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첫 공채 출신 여성 CEO…마케팅 아이디어 뱅크
첫, 첫, 첫….
이정애 LG생활건강 신임 사장(59)은 LG그룹 내 역사를 써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LG그룹(전 럭키) 공채 출신으로 전례 없는 히트 상품들을 쏟아내며 LG생활건강 위상을 끌어올린 게 첫 번째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 LG그룹 내에서 공채 출신 첫 여성 부사장에 올랐다. 이번에도 역시 공채 출신 첫 여성 CEO로서 ‘첫’ 타이틀을 이어갔다. 입사 36년 만으로 LG그룹에서도 1947년 그룹 창립 후 75년 만의 일이다. 특히 18년간 LG생활건강을 이끌어오며 ‘경영 구루’라는 평가를 들어온 차석용 전 LG생활건강 부회장 후임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는다. LG생활건강은 이 사장을 CEO로 내정한 이유에 대해 “생활용품 사업부장, 럭셔리 화장품 사업부장, 음료 사업부장을 역임하며 LG생활건강 전체 사업과 조직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LG그룹 첫 여성 부사장 기록도
이정애 사장 경력은 어찌 보면 단출하다. 대학 졸업 이후 36년간 줄곧 LG생활건강에서 마케팅 업무에 집중해왔기 때문이다. 이 사장을 두고 ‘LG생활건강을 A부터 Z까지 속속들이 가장 잘 아는 인물’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기도 하다.
이 사장은 이화여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1986년 LG그룹 전신인 럭키에 입사했다. 입사 직후부터 주로 생활용품 부문에서 경력을 쌓았다. 헤어케어, 보디워시, 기저귀 등 다양한 제품군의 브랜드 마케팅을 담당해왔다. 2009년 생활용품사업부 마케팅 상무로 승진했고, 2011년 LG생활건강 생활용품 사업부장에 선임됐다.
그는 자타공인 브랜드 마케팅의 아이디어 뱅크로 불린다. 특히 여성 소비자 감성을 자극하는 마케팅 전략에는 경쟁사 마케터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탁월한 감각을 보여왔다. 헤어 케어 ‘엘라스틴’ ‘리엔’, 세탁 세제 ‘테크’, 보디용품 ‘온더바디’, 치약 ‘페리오’ ‘죽염’ 등 수많은 히트작을 연달아 쏟아냈다. 섬유유연제 ‘샤프란’, 생리대 ‘바디피트 귀애랑’ 출시를 주도했다.
생활용품 사업부장을 맡던 2012년, 미국 프리미엄 친환경 생활용품 브랜드 ‘메소드’의 국내 출시를 이끌기도 했다. 2000년 설립된 메소드는 주방 세제, 주거 세제, 세탁 세제, 인체 세정제, 아기용품 등을 제조·판매하는 미국 1위 프리미엄 친환경 생활용품 회사다. 메소드 기술력과 LG생활건강의 생활용품 사업 유통 노하우 시너지를 톡톡히 누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생활용품서 히트 브랜드 양산
▷럭셔리 화장품·음료 사업도 관할
생활용품 외 다른 사업으로 영역을 넓힌 건 2015년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다. 전무 3년 차에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LG그룹 최초 공채 출신 여성 부사장이 됐다.
부사장에 선임된 후 럭셔리 화장품 사업부장을 맡았다. ‘후’ ‘숨’ ‘오휘’ 등 LG생활건강 럭셔리 화장품 브랜드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글로벌 브랜드로 육성하는 데 주력했다. 특히 궁중 콘셉트의 럭셔리 화장품 브랜드 ‘후’는 ‘왕후의 궁중 문화’라는 차별화된 감성 가치를 앞세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2016년 단일 브랜드로는 처음으로 연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금융위기 여파로 경기가 위축됐던 2018년 ‘후’는 국내 화장품업계 최초로 단일 브랜드 연매출 2조원을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다.
이 사장은 럭셔리 화장품 부문에서 아모레를 넘어설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고 평가받는다.
