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먹어 달라"는 섬뜩한 말, 사랑 고백으로 들린 이유
[장혜령 기자]
▲ 영화 <본즈 앤 올> 스틸컷 |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
영화 <본즈 앤 올>은 티모시 살라메를 통해 카니발리즘을 아름답게 묘사했다. '욕망'을 가장 찬란하게 그릴 줄 아는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는 <아이 엠 러브> <비거 스플래쉬>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묶어 욕망 3부작을 그린 바 있다. 욕망은 늘 다양한 이유 앞에서 선을 넘어 일을 그르친다. 감독은 이 욕망이 좋다 나쁘다 결정하기보다 각자의 선택으로 돌린다. 그 아슬아슬한 경계의 끌림을 잘 포착하고 이를 예술적으로 표현한다. <본즈 앤 올>조차 충격적인 소재에 비해 애잔함이 몰려든다.
이후에도 욕망을 주제로 끊임없는 탐구를 계속했다. 고전 <서스페리아>를 리메이크하면서 오컬트까지 섭렵했다. 그래서일까. 다음 영화는 어떤 장르로 돌아올지 내심 기대했던 것 같다. 긴 기다림에 제대로 보답한다. 이 영화 강렬하고도 외롭다. 그래서 더욱 아름답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기괴한 제목에 버금가는 '풀 본(뼈째로)'의 의미가 통하는 영화다. 기이하게 들리겠지만. 이 말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너의 이름으로 나를 불러줘)'이자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너와 하나가 되고 싶어)'만큼 절절한 마음이다. '나를 통째로 먹어줘'를 통해 잔혹하지만 뼛속까지 시린 사랑 고백의 정점에 도달했다.
▲ 영화 <본즈 앤 올> 스틸컷 |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
열여섯 살인 매런(테일러 러셀)은 유일한 가족인 아빠와 단둘이 살고 있었다. 자주 이사를 다닌 탓에 친구가 없던 매런. 친구가 고팠지만 참을 수 없는 식욕에 이끌려 친구의 손가락을 물어뜯게 된다. 이일을 계기로 부녀는 재빨리 짐을 꾸려 멀리 도망치듯 떠나왔다.
며칠 후 늘 있는 일이라 크게 생각지 않았지만 아빠는 출생의 비밀을 담은 테이프를 남기고 떠나 버렸다. 갑자기 혼자가 된 소녀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엄마를 찾아 나서게 된다. 엄마를 만난다면 정체성의 답을 내릴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렇게 정처 없이 떠돌던 매런은 냄새로 쫓아왔다는 설리(마크 라이런스)를 만나 존재 이유를 알아간다. 설리는 상대방이 우리와 같은 종족(이터)인지 냄새로 알 수 있었고, 더 많은 이터가 있을 거라며 방식을 일러준다. 그러면서 살인은 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온전히 기다린다는 말로 정당성을 논한다. 그리고 전리품처럼 먹은 것을 머리카락으로 엮어 기록한다.
한편, 매련은 첫눈에 리(티모시 샬라메)를 보고 마음을 빼앗긴다. 위험으로부터 구해준 리는 나쁜 놈만 응징한다는 철학이 있었다. 모든 게 꽤나 멋있어 보였고 어쩌면 사랑이 자유를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함께 하길 선택했고 정착하기 위해 애썼다. 거울 보듯 서로에게서 자신을 발견하고 세상을 알아간다. 하지만 시리도록 고독하고 이해받기 힘들다.
예정된 것처럼 좋았던 사이는 이내 삐걱거린다. 평범한 삶을 살고 싶은 매런과 길 위의 삶을 택한 리 사이에 잦은 균열이 발생한다. 사랑하지만 함께 할 수 없는 고통은 결국 끝나고야 마는 걸까. 이루어질 수 없어서 아픈 첫사랑의 아릿한 추억. 또 다른 이터를 만나도 결코 친구가 될 수 없다. 먹어야만 하는 잔혹함 앞에 사랑이도 예외가 없기 때문일 거다.
▲ 영화 <본즈 앤 올> 스틸컷 |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
영화 <본즈 앤 올>은 '카밀 드 엔젤리스'의 동명 원작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전작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전 세계적 입지를 다지게 된 티모시 샬라메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다시 만났다. 영화의 애정을 보인 티모시 샬라메는 제작과 음악 선곡에 참여하기도 했다.
198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실제 횡단하는 청춘의 고난과 성장이다. <델마와 루이스>, <보니 앤 클라이드> 풍의 범죄 로드무비가 펼쳐진다. 감각적인 영상과 대사, 음악이 만나 감성을 적신다. 비릿한 헤모글로빈 냄새가 극장 안을 꽉 메어갈수록 숨 막힐듯한 둘의 관계도 점차 짙어진다.
카니발리즘을 소재로 한 <로우>에 사랑이 첨가되자 품위가 더해진다. 단순히 인육을 탐한다기보다, 외로운 사람들의 소통 방식이라 생각하면 달리 보인다. 별종, 소수자, 아웃사이더로 낙인찍혀 쉽게 무리에 끼지 못하는 존재는 안쓰럽기까지 하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먹어야 하는 잔혹한 운명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나 혼자 태어나 홀로 죽지만 삶의 순간은 늘 함께이길 원한다. <본즈 앤 올>은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고, 너와 나 우리로 규정하는 가운데 오롯한 존재를 다루고 있다. 그 길이 사무치도록 외롭겠지만 살아가야만 하는 숙명을 절절하게 전해준다. 그 여정에 '티모시'가 있고, '음악'과 '길'이 있다. 당신은 그저 동행하기만 하면 된다. 모두가 등 돌린다고 해도 날 이해해 주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다면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키노라이츠 매거진과 장혜령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 됩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세월호, 이태원... 살아남은 1990년대생들은 두렵습니다
- 뇌졸중으로 쓰러진 변호사 "내가 이렇게 되고 보니..."
- 클라이언트에게 잘 보이고 싶나요? 그럼 책상에서 일어나세요
- 윤 대통령 6개월 전... "노동에 적대적인 사람 정치인 될 수 없어"
- 점심식사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일터... 이래선 안 됩니다
- 간직할 수 없는 초승달... 카메라가 원망스럽습니다
- 하루 꼬박 있어도 6시간만 근무 인정... 그와중에 수당 안 준 학교들
- 경찰 "파업 불법엄단"... 화물연대 "강경대응 혈안"
- "압사 확실한 상황서 마약 부검 언급? 해선 안 될 말"
- 고 김성동 작가를 기억하는 사람들, 잔치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