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정] '벤투 모셔온' 김판곤의 눈 "감독 혼자가 아닌 사단의 힘으로 16강 달성"

서호정 기자 2022. 12. 5.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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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 서호정 기자 = 김판곤 말레이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벤투호의 카타르월드컵 16강 진출에 있어 숨은 공로자다. 러시아월드컵 이후 다음 월드컵을 위한 4년의 방향성을 고심하며 대표팀을 이끌 새 선장을 선임하기 위해 무수한 노력을 기울인 끝에 포르투갈 출신의 파울루 벤투 감독을 한국으로 데려온 것이 김판곤 감독이다. 


선임 당시 벤투 감독은 중국 슈퍼리그의 충칭 당다이 리판에서 해임이 된 상태였다. 굳이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으로 보자면 실패를 한 지도자였다. 2014년 9월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직에서 물러난 뒤 커리어가 지속적인 하향세라는 지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대한축구협회(KFA)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이었던 김판곤 감독은 "벤투 감독, 그리고 동행할 코치들의 전문성이 높다. 4년 간 인내하고 지원하면 한국 축구를 한 단계 끌어올릴 것이다"라며 확신에 찬 선임 배경을 브리핑했다. 


그 골인 지점에는 대한민국이 역대 세번째로 월드컵 토너먼트에 오르는 성과가 있었다. 2002년과 2010년에도 우리는 본선에서 결과를 냈지만, 4년의 시간 동안 일관되게 준비한 명확한 팀 컨셉을 기반으로 매 경기 상대에 밀리지 않는 좋은 내용의 승부를 펼친 적은 없었다. 이번 대회 조별리그 3경기가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다. 


한국이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 출전권을 획득한 2022년 1월을 끝으로 전력강화위원장에서 물러나며 말레이시아로 넘어오기 전까지 김판곤 감독은 벤투 사단과 훌륭한 파트너십을 유지했다. 전폭적인 신뢰를 밑바탕에 깔면서도 아시안컵, 동아시안컵, 월드컵 2차 예선 등 특정 시점마다 대표팀의 발전 과정과 문제점을 치열하게 토론하며 더 나은 답을 찾아갔다. 


"이제 벤투 감독에게는 마지막 무대가 남았다. 거기서 지난 4년 간 옳은 방향으로 왔다는 걸 증명하길 바란다"는 말을 남기며 KFA를 떠났던 김판곤 감독의 바람처럼 벤투호는 성공을 거뒀다. 브라질과의 16강전을 앞두고 말레이시아에 있는 그와 연락이 닿았다. 김판곤 감독은 "벤투 감독 개인의 능력도 훌륭하지만 벤투 사단의 전문성이 조화가 돼 나온 결과다. 팀 벤투 전체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며 입을 열었다. 


- 벤투호의 경기를 모두 지켜봤나?
현재 말레이시아 대표팀을 소집해서 동남아시아선수권(전 스즈키컵, 현 미쓰비시컵)을 준비 중이다. 한국 경기는 당연히 라이브로 다 봤다. 그 외에 일본, 호주 같은 아시아권 팀들이 어떤 방식으로 세계적인 팀에 대응하는지도 지켜보고 있다. 밖에 있으니 우리 대표팀 내부의 상황을 다 알 순 없지만, 그래도 잘 할 거라 믿었다. 단순한 기대가 아니라 어느 정도의 확신이었다. 벤투호가 국민들의 기대치에 부응해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 어떤 부분이 월드컵에서의 성공을 확신하는 근거였나?
KFA를 나오면서 우려한 건 결국 결과였다.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지난 4년을 실패로 치부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잘 할 거라고 예상했다. 월드컵 전의 평가전들도 봤다. 밖에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지만, 벤투 감독은 큰 변화를 자제하고 지난 4년 간 팀의 코어 역할을 한 선수들을 중심으로 해서 안정적으로 꾸려 왔다. 월드컵 본선에 가도 선수들이 긴장하거나 패닉에 빠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우리 경기를 할 거라 봤다. 우루과이전에 그게 잘 됐다. 나는 그런 90분 경기를 우리 국민들이 월드컵에서 보길 바랐을 거라 생각한다. 감독이 4년 간 좋은 방향성을 설정하고 꾸준히 노력해서 나온 결과다. 조별리그 3경기의 경기력에 대해서는 국민들도 큰 불만이 없었던 것 같다. 가나전은 결과가 안 좋았지만 나의 관점에서는 선수단 전체가 그렸던 그림은 제대로 나왔다. 대표팀의 선수들이 러시아월드컵 이후 바랐던 것이 이런 모습이었다. 코칭스태프에 대한 선수들의 신뢰가 단단하니까 팀 내부가 흔들리지 않았다. 벤투 감독은 어느 지점에서는 간결한 축구를 요구하는데 선수들이 그 이상으로 잘하려고 세밀하게 하다 실수하는 경우가 있어 걱정했는데 월드컵에서는 그런 점도 거의 사라졌다.