LG생활건강은 2020년 화장품 역사상 처음으로 아모레를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2020년 코로나19 여파에도 불구하고 LG생활건강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LG생활건강 매출은 7조8445억원, 영업이익은 1조2209억원이었다. 이 중 화장품사업부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5조5524억원, 9647억원으로, 2011년 2배 이상 차이를 보이던 아모레퍼시픽 매출을 9년 만에 넘어섰다.
럭셔리 화장품 브랜드에서 성과를 낸 이 사장은 음료 사업에도 경험을 쌓았다. 2020년 코로나19 발생 이후 야외 활동이 급감했지만, 온라인과 배달 음식 채널 확장으로 실적을 만회했다. 특히 ‘코카콜라’ ‘몬스터 에너지’ ‘씨그램’ 등 주요 브랜드를 성장시켰다는 점은 공로로 인정받는다. 소비 트렌드에 발맞춘 제품 육성과 적극적인 마케팅, 유연한 채널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LG생활건강은 “디테일한 면까지 꼼꼼히 챙기는 것이 이 사장의 강점”이라며 “폭넓은 지식과 경험을 갖춘 전문가로서 큰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이 사장은 또한 누구에게나 잘 다가서는 친근한 타입으로 잘 알려졌다. 후배들에게는 포근한 누나로, 친구 같은 언니로 통하고, 선배로부터는 치밀하고 일 잘하는 아이디어 후배로 기억된다는 게 LG생활건강 안팎의 얘기다.
▶‘경영 구루’ 차석용 후임 부담
▷실적 올리고 중국 사업 정비해야
이 사장에게는 지금까지의 명예만큼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게 쌓였다.
2005년부터 18년 동안 CEO를 맡은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은 용퇴했다. 2005년 1월 1일자로 LG생활건강 사장직에 취임한 그는 2006년 당시 1조원이었던 LG생활건강의 매출액을 2019년 7조원으로 키워냈다.
‘차석용 매직’을 이끌어온 그를 넘어서는 건 이 사장의 몫이다. 특히 최근 실적이 하락세라는 점은 그의 어깨를 무겁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힌다.
LG생활건강 분기 영업이익은 2017년 4분기(1852억원) 이후 5년 만에 2000억원 아래로 떨어졌다. 올해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9.2% 감소한 1조6450억원, 영업이익은 52.6% 감소한 1756억원이다. 2분기에는 매출 1조8627억원(7.9% 감소), 영업이익 2166억원(35.5% 감소)을 기록했다. 3분기 역시 매출 감소세를 피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LG생활건강의 대표 사업인 화장품이 고전하고 있다는 점이 뼈아픈 대목이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기준 연간 영업이익(1조1764억원) 가운데 76.3% 비중인 8977억원이 화장품 사업에서 발생했다. 매출 비중은 66%였다. 그러나 올해 1~3분기 기준 화장품 사업 영업이익(2299억원)이 전체 영업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9.5%로 급감했다. 매출 비중은 44%로 쪼그라들었다.
해외 사업을 어떻게 꾸려나갈지 새로운 전략도 필요하다.
LG생활건강은 3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중국 소비 둔화로 매출과 이익이 크게 영향 받았다”며 “올해 초 시작된 중국 봉쇄 정책이 중국 경제 전반의 침체로 이어졌고, 원자재 가격 상승과 환율 영향으로 원가 부담이 가중됐다”고 설명했다.
LG생활건강은 2010년대 중반부터 해외 사업을 확대하겠다고 선언하며 첫걸음으로 중국 시장에 집중했다. 그 결과, 해외 매출 비중은 2015년 당시 20% 수준에서 현재 40% 이상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지만 동시에 중국 의존도가 크게 높아졌다. LG생활건강의 뷰티 사업 매출에서 해외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40% 이상이다. 이 가운데 중국 시장 비중은 50%에 육박한다.
이후 중국 시장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북미와 일본을 중심으로 새로운 시장 개척에 나섰다. 2020년 이후 ▲리치 북미·유럽 사업권 인수(773억원) ▲미국 보인카 인수(1170억원) ▲존슨앤존슨 도미니카 치실 공장(146억원) 인수 ▲미국 더크렘샵 인수(1525억원) 등 북미를 중심으로 M&A(인수합병)를 줄줄이 진행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을 제외한 해외 시장 매출 비중은 아직 미미한 상태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7호 (2022.12.07~2022.12.1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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