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재앙 피해야”… ‘친노조’ 바이든도 물류 파업 막았다
바이든 강제 법안 서명… 일단락
■ 美 의회 19번째 분쟁 개입
국민 57% “합의 강제 법안 지지”
미국은 노사 분쟁을 개별 사업장 내에서 풀 것을 존중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 경제에 영향을 끼치는 분쟁의 경우는 대처가 다르다. 미국 정부와 의회는 물류를 책임지는 철도와 항만 분야의 노사 갈등이 깊어지면 파업을 막기 위한 중재에 나서며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가장 최근 사례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 철도노조의 파업을 막은 것이다. 친노조 행정부를 자처해 온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일(현지시간) 핵심 지지기반인 노동계 비판을 무릅쓰고 철도 노사 잠정 합의안을 강제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그의 개입으로 파업은 불법화됐고 연말 물류대란 우려는 수그러들었다.
미국 철도노조 단체교섭 협상은 2020년 1월 시작됐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의 무역 전쟁으로 미국의 농업과 제조업이 큰 타격을 입었고, 화물 운송 수요는 급감했다. 철도 회사 경영진은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비용 절감을 선택했다. 더 적은 수의 근로자가 더 긴 열차를 수송해 운송 효율을 높이는 ‘정밀 스케줄링 운송(PSR)’ 정책이 도입됐다.
미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PSR 영향으로 2018년 11월부터 2020년 12월까지 철도 산업에서 일자리 약 4만개가 사라졌다. 2019년 2만명에 가까운 철도 노동자가 해고됐다. 워싱턴포스트(WP)는 “대공황 이후 가장 많은 해고”라며 “철도 노동자의 약 10%가 1년 만에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그사이 노동자의 삶의 질은 떨어졌다. 북미 대형 화물열차 운영사 BNSF 철도의 저스틴 샤프 차장은 지난여름 어금니 충치 치료 시기를 놓쳐 수개월 뒤 어금니를 뽑아야 했다고 AP통신에 말했다. 유급 병가가 없고 연차를 쉽게 낼 수 없는 열악한 근로조건 탓이었다. 팬데믹 이후 최악의 인플레이션이 찾아왔지만 2년간 단체협약이 타결되지 않아 임금도 오르지 않았다.
노조는 쟁의 행위를 시작했고 타결되지 않자 노사는 지난 2월 국가중재위원회에 중재를 요청했다. 그러나 합의를 이루지 못해 지난 6월 협상 중단이 선언됐고, 파업을 위한 냉각 기간에 돌입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냉각 기간이 끝나기 직전인 지난 7월 15일 철도노동법(Railway Labor Act)에 따라 개입을 위한 대통령 비상위원회를 가동했다. 마티 월시 노동부 장관 중재로 노사 양측은 지난 9월 15일 5년간 임금 24% 인상 등을 담은 잠정 합의안을 극적으로 도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때 노사에 각각 전화를 걸어 파업에 따른 경제적 충격 우려를 전달했다고 한다.
잠정 합의안은 그러나 부결됐다. 미국의 12개 주요 철도 노조가 잠정 합의안 비준을 위해 투표를 진행했는데, 4개 노조가 유급 병가 일수 문제를 지적해 반대했다. 나머지 노조가 그 입장을 존중하기로 하면서 결국 전체 노조가 12월 9일 총파업을 하기로 결의했다.
그러자 바이든 대통령이 마지막 카드를 꺼냈다. 헌법 제1조 8항에 따라 미 의회는 주(州) 간의 교역을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상·하원은 노사 잠정 합의안을 강제하는 법안을 연이어 통과시켰고,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일 해당 법안에 서명했다.
여론도 정부와 의회를 지지했다. 유거브 설문에서 미국인 57%는 의회의 노사합의 강제 법안에 지지를 표명했다. 미국 철도협회가 의뢰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 92%가 파업을 피하기를 원했고, 85%는 파업 시 인플레이션 악화가 우려된다고 답했다. 응답자 72%는 잠정 합의안이 양측에 공정하다고 답했다.
최악의 인플레이션에 따른 경제 위기 우려, 정부의 중재 노력에 따른 여론전이 바이든 행정부의 파업 불법화 조치에 우호적 분위기를 끌어낸 셈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파업이 인플레이션을 다시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초당적 합의를 견인해 냈다”고 설명했다.
미 의회의 분쟁 개입은 이번까지 모두 19번이다. 마지막 개입은 1994년이었다. 시카고에서 중서부 9개 주로 이어지는 철도 라인을 담당하던 ‘수 라인’은 임금 인상과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6주 넘게 파업을 지속하고 있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그해 8월 중재를 위한 비상위원회를 가동했고 파업 중이던 노동자에게 업무 복귀 명령을 내렸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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