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껍질 내려와!”…검열 조롱한 中 반정부 시위 숨은 코드
‘바나나 껍질 새우 이끼’, ‘프리드만 방정식’…
지난달 26일부터 28일 새벽까지 벌어진 중국 ‘백지혁명(白紙革命·#A4Revolution)’ 시위에 등장한 문구들이다. 정치적 메시지는커녕 뜻도 알쏭달쏭하지만, 실은 중국 시민들이 당국의 검열과 단속을 피하기 위해 고안한 ‘암호 구호’다. 발음은 비슷하지만 뜻이 전혀 다른 어휘들에 반정부 메시지를 담았다.
뉴욕타임스(NYT)의 칼럼니스트 니컬러스 크리스토프가 최근 칼럼에서 주목한 ‘바나나 껍질’과 ‘새우 이끼’가 대표적. 바나나 껍질은 중국어로 ‘샹자오피(香蕉皮)’로 이 단어의 중국 한어병음 표기 초성 이니셜은 ‘시진핑(習近平)’과 같다. 또 새우 이끼는 중국어로 샤타이(虾苔)인데, 퇴진이나 하야라는 뜻의 샤타이(下台)와 발음이 같다. 결국 이 같은 해석을 아는 중국인들에겐 ‘시진핑 하야’로 읽히는 문구다.
앞서 시 주석의 모교인 칭화대 학생들이 우주의 팽창 속도를 측정하는 ‘프리드만 방정식(Friedmann equations)’이 적힌 A4용지를 들고 시위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방정식의 주인공 프리드만의 발음은 ‘봉쇄당하지 않은 자유로운 사람’을 뜻하는 ‘프리드맨(Freed man)’과 비슷하다. 상하이 우루무치 거리에서 한 여성이 낙타과 동물 알파카 세 마리와 함께 걸은 것도 의미심장하게 해석됐다. 알파카의 중국어 단어인 차오니마(草泥馬)는 “엄마를 엿먹이라(肏你媽)”는 모욕적인 뜻을 가진 말과 발음이 같다.
통제와 검열이 일상화된 중국 사회에서 젊은 세대 중심의 ‘백지 시위’가 언어 유희와 풍자로 잠재된 변화 욕구를 분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치적 활동 공간이 어느 정도 확보돼 명확한 정치구호를 외쳤던 1989년 천안문 사태와 확 달라진 풍경이다. 길거리 시위에 나설 경우 구금과 체포를 각오해야 하는 엄혹한 환경에서 중국 시민들이 창의적인 우회로 찾기에 성공한 셈이다.
시위대들은 이번 시위에서 중국 국가인 ‘의용군 행진곡’을 부르며 공안(경찰)을 난감하게 만들기도 했다. 특히 강조하여 외친 구절 “일어나라,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는 자들아(起來. 不願做奴隷的人們)” 때문이다. 크리스토프 칼럼니스트는 “국가를 부르는 젊은이들을 체포하는 것은 어색하겠지만, 노래 가사에 담긴 시위대의 의미를 아는 시진핑 주석은 이를 참을 수 없을 것”이라며 “천안문 사태를 취재한 한 베테랑 기자는 ‘중국에서 3~4명이 모여 중국 국가를 부르면 체포될 것’이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시위대는 반어법으로 단속에 맞서기도 했다. 경찰이 ‘(코로나) 봉쇄 철회’를 외치지 말 것을 요구하자 “봉쇄를 더 해달라” “코로나19 검사를 더 많이 하고 싶다!”를 외치는 식이다. 온라인에선 “맞다 맞다 맞다”(對, 對, 對) “좋다 좋다 좋다”(好, 好, 好) “그렇다 그렇다 그렇다”(是, 是, 是) 등 긍정적인 중국어 표현을 수십차례 반복적으로 적은 글로 중국 당국의 온라인 검열을 피한 반어법 시위가 유행했다.
중국 언론인 토니 린(林東尼)은 트위터에 “(반어법 구호 같은 시위대의) 용감한 노력은 이른바 ‘무기화된 소극적 공격성(weaponized passive aggressiveness)’이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는 마치 검열로 인해 언론자유가 없던 1980년대 전두환 독재정권 당시 한국 방송사의 뉴스보도 행태를 시민들이 ‘땡전뉴스’(오후 9시 뉴스 시보가 ‘땡~’ 하고 울리자마자 “전두환 대통령은~”으로 시작하던 뉴스)라고 풍자했던 것과 유사하다.
이번 시위를 주도한 중국 Z세대(1996년 이후 출생자)가 인터넷 기반의 미디어 문화를 공유한 것도 배경으로 지적된다. 류하이룽(劉海龍) 런민대 언론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는『아이돌이 된 국가』란 책에서 “온라인 애국주의 활동을 벌이는 중국 신세대 네티즌 ‘소분홍(小粉紅)’도 아이돌 게시판 등 중국 온라인 하위문화(subculture)에서 유머와 농담을 하며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온라인에서 거침없는 발언을 하는 데 상대적으로 익숙한 세대라는 뜻이다.
장정아 인천대 중국학술원 중국화교문화연구소장은 “비록 애국주의 형태로 나타나긴 했지만 소분홍 문화의 기반은 풍자와 유머”라며 “공산당과 시진핑 주석에 대한 불만도 이런 하위문화에 힘입어 시위로 표출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대에서 벌어진 반중(反華) 해외세력 언쟁도 같은 맥락이다. 시위 중 “군중 사이에 해외 반중 세력이 있다”는 주장에 시민들은 “(봉쇄로 지금 해외로 나갈 수는 있나. 인터넷으로도 해외 못 나간다. 우리가 해외세력인가”라고 비꼬았다. 그러면서 “우린 모두 중국인. 당신이 말하는 해외세력은 (공산당이 강조해 온) 마르크스와 엥겔스다” 라고 비꼬았다.
이번 시위가 향후 중국 사회에 변화를 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중국 당국은 더 강력하게 검열하고 언론을 통제하려 하겠지만 시 주석이나 공산당의 정책에 인민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이번 시위로 중국 시민들이 공유했다는 점에서다. 크리스토프 칼럼니스트는 벌거벗은 임금님 동화를 언급하며 “황제(시진핑)가 벌거벗고 있음을 모두가 알게 됐다”며 “(중국 정부는 검열을 통해) ‘큰 침묵’을 복원하겠지만 향후 벌거벗은 황제가 받을 도전이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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