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상연 4일 전에 안 손원평 “저작권자 동의 가장 후순위”

천금주 2022. 12. 6.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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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은 소설 '아몬드' 뉴시스. 우측은 소설 '아몬드' 저자 손원평 작가, 창비 블로그 캡처.

소설 ‘아몬드’의 연극 상연이 원작자인 손원평 작가와 사전에 상의되지 않은 채 진행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아몬드의 출판사 창작과 비평(이하 창비)과 연극을 연출한 극단 청년단 대표 민새롬 연출은 각각 SNS에 장문의 해명과 사과문을 올렸다.

5일 창비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사과 말씀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에는 “2022년 12월 3일과 4일 양일간 공연된 극단 청년단의 연극 ‘아몬드’(민새롬 연출, 고양문화재단 주관, 용인문화재단 주최)의 2차 저작물 사용 허가 상황에 관해 말씀드린다”고 운을 뗀 뒤 연극이 상연된 과정을 길게 설명했다.

창비 인스타그램 캡처


창비 인스타그램 캡처


창비 인스타그램 캡처


창비 인스타그램 캡처

글에 따르면 창비가 ‘아몬드’의 연극 상연을 인지한 것은 지난 10월 17일 용인문화재단의 온라인 보도자료를 통해서다. 다음날 제작 재단과 극단 측에 항의하고 경위 파악과 사실 확인, 계약 조건 전달을 요청했다. 논란이 된 연극은 4번째 상연이었다. 3번째까지는 소설을 연극화하는 과정에서 출판사와 원작자의 상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창비 측 주장이다.

창비는 지난 11월 29일 극단측 계약 조건을 최종 수령하고 저작권자인 작가에게 해당 사안을 알린 뒤 2차 저작물 사용 허가 여부를 안내했다. 창비는 이 과정에서 저작권자 허락없이 연극의 4차 공연이 준비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 초연부터 공연을 올린 극단 측과 용인문화재단의 공연을 주관한 고양문화재단에 항의했다.

창비는 이에 대해 “‘아몬드’가 기존에 연극이나 뮤지컬로 상연된 전례에 따라 극단과 사용 조건에 대해 협의했는데 이 사실을 작가에에 알리지 못하고 협의가 지연돼 저작권자인 작가의 허가나 계약 없이 공연이 준비됐다”고 설명했다.

창비는 또 “계약 조건을 포함한 재공연 사실을 공연 시작일 4일 전 알리는 등 저작권 침해가 우려되는 상황을 작가에게 신속히 공유하고 조속히 해결하지 못하게 됐다”며 “연극이 취소될 경우 발생할 배우들과 관객들의 혼란 등 여러 문제를 우려해 연극 상연의 중지를 요구하지 않았지만 커다란 정신적 피해를 입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런 사실을 인정한 창비는 “2차적 저작물 관리에 있어 저작권자의 허락이 최우선이라는 원칙을 간과하고 저작권자의 권리를 충실히 보호하지 못했다”며 “이 과정에서 심적 고통을 받은 저작권자 손원평 작가에게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다.

손원평 “‘저작권자의 동의’는 가장 후수위였다”

창비는 이같은 사과문과 함께 손 작가의 입장문도 공유했다. 손 작가는 “숱하게 제안이 들어온 ‘아몬드’의 영상화 판권을 ‘조건에 관계없이 허용하지 않음’을 못박았었다”고 밝혔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책을 잘 읽지 않는 독자, 특히 청소년에게 충분히 긴 시간 동안 오로지 책이라는 매체로 ‘즐거운 독서 경험’을 선사하는 책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고 설명했다.

손 작가의 입장문에 따르면 원작자와 출판사가 ‘아몬드’ 연극이 상연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11월 29일 이었다고 한다. 공연이 상연되기 나흘 전이다. 창비가 이를 인지한 건 창비가 주장한 시점과 동일한 10월 17일이다.

문제는 이후부터다. 손 작가는 “(창비가) 어떤 연유에서인지 이후 6주간이나 오로지 연출자와만 교류하며 저자이자 저작권자인 나에게 본건의 발생과 확정된 날짜의 공연 사실을 일체 알리지 않았음을 확인했다”며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할 ‘저작권자의 동의’는 가장 후순위로 미뤄졌고 저작권자인 나는 본 공연을 예매한 관객보다 늦은 공연 4일 전에 알게 됐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손 작가는 또 “창비는 청소년출판부와 저작권부 모두 10월 17일 이후에도 다른 업무와 관련한 연락을 여러 건 취했으므로 이 공연에 대해 6주간이나 함구한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미지수”라며 “지난 6월 ‘아몬드’ 100만부 파티에 참여해 작가인 나와 무대에 올라 상당한 시간을 쓴 민새롬 연출과 창비 사이에 내가 모르는 모종의 얘기가 따로 오가고 있는지까지 의심해야 했다”고 토로했다.

손 작가는 이어 “이후 차츰차츰 확인하게 된 것은 이들이 내게 전하는 해명에서 공통적으로 ‘작가의 동의가 있어야 2차 저작물의 제작이 가능하다’는 기본적인 원칙이 매우 후순위로, 어쩌면 전제조차 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며 “수년간 일관되게 ‘책이 아닌 여타 매체’에 대한 2차 저작물을 조건과 상관없이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음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말하는 그들에게 뭐라 답을 해야할 지 헤아리지 못한 상황”이라는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아울러 손 작가는 “작가의 울타리가 돼야 할 출판사 편집부, 작가의 권리를 보호해야 할 출판사 저작권부, 창작자라는 면에서 한 명의 동료라고도 할 수 있는 연극 연출자가 ‘저작권’이라는 것에 대해 얼마나 허약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지가 여실히 드러난 어처구니 없는 일”이라며 “개인의 실수도 짧은 시간 일어난 순간적 간과도 아닌 복수 팀의 다수 인원이 수개월에 걸친 긴 시간 동안 실수, 불찰, 안일이라는 핑계를 댈 수 있을 정도로 ‘저작권’, 그중에서도 ‘작가의 동의’라는 개념이 미미하고 나약한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창비는 저자의 권리를 지키고 보호하는 출판사로서 허가받지 않은 공연이 날짜까지 정해져 홍보되고 있음을 알게 된 상황으로 돌아가 작가를 대리해 정당한 이의를 제기하는 절차를 이제라도 수행해야 한다”며 혁신을 촉구했다.

민새롬 연출 “도의적·법적 책임…저작권 감수성 허약은 아냐”

극단 청년단 대표 민새롬 연출 인스타그램 캡처

연극 ‘아몬드’를 연출한 극단 청년단 대표 민새롬 연출도 같은날 인스타그램에 장문의 해명과 사과문을 올렸다. 그는 “12월 공연에 저로 인해 원작자인 손원평 작가님의 저작권이 침해받는 일이 벌어졌다. 도의적, 법적 책임을 다하겠다”며 사과했다.

그러면서 “공연예술인 전반의 저작권 감수성이 허약한 탓은 아니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며 “2019년 초연 당시 직접 기관 담당자와 저작권 협조를 작가님께 구해달라고 정식 요청했고 2021년 재상연 때도 창비 본사를 찾아가 달라지는 제작 형태와 새로운 실무자에 대한 소개를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전부 유선이나 메일로 할 수 있는 일들이었지만 모든 일에 작가의 저작권이 우선이고 ‘인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생각에 파주 현장 본사를 찾아갔다”며 “부디 해당 사안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그런 마음조차 없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해명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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