슨 가족과 친구들이 그를 그리워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카카오 남궁훈 신임대표 내정자는 “업계의 슬픔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많은 경험과 인맥을 통해 여러 혁신적 창업가들을 지원했던 분이고 아직도 사회에 더 많은 기여할 수 있는 분이신데 이렇게 가셔서 황망하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 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 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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