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쥐의 모성...아, 나의 어머니 [쿠키칼럼]

전정희 입력 2022. 12. 6. 11:52 수정 2022. 12. 6.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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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년에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서울 근교의 양지바른 곳에 있는 전원주택에 십여 년을 산 적이 있다.

그 무렵에 나는 작가 박완서(1931~2011) 선생님과 아래 윗집에 살며 같은 성당에 다닌 것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해동이 되면서 양지바른 햇살이 쏟아질 때면 나는 자주 산에 올라갔다.

그때 어미 들쥐는 제대로 기지도 못하고 눈도 못 뜬 그 여러 마리의 새끼들을 이끌고 어떻게 도망쳐 굴속으로 들어갔을까? 물고 갔을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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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역사학자 신복룡, 산책길의 슬픔

나는 중년에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서울 근교의 양지바른 곳에 있는 전원주택에 십여 년을 산 적이 있다.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그 마을에 살아 소문이 난 동네였다.

그 무렵에 나는 작가 박완서(1931~2011) 선생님과 아래 윗집에 살며 같은 성당에 다닌 것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고래 등 같은 저택에 사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전세였다. 앞에는 실개천이 흐르고, 낮이면 다람쥐가 놀러 오고, 날이 궂으면 두꺼비가 마당에서 놀았으며, 저녁이면 두견새 소리가 들렸다.

채소를 사 먹지 않았다. 집을 나서면 바로 아차산(峨嵯山)으로 올라가는 등산로이다. 굳이 등산로랄 것도 없고, 앞 뒷산이 모두가 내 집 정원이었다.
6⋅25전쟁 참상 사진. 한 어머니가 머리를 다친 채 치료를 받으며 자식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해동이 되면서 양지바른 햇살이 쏟아질 때면 나는 자주 산에 올라갔다. 산에는 들쥐가 많았다. 이제 갖 낳은 새끼들과 양지바른 곳에서 일광욕하던 엄마 들쥐는 인기척이 나면 곧 새끼들을 이끌고 숨는다.

그때 어미 들쥐는 제대로 기지도 못하고 눈도 못 뜬 그 여러 마리의 새끼들을 이끌고 어떻게 도망쳐 굴속으로 들어갔을까? 물고 갔을까? 아니다. 한입에 그 여러 자식을 물고 갈 수 없다.

위험이 닥치면 어미는 자식들에게 젖을 물린 채 끌고 간다. 자식들은 앙다문 젖을 놓치지 않으려고 바둥거리고, 어미는 그 아픈 젖을 참으며 필사적으로 달아난다.

그 장면은 나의 뇌리에 오래 남았다.

그리고 그럴 때면 나는 한국전쟁 때 자식들을 데리고 피란 가던 어머니를 회상했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simon@konkuk.ac.kr

◇ 신복룡 
1942년 충북 괴산 출생. 건국대 정외과와 같은 대학원 수료(정치학 박사). 건대 정외과 교수, 건국대 중앙도서관장 및 대학원장, 미국 조지타운대학 객원교수, 한국정치외교사학회장(1999~2000), 국가보훈처 4⋅19혁명 서훈심사위원(2010, 2019),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서훈심사위원 및 위원장(2009~2021) 역임. 
 저서로 '한국분단사연구' '동학사상과 갑오농민혁명' '한국사에서의 전쟁과 평화' 등 다수, 역서로 '정치권력론' '한말외국인의 기록 전 11책' '군주론'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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