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남의 영화몽상] 보고도 못 본 척

이후남 2022. 12. 6.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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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남 문화선임기자

시각장애인 침술사가 주인공인 영화 ‘올빼미’를 보고 있으면 그동안 굵직한 흥행을 거둔 잘 만든 사극, 그중에도 팩션의 여러 특징이 떠오른다. 조선 시대의 실제 역사를 소재로 삼아 그 행간에 허구의 상상력을 맞춤하게 발휘한 솜씨가 뛰어날뿐만 아니라, ‘왕의 남자’나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보듯 중심 인물이 왕이나 양반이 아니라 미천한 신분에 가진 것 없는 민초란 점에서도 그렇다.

가난한 침술사인 주인공 경수(류준열)의 처지는 그가 궁궐에 들어가려는 이유에서도 드러난다. 유일한 가족이자 지병이 있는 동생을 보살피기 위해 기와집이라도 살 만큼 넉넉히 돈을 버는 것이 바람일 따름이다. 그는 내의원 의관에게 발탁되더니, 실력을 인정받아 임금에게까지 침을 놓게 된다.

류준열이 침술사로 나오는 영화 ‘올빼미’. [사진 NEW]

최고 권력자에 가까이 다가가게 된 인물이 앞을 보지 못한다는 설정은 절묘하다. 예나 지금이나 ‘보고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은 권력 주변의 힘없는 이들에게 요구되는 처세와 생존의 덕목이다. 영화의 전개와 함께 점차 드러나는, 경수가 주맹증이라는 설정 역시 절묘하다. 남들이 다 볼 수 있는 훤한 대낮에는 앞이 안 보이지만, 남들이 다 볼 수 없는 캄캄한 밤에는 오히려 앞이 보인다. 그동안 경수는 이를 남들에게 알리지 않고 직업적 생존에 활용해 왔을 따름이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위기를 한 차례 겪은 뒤, 엄청난 사건을 목격하고 갈등에 놓인다. 궁궐에서 벌어진 이 비극적 사건을 목격한 사람은 그가 유일한데, 그가 목격자라는 사실을 남들은 모른다. 지금껏 해온 대로 못 본 척한다 한들 그에게 뭐랄 사람은 없어 보인다.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인조 때다. 임금의 사후 붙여진 이름에는 어질 인자가 들어있지만, 시대는 전혀 어질지 못했다. 광해군을 몰아낸 반정과 함께 시작된 인조의 치세는 병자호란 같은 국가적 위기까지 겪었다. 청나라 세상이 왔건만, 이미 저물어 버린 명나라에 연연하는 궁궐의 모습은 시대 흐름에 눈을 감는 것처럼 보인다.

잘 만든 팩션이 그렇듯 이 영화 역시 침술사의 행동에 충분한 이유를 부여한다. 그를 움직이는 것은 권력 다툼이나 그 와중에 권력자들이 내세우는 대의명분이 아니다. 지극히 인간적이고 상식적인 이유다. 영화에는 경수의 행동을 뒷받침하는 장면들이 문제의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 적절하게 등장한다. 경수는 더이상 ‘못 본 척’ 하지 않기로 하되, 예민하게 신경을 곤두세우며 자신을 위험에 빠트리지 않도록 경계한다.

이런 흐름에 비춰보면 영화의 마지막 대목은 다소 아이러니하다. 경수의 선택은 권력화되지 않은 동기에서 출발한 것으로 그려져 왔는데, 결말에서 그의 행동은 엄청난 권력을 손에 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웰메이드 팩션 사극의 맥을 잇는 이 영화 나름의 변주일까.

이후남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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