- 벤투 감독 선임의 주요 배경이었던 능동적인(PRO-Active) 축구가 한국 축구에 필요하다던 주장이 맞아 떨어졌다. 단지 한국이 16강에 진출해서가 아니라 이번 대회에서 상대적 약체 팀들의 성공과 실패가 능동적 축구를 하느냐 수동적 축구(RE-Active)를 하느냐로 갈릴 정도다. 
KFA가 대표팀을 운영하는데 있어서 어떤 방식으로 이기길 원하는가, 그 질문을 새로운 감독 선임 전에 고민했다. 결과를 내는 데 있어서 상대에 주도권을 주고 그들의 플레이에 반응하는 수비를 중심으로 하는 수동적인 축구가 나쁜 것은 아니다. 아마 승률은 비슷할 거다. 우리 주도적인 축구를 통해서 더 많이 이긴다고는 얘기 못하겠다. 하지만 세계의 트렌드를 쫓아가는 방식을 택해야 한국 축구가 장기적으로 발전이 된다고 봤다. 수동적인 축구로 결과는 낼 수 있어도 한발 더 앞으로 나갈 영감은 얻을 수 없었다. 상대를 말리게 하고, 하프라인 아래에 진을 치고, 그렇게 해서 이기는 게 과연 한국 축구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느냐를 스스로에게 물었다. 우리 스타일에 자긍심을 갖는 축구를 하고, 능동적인 축구의 트렌드를 쫓아가 결과를 내야 다음 발전을 위해 한발 더 내딛을 수 있는 거다. 그 방향성을 정해야 한다고 봤다. 물론 지금 생각해 보면 KFA가 내게 그 정도 권한까지 준 건 아니었다. 내 스스로가 역할에 고무돼 그런 방향이 맞다고 설정한 거다. 하지만 지금도 능동적인 축구를 해야 한다는 방향은 맞다고 확신한다. 특정 클럽의 축구라면 자신들의 환경과 현실에 맞게 수동적인 축구를 해서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월드컵에서 더 큰 성공을 원하는 한 국가를 대표하는 팀이라면 능동적인 축구를 하는 게 방향이 맞다고 봤다. 


- 철학과 기준을 먼저 정하고, 거기에 부합하는 감독을 찾았고 여러 후보를 거쳐 벤투 감독을 데려왔다.
승리하는 방식에 대한 철학을 먼저 정한 거다. 그게 우리가 면접을 할 때의 가장 큰 화두였다. 우리는 능동적이고 주도적으로 경기를 지배하고 승리를 추구하려고 한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감독 후보들에게 물었다. 그러면 그 답에서 감독의 생각과 방식을 읽을 수 있었다. 벤투 감독을 만나기 전 포르투갈 대표팀, 올림피아코스, 충칭 시절 했던 축구만 10경기 넘게 봤다. 과연 이 사람이 말로만 그런 철학을 추구한다고 하는지, 실제로 추구하고 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지 분석을 해 그 감독의 게임 모델을 세분화했다. 벤투 감독 외의 다른 후보도 그런 방식으로 분류를 했다. 우리가 그 노력을 한 건 이런 방식으로 성과를 내 줄 수 있는 감독을 데려와 승리를 추구하는 걸 보여줘야 그 철학이 유소년 교육, 지도자 교육, 선수 육성 방향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봐서다. 철학이 바로 서야 더 큰 미래를 위한 준비도 가능하다. 그게 정립이 안 돼 있으면 지도자를 교육하고, 이런 축구를 해야 한다고 가르칠 근거가 부족하다. 우리가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축구를 하기 위해 각 연령에서 배워야 할 게 무엇인지를 정리하고 거기서 재능이 있는 선수를 각 포지션에서 뽑을 때 기준점으로 만들 수 있다.


