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최저임금 1만원, 왜 실패했나

송세영 2022. 12. 6.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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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세영 편집국 부국장


문재인 전 대통령이 최근 페이스북에 “최저임금 대폭 인상은 단기간의 충격을 감수하면서 장기적인 효과를 도모한 정책이었는데, 예상 범위 안에 있었던 2018년 고용시장 충격을 들어 실패 또는 실수라고 단정한 것은 정책 평가로서 매우 아쉽다”고 적었다. 진보적 경제학자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의 책 ‘좋은 불평등’을 추천하면서 일부 아쉬운 대목을 언급한 것이다. 최 소장의 책은 불평등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통념을 비판하며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을 다룬다.

문재인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은 방향의 정당성보다 정책 준비와 실천 과정에 대한 집중적인 점검과 성찰이 필요하다. 문재인정부의 공과 중에 과를 낳은 실마리가 여기 들어 있기 때문이다.

문 전 대통령은 2017년 대통령 선거 때 2020년까지 최저임금 시급 1만원을 달성하겠다고 공약했다. 그해 최저임금이 6470원이었으니 3년 안에 50% 이상을 인상하겠다고 약속한 셈이다. 시간이 촉박하고 인상률이 가파르긴 하지만, 한국 경제의 규모나 소득 수준으로 볼 때 실현 불가능한 공약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률은 2018년 16.4%로 정점을 찍은 뒤 2019년 10.9%, 2020년 2.9%로 주저앉았다. 2020년 시급은 8590원에 그쳤다. 임기 마지막 해인 올해도 9160원으로 1만원에 미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박근혜정부와 문재인정부의 연평균 최저임금 인상률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이전 보수 정부와 차별화하겠다며 소득주도성장을 표방하고 빈부격차 해소에 방점을 찍었던 정부로선 머쓱한 일이다.

문 전 대통령은 2019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이 결정된 2018년 7월 일찌감치 “결과적으로 대선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을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사과할 정도면 무엇이 문제였는지 근본적인 성찰이 있어야 했는데, 당시 정부와 여당에선 ‘목표는 정당했다’ ‘최선을 다했다’ ‘우리 힘만으로 되는 게 아니더라’는 식의 무책임한 발언이 난무했다.

돌이켜보면 문재인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최저임금제도에 반대하거나 인상에 부정적인 이들이 아니라 1만원 인상에 동의하는 이들이 봐도 그랬다. 이게 뼈아픈 대목이다.

문 전 대통령이 언급한 고용시장 충격은 결과일 뿐이다. 문제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통이 중소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 집중됐다는 점이다. 장기적으로 국가 미래를 위한 정책이라면서도 일부에게만 고통이 전가됐으니 반발과 충격, 부작용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거리의 식당이나 카페 업주들부터 직원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지만 당시 정부·여당 인사들은 새겨듣지 않았다. 오히려 ‘최저임금을 올린다고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근거는 없다’ ‘고용이 늘고 있다’ ‘통계로 확인되지 않는다’는 억지를 부렸다. 고통 분담과 고용 충격 완화를 위한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최저임금 인상의 발목을 잡으려는 기득권층의 트집으로 치부했다.

이런 인식에서 나온 대책이 효과적일 리 없었다. 2017년 7월 문재인정부의 첫 최저임금 인상 직후 3조원 안팎의 재정 투입과 신용카드 수수료 경감 등의 대책을 내놨지만, 기존 정책을 짜깁기한 데다 규모도 적고 신청 절차도 까다로웠다. 1년 뒤 정부가 후속 대책 마련에 착수했지만 때를 놓쳤다. 문재인정부가 첫해부터 반대론자나 신중론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작용을 시뮬레이션하고 고강도 대책을 마련했으면 결과는 달랐을 수 있다.

이런 패턴은 이후에도 반복됐다. 부동산 정책에선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고 있지만 공급은 충분하니 투기 수요만 억제하면 된다고 고집했다. 저금리로 투기 수요가 불붙은 상황에선 공급 확대를 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토건 세력의 앞잡이로 간주했다. 뒤늦게 공급 확대에 뛰어들었지만 실기한 뒤였다. 탈원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논란이 거셌던 정책들은 대부분 비슷한 패턴을 보였다.

찬반 이분법에 매몰돼 실패를 자초하는 게 문재인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집권 초기인 윤석열정부도 다른 목소리에 귀를 닫은 채 비슷한 오류에 빠질 조짐이 보인다. 1인 권력의 왕정이나 전체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라면 반대쪽 목소리도 듣는 게 상식이다. 그게 그렇게 어렵고 싫다면 신중론자의 목소리라도 귀담아들으면 좋겠다.

송세영 편집국 부국장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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