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훌륭한 스승은 모습만으로도 충분하다

2022. 12. 6. 00:4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학 교수

한라산은 벌써 흰 모자를 썼다. 겨울 삼 개월 동안 산의 정상은 눈으로 덮인다. 눈 덮인 모습만으로도 한라산은 맑고 듬직하고 신성하다. 네팔 사람들은 멀리 히말라야 설산이 보이면 연신 합장하며 기도한다. 나도 아침이면 한라산을 향해 두 손을 모은다. 석가모니 제자 중 여섯 번째 나한인 발다라 존자가 청정한 국토를 좋아해서 스승이 열반에 들자마자 제자들과 함께 탐몰라주 라한산으로 왔다는 전설이 있다. 뒤에 탐몰라주는 탐라국으로, 라한산은 한라산으로 명칭이 바뀌었다고 한다.

불전에는 설산 수행자들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석가모니의 6년 고행을 ‘설산수도상’이라 하고, 깨달음을 얻고 산에서 나오는 모습을 ‘설산출산(雪山出山)’이란 그림으로 그린다. 번뇌가 붙을 틈이 없을 듯한 이미지의 설산은 수행자에게 마음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있기 전에는 일 년에 한 번은 머나먼 인도의 다람살라를 찾았다. 그곳에 세계적인 영적 스승 달라이라마가 계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1959년 25세에 중국공산당을 피해 티베트에서 인도로 망명하였다. 당시 네루 인도 수상은 세 곳을 망명지로 추천하였는데, 달라이라마는 지진으로 파괴되어 사람이 살 수 없게 된 마을 다람살라를 선택했다. 티베트 고향에서 보던 만년설 히말라야 다울라다르 산맥을 볼 수 있어서였다. 달라이라마는 60여 년이 넘도록 전 세계 사람들에게 지혜와 자비를 강조하며, 평화를 위한 정진에 앞장서고 있다.

「 지난달 말 찾아간 달라이라마
“한반도 긴장 완화되기를” 법문
위기 때마다 나타난 큰 스승들

지난달 26~27일 이틀 동안, 달라이라마의 한국인을 위한 특별법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인 300여 명이 비행기에 올랐다. 다람살라 남걀사원에 한국인을 비롯하여 내외국인 3000여 명이 모였다. 달라이라마의 첫 마디는 “한국 불자들에게 법문할 기회를 얻게 돼 무척 기쁘다. 보리심과 공성을 바탕으로 탐진치 삼독을 없애야 내면의 평화가 시작된다. 한반도의 긴장이 완화되기를 바란다. 동방의 국가에서부터 모든 이들의 평화가 시작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였다.

내가 달라이라마를 처음 뵌 것은 2013년 가을이었다. 그해 봄 프랑스에서 틱낫한 스님이 한국을 방문했다. 스승에 대한 갈증이 심하던 때라 자청해 15일 동안 그분을 온전히 모셨다. 걸을 때는 같이 걷고, 밥 먹을 때는 마주 보고 먹고, 차로 이동할 때도, 강연할 때도 놓치지 않고 함께했다. 법(法)이란 온전히 내가 움직이고 만나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또 큰 스승은 모든 순간 깨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개인 공부도 중요하지만 큰 스승을 만나는 것이 더 큰 공부이고 점검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틱낫한 스님을 배웅하고 돌아서면서 ‘더 늦기 전에 달라이라마 존자를 뵈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그해 가을, 달라이라마 존자가 일본에 오신다는 말에 당장에 찾아뵈었다. 강연을 위해 연단으로 나오는 존자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모습에 자비심이 충만했다. 인연을 만나면 눈물이 흐른다더니 한마디도 듣기 전에 이미 감동이었다. 나옹 선사의 발원문에 “이름만 들어도 삼악도를 면하고, 모습을 대하는 것만으로도 해탈을 이룬다”는 말씀 그대로였다. 누군가 “한국에서도 존자의 법문을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말에 정치적 상황 따위는 고려치 않고 곧바로 추진에 나섰다.

달라이라마 방한을 위해 7년 동안 노력을 다하였다. 16만 명의 서명을 받았고, 달라이라마께 “한국에 갈 수 있다면 어떤 바쁜 일이 있어도 먼저 가겠다”는 약속도 받아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하나의 중국을 표방하는 중국의 정치 상황이 큰 벽이었다. 정부 요인과 여러 차례 접촉했지만 번번이 좌절되었다.

그렇다고 큰 스승을 모시는데 대립과 투쟁으로 모실 수는 없는 일이었다. 교황은 정부가 나서 초청하면서도, 달라이라마는 온갖 이유를 들어 거부하는 현실이 답답하기만 했다. 달라이라마 존자님도 이 소식을 듣고 “나이도 많아서 시자들이 외국을 나가는 것을 자제할 것을 원한다. 더 이상 노력하지 않기를 바라며 여건이 허락된다면 언제든 가겠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수만 명의 마음이 담긴 서명지를 어찌해야 할지 몰라 지금도 움직이는 곳마다 이고 다닌다.

눈 어두운 이가 길을 안내할 수 없는 것처럼 스승이 부재한 시대는 암흑기와도 같다. 돌이켜보면 암흑기마다 인류를 바른길로 이끄는 눈 밝은 스승들이 출현하였다. 전쟁으로 인한 암울한 기운이 갈수록 짙어지고, 악화한 지구환경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이 시대, 인류를 바른길로 인도해줄 스승은 어디 계신가. 그 모습만이라도 보고 싶은 건 나만의 바람인가.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학 교수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