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쥐의 모성...아, 나의 어머니 [쿠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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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년에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서울 근교의 양지바른 곳에 있는 전원주택에 십여 년을 산 적이 있다.
그 무렵에 나는 작가 박완서(1931~2011) 선생님과 아래 윗집에 살며 같은 성당에 다닌 것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해동이 되면서 양지바른 햇살이 쏟아질 때면 나는 자주 산에 올라갔다.
그때 어미 들쥐는 제대로 기지도 못하고 눈도 못 뜬 그 여러 마리의 새끼들을 이끌고 어떻게 도망쳐 굴속으로 들어갔을까? 물고 갔을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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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년에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서울 근교의 양지바른 곳에 있는 전원주택에 십여 년을 산 적이 있다.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그 마을에 살아 소문이 난 동네였다.
그 무렵에 나는 작가 박완서(1931~2011) 선생님과 아래 윗집에 살며 같은 성당에 다닌 것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고래 등 같은 저택에 사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전세였다. 앞에는 실개천이 흐르고, 낮이면 다람쥐가 놀러 오고, 날이 궂으면 두꺼비가 마당에서 놀았으며, 저녁이면 두견새 소리가 들렸다.
해동이 되면서 양지바른 햇살이 쏟아질 때면 나는 자주 산에 올라갔다. 산에는 들쥐가 많았다. 이제 갖 낳은 새끼들과 양지바른 곳에서 일광욕하던 엄마 들쥐는 인기척이 나면 곧 새끼들을 이끌고 숨는다.
그때 어미 들쥐는 제대로 기지도 못하고 눈도 못 뜬 그 여러 마리의 새끼들을 이끌고 어떻게 도망쳐 굴속으로 들어갔을까? 물고 갔을까? 아니다. 한입에 그 여러 자식을 물고 갈 수 없다.
위험이 닥치면 어미는 자식들에게 젖을 물린 채 끌고 간다. 자식들은 앙다문 젖을 놓치지 않으려고 바둥거리고, 어미는 그 아픈 젖을 참으며 필사적으로 달아난다.
그 장면은 나의 뇌리에 오래 남았다.
그리고 그럴 때면 나는 한국전쟁 때 자식들을 데리고 피란 가던 어머니를 회상했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simon@konkuk.ac.kr
◇ 신복룡
1942년 충북 괴산 출생. 건국대 정외과와 같은 대학원 수료(정치학 박사). 건대 정외과 교수, 건국대 중앙도서관장 및 대학원장, 미국 조지타운대학 객원교수, 한국정치외교사학회장(1999~2000), 국가보훈처 4⋅19혁명 서훈심사위원(2010, 2019),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서훈심사위원 및 위원장(2009~2021) 역임.
저서로 '한국분단사연구' '동학사상과 갑오농민혁명' '한국사에서의 전쟁과 평화' 등 다수, 역서로 '정치권력론' '한말외국인의 기록 전 11책' '군주론'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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