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찰 없애고 히잡법 푼다는 이란…시위대 "눈속임 말라"
이란 정부가 반(反) 정부 시위를 촉발한 ‘히잡 착용 의무화법’ 완화와 ‘지도 순찰대(도덕 경찰)’ 폐지를 검토 중이란 당국자의 발언이 나왔다. 하지만 시위대는 이를 국면전환용 유화책으로 경계하며 파업을 겸한 강도 높은 시위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4일(현지시간) AP통신과 뉴욕타임스(NYT), BBC 방송 등에 따르면, 전날 모하마드 자파르 몬타제리 이란 법무장관은 현지 논평에서 “이란 의회와 사법부가 히잡 착용 의무화법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개정안에 대한 검토는 15일 이내에 마무리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도덕 경찰은 사법부와 관련이 없으며, 이를 창설한 부서(내무부)에서 폐지할 것”이라고 전했다. 호세인 아미르 압둘라히안 이란 외무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도덕 경찰 폐지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이란에서 모든 것이 민주주의와 자유의 틀 안에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답해 폐지 가능성을 시사했다.
현재 이란에서는 지난 9월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 경찰에 체포됐다 의문사한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 사건으로 촉발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석달째 이어지고 있다. 이란 여성들은 엄격한 이슬람법에 따라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한다. 이란의 국민 배우로 불리는 타리네 알리두스타를 포함한 유명 인사들이 히잡을 벗은 사진을 소셜 미디어에 공개하며 시위대를 지지해 이란 정부를 난감하게 했다.
NYT는 몬타제리 법무장관의 발언이 아미니의 죽음 이후 이란 정부가 내놓은 첫번째 중요한 양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근 이란 거리에는 도덕 경찰이 거의 보이지 않고, 여성들이 머리를 가리지 않은 채 공공 장소에 나타나는 일이 빈번하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이란 정부가 한발짝 물러서는 듯한 모습을 보이지만, 이는 시위 열기를 꺾기 위한 ‘눈속임’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영국 일간 가디언 등은 아직 이란 내무부에서 도덕경찰을 폐쇄했다는 확인이 없고, 이란 정부가 도덕 경찰 폐지를 공식 선언했는지 여부가 불명확하다고 지적했다. NYT는 “이란 혁명수비대(IRGC) 소속의 악명 높은 바시스 민병대를 포함한 다른 보안군이 히잡 없이 외출하는 여성을 여전히 구타하고 체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란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이란 보안 당국이 시위 도중 붙잡힌 참가자 중 최소 80명에게 사형을 선고할 계획임을 시사하는 녹취 파일도 이날 유출됐다. 보수 정당 연합인 이슬람혁명군 연합위원회 내부 회의 녹취다. 이에 이란 시민들 사이에서는 “당국의 발언에 속지 말자”는 불신론이 확산하고 있다.
한 이란 여성은 BBC에 “현 정부가 집권하는 한 이란에는 미래가 없다. 우리는 더 많은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며 시위 강행 의지를 표명했다. NYT는 “이란 시위는 이미 신권 정치에 대한 거부로 비화됐다”며 “히잡과 도덕경찰이 사라져도 신정의 종식을 요구할 정도로 대담해진 시위자를 달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란 시위대는 5일부터 3일간 파업 시위를 겸하며 시위 동력을 끌어올릴 예정이다. 이에 보안 당국과 시위대 간 ‘강대강’ 대치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시위 진압을 담당하는 이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시위 진압 과정에서 지금까지 보안군을 포함해 약 200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란의 인권운동가통신(HRANA)은 지난 3일까지 시위대 중 1만8000여 명이 체포됐고, 미성년자 64명을 포함해 470명이 사망했다고 집계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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