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호의 한반도평화워치] 28년 지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시대에 맞게 보완해야

입력 2022. 12. 6. 00:56 수정 2022. 12. 6.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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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짜야 할 국가통일전략


박영호 통일연구원 초청연구위원·리셋코리아 통일분과 위원
지난 10월 3일 독일 에르푸르트에서 동·서독 통일 32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1970년 3월 첫 동·서독 정상회담이 열린 곳이다. 그 기념식에 참석한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독일 통일은 한반도 통일의 오래된 미래”라고 말했다. 서독은 정부 수립 40년 만에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고, 정상회담 20년 만에 통일을 달성했다. 올해 한국은 정부 수립 74주년을 보냈으며, 첫 남북 정상회담 22년이 지난 남북 관계는 정상화는커녕 갈등과 대립의 본질이 여전한 상태다.

3년 전 한반도를 항구적 평화지대로 만들자고 약속한 9·19 군사합의는 북한에 의해 빈 종잇장이 돼버렸다. 김정은 정권은 2020년 6월 대남 관계를 대적 투쟁으로 선언하고 탄도미사일 고도화에 속도를 가했다. 지난 9월 초에는 비군사적 조건에서도 핵무기를 선제 사용할 수 있는 정책을 법제화했다. 이로써 한국은 북한의 상시적인 핵 위협 아래 놓이게 됐다.

「 1994년 김영삼 정부 선포…민족동질성 회복하면 통일 가능 예상
시간 흐르며 남북 주민의 신념, 정치·사회 구조 극명하게 달라져
남북 상호 체제 존중이 제도적으로 구현되는 통일정책 추진해야
북핵 위협에 윤 정부 운신도 제한적…‘통일대계위원회’ 가동할 만

북한은 지난달 18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이르기까지 올해에만 35차례 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미국이 제공하는 확장억제의 실행력 제고를 넘어 핵 공유, 전술핵 재배치 등의 주장이 분출하는 이유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억제는 최우선 안보 상수가 됐다. 그 와중에 김여정은 “남조선 졸개들” 운운하며 우리 국민을 향해 반정부 투쟁을 선동했다.

북한·통일에 대한 신뢰도 계속 떨어져

한반도평화워치

이러한 북한에 대해 우리 국민이 신뢰를 보낼 리 없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IPUS)의 통일의식조사에 따르면 2009년 이래 우리 국민의 북한 정권에 대한 신뢰도는 2018~19년을 제외하면 대체로 20~30% 수준이다. 특히 20대의 신뢰도가 가장 낮았다. 통일연구원(KINU)의 2021년 통일의식조사에서는 김정은 정권에 대한 신뢰도는 14.3%에 불과했다. 또 우리 국민 대다수는 북한 정권이 통일을 원치 않는다고 인식한다. IPUS 조사에서 북한 정권이 통일을 원한다고 보는 비율은 20% 선에 불과하다. 합의 무시와 적대 행위를 반복하는 북한을 불신하고 통일을 원치 않는다고 보는 것은 당연하다.

IPUS의 2021년 조사에서 우리 국민의 통일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44.6%로 처음으로 과반수 아래로 떨어졌다. 반면,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고 보는 비중은 29.4%로 2007년 조사 이래 가장 높았다. 같은 해 KINU 조사에서는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2014년 조사 이래 가장 낮은 58.7%였다. 이처럼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낮아지는 경향을 보이나 국민 다수는 여전히 통일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우리 헌법 제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 통일정책의 구현이 통일방안이다. 우리나라의 공식 통일방안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4년 공포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다. 노태우 정부의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 원류다.

이 방안은 한반도가 분단되어 있으나 혈통과 역사, 문화적으로 한(韓)민족으로서 오랜 기간 공동체적 성격을 유지해왔다는 인식을 토대로 한다. 따라서 분단으로 이질화된 민족공동체를 회복·발전시키면 통일을 앞당길 수 있다고 본다. 그 방법으로 남·북한이 개방과 교류·협력해나가면서 신뢰를 쌓아 민족국가로 통합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나가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경제·사회문화공동체를 이루면서 양자 간 문제를 해결해가면 정치 통합 여건이 성숙하고, 민주적 방법과 절차를 거쳐 최종적으로 통일을 달성한다. 이러한 과정을 ‘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국가 완성’의 3단계로 구상했다.

민족공동체, 한민족에 한정되지 않아

그런데 한반도 내외의 전략 환경은 크게 변했다. 미·중 패권 경쟁 심화 와중에 북·중·러 3각 결속은 냉전 시대 이후 가장 강력해졌다. 유엔 안보리의 무력화, 권위주의 팽창과 민주주의 쇠퇴, 경제의 안보 무기화, 군비 경쟁 본격화, 보건·환경·기후문제 등 복합적 위기의 시대다. ‘글로벌 중추 국가’ 비전의 남한과, 최악의 인권 국가 북한의 총체적 국력과 국제적 위상은 비교하기가 민망할 정도다. 남·북한 주민의 믿음 체계와 정치문화, 일상적 삶을 지배하는 정치·사회 구조, 국제적 개방성과 소통 양식은 극명하게 달라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통일정책의 비전과 전략으로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첫째, 우리나라의 사회·인구구조는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 전제한 혈통적 단일민족 국가의 정체성에서 벗어나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혈통과 인종, 문화적으로 다양한 한국인이 많이 늘어났다. 2010년대에 전체 혼인 중 다문화 혼인의 비중은 평균 약 9%였다.

