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업계 최저임금…품목 확대 vs 폐지 격론

김경민 매경이코노미 기자(kmkim@mk.co.kr) 2022. 12. 5.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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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 파업 불러온 안전운임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가 최근 무기한 총파업에 나서면서 정부와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파업의 핵심 쟁점인 안전운임제를 두고 정부와 화물연대, 화주 등 3자 간 입장 차이가 벌어지면서 안전운임제가 노동계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동조합 화물연대본부의 총파업이 지속되는 가운데 서울의 한 레미콘 공장에 레미콘 차량이 멈춰 서 있다. (연합뉴스)
안전운임제
▶안전운임제 특징은

▷최소한 운송료 보장 안 하면 과태료 매겨

안전운임제는 화물차 기사의 과로, 과속, 과적 운행을 줄이기 위해 최소한의 운송료를 보장하는 제도다. 일종의 ‘화물업계 최저임금제’ 격이다. 화물차 운임이 운송 업체 간 과당 경쟁, 화주의 우월적 지위로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칠 정도로 낮다는 의견이 나오는 만큼 최소 적정 운송료를 보장하자는 취지다. 최소한의 운송료조차 지급하지 않으면 화주에게 건당 과태료 500만원을 매긴다.

안전운임제는 문재인정부 들어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강제성 있는 ‘표준운임제’와 강제성이 없는 ‘참고운임원가제’를 두고 노동계 논란이 뜨거웠다. 급기야 제한된 운송 품목의 운임에만 강제성을 부여하고 3년 일몰 조항을 단 ‘절충안’인 안전운임제가 2018년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했다. 2020년 본격적으로 도입된 후 3년 기한으로 한시 적용돼 올해 말 종료될 예정이었다.

안전운임제 일몰 시기가 다가오자 화물연대가 먼저 들고 일어섰다. 지난 6월 ‘안전운임제 일몰 폐지’ 즉 안전운임제를 영구적으로 시행하자고 주장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 지속 논의’를 조건으로 겨우 파업을 풀었지만 이후 논의는 별로 진척되지 못했다.

화물연대 반발이 커지자 국민의힘과 정부는 최근 당정 협의에서 연말 종료되는 안전운임제 일몰 시한을 3년 더 연장하기로 했다. 당정이 화물연대 파업 압박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타협안을 내놨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럼에도 화물연대 반발은 그치지 않았다. 안전운임제를 영구적으로 시행하고, 안전운임제 적용 품목도 확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존 품목(컨테이너, 시멘트) 외에 철강재, 자동차, 위험물, 사료·곡물, 택배 등 5개 품목을 추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안전운임제는 도입 당시 운임 지불 능력을 감안해 대형 업체가 대부분인 컨테이너, 시멘트 업종에만 적용돼왔다.

화주인 기업 입장은 또 다르다. 화물연대와 달리 안전운임제를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화주에 일방적인 책임을 지우는 데다 안전운임 선정 방식이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이유에서다. 화물연대가 주장하는 품목 확대 역시 화주 측은 반대하는 입장이다. 5개 품목 차주 소득이 컨테이너, 시멘트 차주와 비교할 때 양호하고 표준화, 규격화도 어려워 일률적인 운임 산정이 어렵다는 이유를 든다.

갈등이 격화된 상황에서 화물연대가 총파업에 들어가면서 정부도 강경한 입장이다. 품목 확대는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단호한 태도다. 철강재, 위험물 등 다른 품목은 컨테이너, 시멘트에 비해 차주 소득이 상대적으로 양호해 안전운임제 필요성이 낮다는 설명이다.

파업에 따른 산업 피해가 커지자 정부는 시멘트업계 운송 거부자를 대상으로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화물차운수사업법 14조에 따라 국토교통부 장관은 운송사업자나 운수종사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화물운송을 집단으로 거부해 국가 경제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거나,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업무개시를 명령할 수 있다. 업무개시명령은 파업으로 국가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입을 때 업무에 강제로 복귀시키는 제도다. 업무개시명령에 불응하면 1차로 30일 이하 운행정지 처분이 내려진다. 2차 불응 시에는 화물운송 자격이 취소된다. 형사 고발돼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질 수도 있다. 업무개시명령이 내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안전운임제 효과는

▷차주 수입 늘었지만 사고 건수도 증가

그렇다면 논란의 핵심인 안전운임제는 얼마나 효과를 내고 있을까.

한국교통연구원의 ‘화물차 안전운임제 성과 분석 및 활성화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컨테이너 차주 월 순수입은 373만원으로 안전운임제 시행 이전인 2019년(300만원)에 비해 24.3% 올랐다. 시멘트 차주 월 순수입은 424만원으로 2019년(201만원) 대비 두 배 이상 높아졌다.

차주 수입은 늘었지만 근로 시간은 오히려 줄었다. 컨테이너 차주의 근로 시간은 2019년 월평균 292.1시간에서 지난해 276.5시간으로 감소했다. 이를 두고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 도입 이후 위험한 운송 행태가 많이 시정된 만큼 노동자와 시민 안전을 위해 필수적인 제도”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부 입장은 다르다. 안전운임제가 사고를 방지하는 효과가 뚜렷하지 않고, 운송료를 올리는 역할을 하는 만큼 적용 대상 확대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국토교통부가 국회 민생경제안정특별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견인형 화물차 사고 건수는 안전운임제 도입 전인 2019년 대비 8% 늘어났다. 2019년 690건이던 사고 건수는 지난해 745건으로 증가했다. 게다가 컨테이너 화주인 수출 기업들은 평균 30~40%가량 화물 운임이 올랐다는 것이 한국무역협회 설명이다.

국토교통부는 “안전운임제 시행 이후 견인형 화물차의 교통사고 사망자 수나 사고 건수가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안전운임제 품목 확대로 국내 주요 산업 물류비가 상승하면 소비자와 국민 부담이 증가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화물 운임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정해져야 하는데 일률적으로 운임을 정하다 보니 물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우려다.

경제 단체들도 안전운임제 폐지를 요구하고 나섰다.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6단체는 최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수출 경쟁력을 악화시키는 일방적인 운송 거부는 즉각 철회하고 안전운임제는 폐지돼야 한다. 안전운임제는 시장원리를 무시하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한국만의 독특한 규제다. 인위적 물류비 급등을 초래해 우리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안전운임제 일몰제를 3년 연장하는 타협안을 제시한 만큼 화물연대 요구대로 품목까지 확대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3년 후 일몰제가 끝나면 각계 의견을 반영해 안전운임제를 아예 새로 개편해야 한다는 의견도 쏟아진다. 운임의 가이드라인 정도만 제시하고, 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운임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7호 (2022.12.07~2022.12.1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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