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단돈 60만원에 만든 낙엽청소차

이용상 2022. 12. 5.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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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상 산업부 차장


길을 걷다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낙엽을 발견했다. 흠뻑 젖어 있었다. 방금 내린 비를 맞고 추락한 것 같았다. 낙엽이 이제서야 지다니. 어떻게든 가지에 매달려 있으려고 끝까지 버티다 결국 져 버렸구나 생각했다. 한국에서 활엽수가 떨어지는 시기가 조금씩 늦어지고 있다고 한다. 환경부 국립생활자원관이 지난해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01년에는 11월 상순쯤 낙엽이 졌지만 2020년에는 11월 하순이 돼야 나뭇잎이 떨어진다. 낙엽을 밟았다. ‘바스락’ 비명소리가 들렸다. 낙엽이 발끝에서 부서지는 소리를 들으면 통쾌한 감정이 들기도 한다. 130년 전 유럽인들도 그랬는지 프랑스 시인 레미 드 구르몽이 1892년에 지은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구르몽은 낙엽을 가여워했지만 매년 늦가을이 되면 지자체는 낙엽 때문에 괴로워한다. 매년 쌓이는 낙엽은 서울시 자치구별로 수백수천t에 달한다. 낙엽은 빗물에 쓸려 배수구를 막아 침수 피해를 일으킨다. 건조한 날씨에 마른 낙엽은 버려진 담배꽁초의 불쏘시개 역할을 해 화재를 부르기도 한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가을철 낙엽이 원인인 화재 신고가 지난해에만 100여건에 달했다. 낙엽을 처리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8년째 낙엽 수거를 하고 있는 한 환경관리원은 “11월 말이 되면 낙엽을 쓸어 담는 데 하루에 200ℓ짜리 포대를 200개 가까이 쓴다”고 했다. 이런 사정을 알면 낙엽을 보고 ‘낭만의 상징’이라는 소리를 하긴 힘들다.

지난 2일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경기도 수원 권선구 곡선동 행정복지센터에서 단돈 60만원으로 낙엽을 치우는 청소차를 만들었다는 얘기다. 기존 낙엽청소차는 대당 가격이 약 2억8000만원에 달한다. 이게 고장 났는데 수리비도 수천만에 달해 이를 어쩌나 고민하다 환경관리원 정학진(45)씨가 아이디어를 냈다. 나무 패널로 낙엽 담을 저장고를 만든 뒤 용달차 짐칸에 실었다. 여기에 전동 흡입기와 대형 호스를 연결했다. 제작 끝. 대형 호스가 진공청소기처럼 바닥에 쌓인 낙엽을 빨아들여 저장고에 넣는 식이다. 4~5명이 치워야 할 일을 혼자서도 할 수 있을 정도로 효율이 좋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과거에도 더러 있었다. 고용노동부 안동지청에 근무하던 공익 반병현(29)씨는 상사에게 3900개가 넘는 등기우편의 13자리 등기번호를 우체국 홈페이지에 일일이 입력한 뒤 인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6개월 정도 걸리는 단순 반복 작업이지만 병현씨는 직접 자동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하루 만에 일을 끝냈다. 윤석덕 한국도로공사 당시 차장은 도로에 운전자가 가야 할 방향을 색깔로 안내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너무 앞서가는 생각이라며 내부 반대가 심했고 관련 법도 바꿔야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색깔유도선이 탄생했다. 지금은 ‘세상 모든 길치들의 축복’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분들의 이야기는 가슴을 울린다. 예산 절감, 업무 방식 개선, 이용자 편의 증진 같은 성과 때문만은 아니다. 자신의 일을 대하는 자세가 깊은 울림을 준다. 학진씨가 단돈 60만원으로 세상에 하나뿐인 낙엽청소차를 탄생시킬 수 있었던 건 분명 자신의 일에 깊은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속절없이 떨어지는 모습을 ‘추풍낙엽(秋風落葉)’이라고 한다. 어떤 일의 무상함이나 허무함을 나타낼 때 쓴다. 직장인들도 매너리즘에 빠지곤 한다. 일을 하다 보면 뭘 위해서 그렇게 아등바등했나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낙엽은 추락하기 직전까지 나무뿌리로부터 수분을 끌어올리고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나무를 키우고 세상에 산소를 공급했다. 땅에 떨어진 낙엽은 토양을 비옥하게 해 다시 봄이 됐을 때 새잎을 틔운다. 결국 추락했지만 낙엽의 생(生)은 결코 무상하지 않다. 우리의 일도 마찬가지라고 스스로에게 말해 본다.

이용상 산업부 차장 sotong20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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