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대의 은퇴일기⑭] 탑골공원 주변 사람들

데스크 입력 2022. 12. 6.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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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골공원은 일제 강점기 때 기미독립선언문을 낭독한 유서 깊은 곳이다. 서울 도심에 있어 찾는 사람이 많다. 사정이 여의치 않은 어르신들의 왕래가 잦다 보니 주변에는 저렴한 비용으로 소일을 할 수 있는 곳이 많다. 또한, 6~70년대 분위기가 풍겨 이를 즐기려는 사람들도 가끔 찾는다.


탑골공원 정문인 삼일문으로 들어가면 가을을 맞아 노오란 은행잎이 수북이 쌓여있다. 오른쪽에는 삼일운동 기념비가 있고 그 옆에는 민족대표 33인의 한 분으로 3.1 독립선언을 주도한 의암 손병희 선생 동상이 있다. 공원 중앙에는 기미독립선언문을 낭독한 유서 깊은 팔각정과 그 뒤쪽에는 국보 2호인 조선 세조 때 세운 원각사지 십층석탑이 유리 보호막으로 둘러쳐져 있다.


3.1운동 당시 기미독립선언문을 낭독했던 팔각정


탑골공원은 3.1운동의 점화지로 잘 알려져 있다. 1919년 3월 1일 12시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팔각정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것을 계기로 독립 만세시위는 전국적으로 펴져 나갔다.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사망하고 부상하거나 투옥되었다. 우리가 광복된 것도 당시의 일치단결된 민족운동의 결실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탑골공원은 서울에 세워진 최초의 근대식 공원이다. 한때는 파고다공원으로 불리다가 1991년부터 공식적으로 탑골공원이 되었다. 도심에 있어 시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거나 휴식을 취하면서 선열들의 독립정신을 배울 수 있는 장소다. 오래전에 왔을 때는 상당히 넓은 것처럼 느껴졌는데 오늘은 모든 것이 한눈에 들어온다. 살랑살랑 부는 갈 바람에 점심 후 시민들이 산책하기도 하고 몇몇은 삼일운동과 관련한 각종 기념물과 부조를 살펴보면서 그 당시 선열들의 애국정신을 되새겨 보기도 한다.


‘역사 없이는 자유가 없다’는 말이 있다. 선열들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피 흘린 것을 생각하면 감사함과 숙연함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종로3가역 주변 길거리에 중고품을 펼쳐놓고 판매하는 모습

종로3가역 1번 출구로 나와 탑골공원 방향으로 오다 보면 각종 중고품을 길거리에 펼쳐놓고 판매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시계를 비롯하여 등산화, 옷과 액세서리, 가방, 모자와 같은 다양한 중고품을 판매한다. 물건을 가지고 나온 사람이나 구경하는 분들도 모두 어르신들이다. 누가 물건을 살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가격이 5000원에서 1만 원 정도로 저렴하다 보니 사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어르신들이 많이 오가다 보니 측은지심을 노린 것인지 우즈베키스탄에서 여행 와서 여비가 떨어졌다며 모자를 놓고 기부를 요청하는 부부도 앉아 있다. 외국인의 이런 모습이 측은해 보였던지 지폐도 여러 장 보인다. 나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건강하게 관광 잘하다 귀국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만 원 한 장을 보탰다.


송해거리 입구를 지나면 탑골공원이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무료급식을 하려는 어르신들이 급식소 입구에서부터 탑골공원 담장을 끼고 돌아 공원 안까지 기다랗게 서 계신다. 족히 2백 미터는 되어 보인다. 따뜻한 가을 햇살이 내리는 날씨지만 대부분 어르신은 허름한 패딩 잠바에 모자를 쓰고 구부정한 허리와 축 처진 어깨에는 배낭이나 가방을 메고 계신다. 지팡이를 짚은 어르신이나 여자분도 가끔 보인다. 그 긴 줄은 시간이 지나도 줄어들 줄을 모른다. 하염없이 그냥 서 있다가 차례가 되어 식사하고 나오면서 두유와 초코파이 하나를 간식으로 받아들고 만족해하신다. 식사 마친 분들은 허리가 펴지고 얼굴은 좀 더 밝은 표정으로 바뀐 것 같다.


무료 급식을 기다리는 긴 줄이 탑골공원 안까지 기다랗게 늘어져 있다


나이 들어 가난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삶을 누리고 펼쳐 가는 데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경제활동이 왕성한 젊은 시절에 아끼고 절약했다가 은퇴 후 수입이 적을 때 알뜰히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탑골공원 주변에는 돼지국밥과 소머리국밥과 옛날순대국 같은 음식을 파는 식당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모두가 어르신들이 어린 시절에 맛있게 드셨던 메뉴다. 점심때가 된 데다 출출하여 식당 거리 입구 돼지국밥집에 들어갔더니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들로 가득하다. 벽에는 “대박 나세요” .“정말 푸짐하네요”. “잘~먹고 갑니다”. “항구의 남자 너무 맛있어요. 마이클” 같은 글자가 빼곡하다. 앞자리에 합석한 어르신은 “고기가 푸짐하면서 부산의 돼지국밥보다 더 맛있다”고 이야기한다. 먹어 보니 말씀 그대로다.


점심을 해결한 다음 근방의 소일거리 풍경을 찾았다. 탑골공원 담 주변에는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커피믹스 자판기는 300원이고, 구두 광택을 내는 것도 2000원이며, 이발도 6천 원이다. 막걸리는 한 사발에 천원이고 안주는 공짜라는 문구도 보인다.


순대국이나 돼지국밥집이 몰려있는 낙원상가 주변


탑골공원 뒤편 담장을 끼고 놓여있는 수십 개의 탁자에는 장기판이 펼쳐져 있고 장기를 두는 사람보다 주위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장기 두는 것이 마음에 안 들 때는 훈수는 못 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혀를 끌끌 차기도 한다. 낮부터 술판을 벌여놓고 술을 마시거나 이미 한잔하고 비틀거리는 사람도 보인다. 손수레에 폐박스를 가득 싣고 가면서 비키라고 고함을 치기도 한다. 어렵고 각박하여 시비 붙기가 십상일 것 같지만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실버영화관과 낭만극장이 있는 낙원악기상가 입구에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사운드 오브 뮤직”이라는 제목의 옛날 극장 앞에 걸었던 것과 같은 커다란 홍보 포스트가 붙어있다. 시골에서 중학교 다닐 때 단체로 문화교실 가서 보았을 때의 가슴 설렜던 추억이 떠올라 4층에 올라갔다. “언니는 말괄량이”와 같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올드영화가 상영 중인데 어르신은 2000원이다.


낙원상가 4층 실버영화관과 낭만극장 입구 풍경


골목 한쪽에 옛날 찻집이 있어 들어갔다. 생강차, 쌍화차, 녹용차까지 있는데 가격은 3000∼6000원이다. 대부분 양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어르신들이 만남의 장소로 이용하는 것 같다. 바깥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매우 여유 있게 보였다. ‘아. 노후를 이렇게 보내는 분들도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젊었던 시절의 향수가 그리워질 때는 어머니와 함께 시골 장날에 가서 맛보았던 가마솥에 펄펄 끓는 고깃국이 생각나 가끔 들러 돼지국밥을 먹어 본다. 그때의 맛과 별반 다름이 없는 것 같다. 옛 생각이 불현듯 떠올라 그리워지고 이런 곳을 찾는 것도 이제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당연함에도 석양에 물들어간 나를 보면 서글프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현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나이가 되었으나 아직은 나 자신이 허용되지 않는다.


조남대 작가 ndcho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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