이제 민족공동체의 ‘민족’은 혈통적 한민족에 한정되지 않는다. 향후 점점 더 다민족국가이자 다민족 사회로 진화할 것이다. 또 통일은 단순한 공간적 재통합을 의미하지 않으므로 민족공동체는 한국 사회의 글로벌 개방성과 문화 융합 능력을 담아야 한다. 따라서 ‘민족’은 한국인으로서의 국민 정체성과 자유민주주의, 선진 정치문화를 내재화하는 민족(nation)으로 새롭게 정의되어야 한다.

북한 통일정책, ‘두 개의 조선’으로

둘째,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기능주의 통합 방안이다. 경제·사회문화 분야의 교류·협력이 정치·군사 부문으로 파급 효과를 미쳐 남북 관계의 성격이 변화할 것을 상정했다. 전제는 북한이 점차 개방화·자유화로 체제 변화의 길로 들어선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남북 관계나 북한체제의 성격은 이에 부합하지 않는다.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유럽공동체 경험을 벤치마킹했으나 그 문화적 기반, 진화 과정과 거래 양식은 남북 관계에 제대로 적용되지 않았다. 또 유럽공동체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라는 집단 안보체제가 존재했다.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그와는 다른 남한과 북한의 체제 성격을 생각하지 못했다. 남북 관계의 대립적 성격과 북한의 핵무기 집착 등을 고려할 때, 경제·사회문화 분야와 정치·군사안보 분야의 상호 전략적 연관성을 통일정책에 보완해야 한다.

셋째, 평화적 통일의 관점에서 북한의 본질적 변화 필요성을 반영하지 않는 통일방안은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 북한의 통일정책은 한반도 공산화를 목표로 ‘하나의 조선’ 정책이었으나 1990년대 이래 사실상 북한체제를 영구 지속하기 위한 ‘두 개의 조선’ 정책으로 변했다. 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서로 다른 사회제도의 연방’이라는 체제 방어를 위한 공존의 수단적 논리다. 2021년 1월의 당 규약 개정으로 북한의 통일정책은 핵 보유에 기반한 공세적 성격을 갖게 되나 체제 유지가 더 급선무다. 남북 관계는 그에 도움을 주는 범위 내에서 유효하다.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 지향한 북한체제의 변화는 5년 임기 정부가 교차하며 정책이 단절적으로 흐르면서 제대로 수행되지 못했다. 남북 관계 정상화는 남한과 북한이 유엔 회원국으로서 국가 간 보편적인 거래 방식에 따라 호혜적 관계를 축적할 때 이뤄질 수 있다. 남북기본합의서 1조 ‘상대방 체제 인정과 존중’이 실제적, 제도적으로 구현되는 통일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 남북연합의 평화공존은 북한체제 변화 전략이다.

남북 주민 정체성 근본적으로 달라

넷째, 대북·통일정책에서 관행적으로 거론되는 민족 동질성 회복의 지향을 자유민주 통일의 목표에 부합하도록 규정해야 한다. 역대 정부는 교류·협력을 민족 동질성 회복을 위한 주요 정책으로 채택했으며, 윤석열 정부도 다르지 않다. 교류·협력은 남·북한의 균형적 발전과 주민의 복리 향상, 정보 소통을 통한 상호이해, 신뢰 회복과 유대 관계 형성 등을 목표로 한다.

그런데 남한 주민은 각 개인의 존엄성에 기반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에서 사회화되고 정체성을 형성했다. 반면 북한 주민은 개인이 전체의 한낱 도구에 불과한 전체주의 집단체제에서 사회화되고 정체성을 형성했다. 이처럼 남한 주민과 북한 주민의 정체성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민족 동질성 회복은 이러한 본질적 문제를 다뤄야 한다.

역대 정부는 대북정책 추진과정에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철학적·전략적 의도를 제대로 투영시키지 못했다. 6·15 공동선언 등 정상회담 선언들이 나오면서 통일전략의 토대로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역할이 등한시되었다. 1972년 체결한 동·서독 기본조약에 기반한 유엔헌장 정신과 제반 원칙을 대동독 관계에 일관성 있게 적용, ‘접근을 통한 변화’ 전략을 추진했던 서독의 경험을 재인식해야 한다.

첨예한 국내 정치 분열, 김정은 정권의 대남 적대 전략, 신냉전 국제질서 등의 환경에서 윤석열 정부가 성취할 수 있는 대북정책 목표는 제한적일 것이다. 향후 25년 내외의 기간에 분단 100년과 정부 수립 100년을 맞게 된다. 비정상적인 남북 관계 아래서 그 상황을 맞지 않으려면 국가전략 차원의 ‘통일 대계(大計)’를 세워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가칭 ‘2048 위원회’를 구성·가동할 것을 제안한다.

박영호 통일연구원 초청연구위원·리셋코리아 통일분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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