- 벤투 감독의 축구는 빌드업 축구라고 쉽게 표현된다. 하지만 위원장 시절 빌드업 축구라는 건 없다고 단호하게 얘기했었다.
빌드업 축구라는 용어 자체가 세계 어디에도 없다. 공격 전개라는 표현이 어떻게 그 감독의 전술이라고 할 수 있겠나. 벤투 감독이 자신의 축구를 하는 데 있어서 빌드업을 중시하는 건 그의 전체 게임 모델에서 일부 파트다. 빌드업을 하는 데 있어서도 세부적인 옵션만 십수개가 있다. 벤투 감독은 자신의 축구가 그라운드에서 구현되는 원리를 몇 개의 키워드로 정한다. 그 키워드에 빌드업은 없다. 키워드 중 중요한 건 프리맨이다. 그라운드에서 축구를 할 때 상대 마크에서 자유로운 팀 동료, 프리맨을 빨리 찾으라고 한다. 다음은 수적 우위다. 수적으로 동률이 되면 반드시 우리가 한 명을 더 만들라고 한다. 수적 우위를 이용해서 누군가 프리로 치고 나가서 상대 라인을 무너트려라. 라인을 무너트리고 공간을 찾아라. 그게 현대 축구의 기본이다. 그렇게 벤투 감독은 애니메이션으로 설명하는 영상을 만들고 그걸 업데이트 해서 다른 걸 보여준다. 만일 상대가 라인을 깊게 형성해서 모든 위치에서 압박이 형성됐고, 우리에게 프리맨이 없다? 그러면 타깃맨을 이용하는 롱볼로 가라는 거다. 이걸 빌드업 축구라고 못 박으면 그건 한 감독의 철학과 방법을 과소평가하는 거다. 능동적인 축구를 하는 데 있어서 공격 전개 한 면만 얘기하면 안 된다. 또 다른 중요한 파트는 주도적인 수비 리딩이다. 벤투 감독이 진짜 잘하는 건 이 주도적인 수비에 있다. 밑에 내려가서 진을 치는 게 아니라, 하프라인 위에서부터 상대의 실수를 유도하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수비. 우리가 프레싱을 해서 상대 실수를 유도하는 일명 '채널링'을 한다. 상대가 우리가 의도한 수비의 함정에 걸리고 공 소유권을 가져오면 거기서 공격 전환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하이브리드 공격 전개(빠른 역습+완전한 볼 소유에 의한 세밀한 패턴 플레이), 그리고 치명적인 결정력까지다. 그 4가지를 기준으로 분석해서 강력한 방법론을 지녀야 능동적인 축구가 가능하다. 숏 패스로 공격 전개를 하는 것만 봐서는 안 된다. 그런 전술적 방법도 축구에서는 반 밖에 안 된다. 선수들과 소통하고, 상대를 분석하고, 어디에 허점이 있는지를 찾아 경기 플랜을 만든다. 거기에서 우리가 준비한 것 중 무엇을 적용할 것인가. 이게 되야 기본이다. 벤투 감독은 그런 방식으로 경기에 접근하고, 유럽에 있는 많은 감독도 그렇게 접근하다. 이게 지금 세계 축구의 스탠다드다. 벤투 감독은 스포츠 과학에도 관심이 많다. 선수 회복에 사용하는 에너지, 시간, 물자까지 다 체크하고 있다. 이런 복잡한 것이 모인 게 벤투 감독의 축구다.


