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봉쇄 완화에 중국인들 ‘당황’…감염 걱정에 음모론도 확산

권지혜 2022. 12. 4.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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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자 자가격리 허용, PCR 음성 확인 폐지 확산
항원검사 키트·감기약 사재기
“中, 지방정부에 ‘백신 접종률 높여라’ 지시”
중국 베이징의 한 거리에서 4일 방호복을 입은 방역 요원들이 주거 단지 앞을 지나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3년간 ‘제로 코로나’를 위한 여러 통제 속에 살아온 중국인들이 갑작스러운 방역 완화 조치에 당황하고 있다. 중국 당국이 코로나19 감염자의 자가 격리를 허용하고 1~3일마다 받도록 했던 유전자증폭(PCR) 검사 주기를 축소하자 크게 반색하면서도 감염 걱정에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다. 봉쇄에 대비해 식료품을 비축했던 중국인들은 이제 신속 항원검사 키트와 감기약을 사들이고 있다.

급격한 노선 변경에 우왕좌왕

중국의 제조업 허브 광둥성 광저우에서는 당국이 지난 1일 전면적인 봉쇄 해제, PCR 전수 검사 중단 방침을 밝힌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항원검사 키트가 동났다. 광저우의 한 주민은 4일 “항원검사 키트를 사두라는 연락을 여러 곳에서 받고 부랴부랴 약국을 돌아다녔지만 키트 한 갑도 사지 못했다”고 말했다. 타오바오와 징둥 등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항원검사 키트를 검색하면 ‘재고 확보 중’이라고 표시되거나 아예 판매 목록이 뜨지 않는 경우가 많다. 광저우의 키트 1일 생산량은 1050만개로 제조 업체들은 폭증하는 수요를 따라잡기 위해 생산 속도를 높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광저우뿐 아니라 베이징, 후난성 창사 등 여러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중국 중타이증권은 보고서에서 신속 항원검사가 확대돼 기업과 개인이 키트 구매에 나서면 중국 전체 수요가 연간 6000억 위안(112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중국 당국의 방역 완화는 전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방역 업무를 총괄하는 쑨춘란 부총리의 지난달 30일 좌담회 발언이 신호탄이었다. 그는 “오미크론 바이러스의 병원성 약화, 백신 접종 확대, 예방 통제 경험 축적에 따라 새로운 정세와 임무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방역 관련 회의에 늘 등장했던 “제로 코로나의 전반적 방침을 유지한다”는 표현이 빠졌다.

다음 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방역은 각자의 일이며 스스로 건강의 책임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의 강한 전파력과 중국의 취약한 의료 체계 등을 고려하면 제로 코로나가 최선이라고 선전했던 데서 180도 달라진 분위기다. 광저우의 보건 전문가들은 최근 합동 기자회견에서 “오미크론 변이는 계절성 독감과 유사하고 감염자의 90% 이상이 특별한 치료 없이 회복됐다”며 “정말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이후 중국의 주요 도시들은 동시다발적으로 방역 완화 조치를 내놓고 있다. 베이징 차오양구는 코로나19 감염자 중 고령자, 임산부, 영유아 등의 자가 격리를 허용했다. 그전까지 중국에선 코로나19 감염되면 예외 없이 격리 시설로 옮겨져 치료를 받아야 했다. 중국 매체들은 “정기적인 핵산 검사는 감염 위험이 높은 특수 집단에만 적합하다”고 정부 정책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

중국 베이징의 한 거리에 3일 코로나19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받으려는 시민들이 줄을 서 있다. 중국 정부가 PCR 전수 검사 축소 방침을 밝힌 뒤 PCR 검사소가 대부분 폐쇄돼 문을 연 곳마다 긴 줄이 이어졌다. AFP연합뉴스

정부 방침에 따라 거리마다 들어섰던 PCR 검사소는 대부분 문을 닫았다. 그러나 공항이나 대형마트 등 여전히 48시간 내 음성 확인서를 요구하는 곳이 있어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차오양구 왕징에선 검사소가 오전에 잠깐 문을 열었다가 통지 없이 중단하는 바람에 문 연 곳을 찾아다니느라 애를 먹는 일이 잦아졌다. 한 교민은 “PCR 음성 확인서가 있어야 출입할 수 있는 곳이 많은데 검사소를 없애 버리면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교민들에 따르면 바로 전날 받은 PCR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아 출국 항공기를 못 탄 사례도 있다.

“美, 백신 수출하려고…” 음모론 확산

일각에선 방역 완화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홍콩 명보는 “보수주의자들은 완전한 봉쇄 해제에 반대하면서 PCR 검사를 유지해야 한다는 여론 공세를 시작했다”며 “이들은 방역 완화가 서방과 자본가의 음모라고 주장한다”고 전했다. 베이징항공항천대 장원무 교수는 이 매체에 “PCR 검사는 전염병으로부터 중국인의 생명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라며 “이 저지선이 무너지면 향후 더 위험한 바이러스가 중국에 들어왔을 때 21세기 상강전역(湘江戰役)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상강전역은 1934년 국공내전 때 공산당의 홍군이 광시 북서부 상강 동쪽에서 포위해오던 국민당군의 봉쇄선을 돌파한 전투다. 홍군은 이 전투로 대장정 출발 때 8만여명이던 인원이 3만여명으로 급감하는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중국 SNS에는 “미국이 자국산 백신을 중국에 들여오기 위해 방역 완화를 촉구하고 있다”는 글도 올라왔다.

중국 당국은 위드 코로나의 첫발을 떼면서 백신 접종률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광저우, 구이저우성, 간쑤성 등 3개 지역 관리를 인용해 중국 중앙정부가 내년 1월 말까지 전체 인구의 백신 1차 접종률을 현재 90.2%에서 95%로, 80세 이상은 76.6%에서 90% 이상으로 끌어올릴 것을 각 지방정부에 하달했다고 전했다. 현재 57%인 부스터샷 접종률도 두 달 안에 90%로 높인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덧붙였다.

관영 매체 글로벌타임스는 “시노팜(중국의약그룹)이 개발한 불활성화 백신은 지난해 5월 세계보건기구(WHO) 긴급사용목록에 포함된 이후 119개 국가 및 지역에서 34억회분이 사용됐다”며 “풍부한 임상 연구 데이터가 축적돼 안전성과 효능이 검증됐다”고 접종을 독려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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