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더 다는 것보다 중요” 주한미군 철수 반기든 미군 장군 [존 싱글러브 1921~2022.1.29]
1977년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 계획에 반대했다가 소환됐던 존 싱글러브 전 유엔사령부 참모장(예비역 소장)이 지난달 29일 별세했다. 100세. 뉴욕타임스(NYT)는 테네시 주 프랭클린에 사는 부인 조앤 여사가 지인을 통해 플로리다주 탬파의 특수전협회에 장군의 별세 소식을 전했다고 보도했다.
77년 주한미군 5년 내 철군 계획 반기
인권외교 앞세운 카터 행정부 결정에
"정보 바탕으로 판단해야" 강조한 군인
2차대전엔 적진 잠입 포로 구출한 무골
6·25 때는 금화지구 전투 대대장 참전
베트남전선 적진에 잠입해 특수전 펼쳐
NYT 등에 따르면 싱글러브 장군은 77년 5월 워싱턴포스트(WP)와 인터뷰에서 “5년 안에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는 카터 대통령의 계획은 전쟁의 길로 이끄는 오판”이라고 말했다. 당시 카터 행정부는 인권 문제 등을 이유로 한국에 대한 군사원조를 중단하고 5년 내 주한미군을 철수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WP 보도가 나가자 워싱턴에 호출돼 발언 경위를 호되게 추궁당했다. 주변에선 ‘언론이 발언을 잘못 인용됐다고 말하라’고 회유했다. 하지만 백악관에 불려간 그는 30분 동안 카터 대통령을 면담하면서 “(언론 보도는) 내 말을 매우 정확히 인용한 것”이라며 “주한미군 철수계획은 2~3년 전의 낡은 정보에 따른 것으로 현재 북한군은 그때보다 훨씬 강하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주한미군 철수 계획은 그 뒤 백지화했다.
세월이 지난 뒤 한 관계자가 “당시 가만히 있거나 발언이 호도됐다고 했으면 별 몇 개를 더 달 수 있었을 텐데”라고 말하자 “내 별 몇 개를 수백만 명의 목숨과 바꿨다고 생각하면 그보다 더 보람 있는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2016년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나는 공산주의자들이 어떻게 행동하는 줄 잘 알고 있었다”고 판단의 배경을 설명했다.
사건 뒤 조지아주 맥퍼슨 기지의 교육 담당으로 옮겼던 싱글러브는 계속 카터 행정부의 안보 정책을 비판하다 78년 군을 떠났다.
80년대 적성국인 이란에 무기를 팔고 그 비용으로 니카라과의 친미‧반공 게릴라를 지원하려 했던 이란-콘트라 게이트에 개입한 혐의를 받아 의회에서 증언했다. 하지만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싱글러브 장군은 2016년 한미동맹을 지킨 공로로 ‘제4회 백선엽 한미동맹상’을 수상했다. 국방부가 주관하고 중앙일보 후원하는 백선엽 한미동맹상은 한·미 동맹 60주년을 맞은 2013년 동맹의 의미와 중요성을 조명하고 미래 동맹의 발전을 위해 제정됐다.
몸이 불편해 수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던 싱글러브 장군은 당시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나는 한국과 내 나라(미국) 양쪽에 올바른 행동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때 미군을 철수했다면 분명히 소련과 중국이 북한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한반도로 들어왔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싱글러브 장군은 1921년 캘리포니아주 인디펜던스에서 태어나 39년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 입학했지만 군에 입대하면서 중퇴했다. 58년 뒤늦게 UCLA에서 학업을 마치고 정치학으로 문학사 학위를 받았다.
43년 소위로 임관한 뒤 전략사무국(OSS) 소속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유럽에선 프랑스의 나치 점령지에 잠입해 레지스탕스를 훈련하고, 태평양 전선에선 일본군에 억류된 연합군 포로를 구출하는 특수작전에 참여했다. 47년 OSS가 중앙정보국(CIA)으로 개편된 뒤 국공내전이 치열하게 벌어졌던 만주 담당으로, 49년 CIA 서울지부가 설치되면서 중국 담당으로 각각 활동했다.
6·25전쟁에도 참전해 53년 철의 삼각지대의 김화지구 전투에서 대대장으로 싸웠다. 베트남전에는 북베트남군이 보급로로 활용됐던 이웃 중립국 라오스와 캄보디아의 호찌민 루트에 잠복해 침투하는 공산군을 매복 공격했다. 싱글러브 장군이 ‘전설적인 특수전 전사’로 불리는 이유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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