- 황희찬이 포르투갈전 막판에 중요한 골을 넣었다. 가나전을 앞두고 훈련에 복귀한 상태였다. 가나전은 우리가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고 봤던 경기였기에 지고 있는 상황에서 투입을 참기가 쉽지 않았을 거 같다. 그런데 그걸 한번 참고, 포르투갈전에 활용해서 결과를 냈다. 
그 사람의 성향이다. 내가 본 벤투 감독은 선수 보호에 가장 중점을 두는 사람이다. 본인 목이 날아가도 선수가 못 뛰겠다고 하면 기용하지 않는다. 신념이다. 만일 2차전 때 무리해서 기용했다가 한 번 더 햄스트링 근육이 올라왔으면 황희찬의 이번 대회는 끝나는 거였다. 그렇게 참고 참으니까, 3차전에 황희찬이 몸 상태가 정말 좋아져서 날아다녔다. 확실하게 몸이 되길 기다린 거다. 만일 황희찬의 그 골이 없었다면 우리는 16강에 못 갔을 거고, 벤투 감독이 준비해 왔던 것들은 아무 의미가 없어졌을 거다. 그런데 선수 보호에 대한 벤투 감독의 신념이 결국 마지막에 자신을 살린 거다. 월드컵 최종예선 2차전 때도 그랬다. 손흥민이 부상으로 제외됐다. 홈에서 열린 1차전을 비기면서 벌써 여론은 안 좋았다. 하지만 MRI 결과가 나오니까 벤투 감독은 단호하게 손흥민을 안 쓰겠다고 했다. 나는 "엔트리에라도 넣는 건 어떠냐, 그것 만으로 상대가 부담을 느낄 수 있다"고 얘기했지만 벤투 감독은 단호했다. 그런 부분 때문에 선수들이 이 사람을 신뢰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만일 선수의 가족에 대한 이슈가 있으면 그것도 철저하게 선수 중심이다. 김민재도 그랬다. 대표팀 소집 기간 중 아이가 아팠다. 벤투 감독은 "나는 너가 필요하지만, 너에겐 네 가족이 더 중요하다"며 보내줬다. 그래서 김민재가 대표팀을 나갔는데, 아이가 많이 호전돼 복귀했다. 선수가 감독에게 보은하고 싶지 않겠나? 아시안컵 기간에 이청용은 여동생 결혼식이 있었다. 경기 사이에 5일의 시간이 있었다. 기술적으로는 한국을 다녀올 수 있었고, 벤투 감독은 흔쾌히 보내줬다. 그런 신념이 강한 사람이다. 단지 훈련을 잘 가르치는 것만으로 선수의 신뢰는 쌓이지 않는다.


- 우리는 이번 16강 진출 성과를 보통 기적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그 과정을 돌아 보면 좋은 학습이 되고, 이런 성과가 앞으로는 습관이 될 수 있다. 좋은 시스템과 기준으로 감독을 선임하고, 서포트하고, 평가하고, 그러면서 4년이라는 일정한 사이클을 통해 월드컵에서 결과를 내는 선순환이 다음에도 이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벤투 감독 선임 당시 한국 축구의 과제는 세계 축구 트렌드와의 거리를 좁혀보기 위한 전환이었다. 러시아월드컵 때 스웨덴전, 멕시코전이 끝나고 몇몇 선수들이 내게 와서 울분을 토했다. "다음 월드컵에서는 우리가 이 차이를 좁히고 싶다고, 그런 변화를 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 친구들의 갈망이 결국 큰 전환점이 된 거 같다. 세계 축구의 흐름을 따라 가면서 우리가 가진 장점을 표현하는 것. 그래서 좋은 외국인 감독에게 4년을 통째로 맡기는 큰 변화를 시도했다. 잘할 거라고 생각했다. 벤투 감독은 본인이 뭘 해야 할 지 하는 사람이다. 철학이 굳건하고, 그걸 타협하지 않는다. 선수들과의 관계도 끈끈하고, 준비도 치밀하게 한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다. 선수 선발을 보면, 코치들과 포트폴리오로 잘 정리해서 포지션 별로 1번부터 8번까지 있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얘기는 이번 성과는 벤투 감독 개인이 아니라 팀 벤투 전체가 해 낸 일이다. 벤투 사단이 왔기 때문에 이번 성과가 가능했다. 나는 그들 전체를 존중한다. 개개인이 자기 파트의 전문가고, 팀웍이 뛰어났다. 결속력이 엄청나다. 한 철학을 향해 추구하려는 그들의 일사분란한 방향성에 찬사를 보냈다. 그걸 보면 잘 못하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4년을 그렇게 해 왔고, 선수들과 하나가 됐는데 결과가 안 나오는 게 말이 안 됐다. 벤투 사단과 함께 한 지난 4년은 한국 축구에 중요한 유산이고 방향성이 될 거다. 벤투 감독과 그의 코치들은 정리를 너무 잘 한다. 대표팀이 소집하면 훈련 첫 날부터 뭘 했는지 영상, 텍스트로 다 정리해 놨다. 그 자료를 갖고 분석해서 교육 자료, 연구 자료를 만들어 유소년과 엘리트 조직에 재배포를 해야 한다. 벤투 감독은 다 남겨 놨다. 그걸 사용해서 앞으로 어떻게 쓸 지는 KFA의 몫이다. 이 4년으로 한국 축구의 변화가 다 완성되는 건 아니다. 지속적으로 가야 한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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