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부캐] 식물을 기르며 장비병에 걸렸습니다
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 <편집자말>
[이나영 기자]
지난주 생활용품과 인테리어 소품을 파는 가게에 들어갔다. 이사한 친구의 집들이 선물로 적당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며 갔지만, 내 눈은 분무기가 어디 있나 찾고 있었다. 칙칙칙 뿌리면 물이 넓게 잘 퍼지고, 검지 손가락의 힘이 많이 들어가지 않는 것. 무게가 무겁지 않아 손목에 무리가 가지 않는 것. 물을 담고 들었을 때 그립감이 좋은 것. 그리고 모양이 예쁜 것.
동네 수퍼마켓에만 가도 쉽게 살 수 있는 분무기이지만 적당한 분무기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찾아다닌다. 식물을 키우는 식집사에게 분무기는 매일 한두 번은 사용하게 되는 아이템이다. 손가락으로 칙칙 물을 뿌려주는 분무기는 주로 실내에 있는 식물에게 수분을 공급하기 위해 사용하기 때문에 손이 잘 닿는 곳에 두고 자주 사용하게 된다. 그러니 더더욱 이왕이면 마음에 드는 분무기를 찾아 헤메게 되는 것이다.
▲ 토분에 심겨진 다육 식물 |
ⓒ ?CoolPubilcDomains |
몇 번 펌프질을 해서 압축한 뒤 물이 죽 나오게 하는 편리한 시스템도 있지만 실내에 있는 화분들에는 손으로 직접 칙칙 뿌려주는 감성이 어울리는 것 같다. 그러다 얼마 전, 인터넷으로 검색하다 엔틱 디자인의 향수병처럼 생긴 분무기를 하나 주문했다. 화분 옆에 두니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별로 물건에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식물을 키우다보면 화초만 키우는 게 전부가 아니다. 생각보다 갖추어야 할 장비가 많고, 한번 사면 두고두고 곁에 두고 쓸 물건이니 생각이 많아진다. 더더욱이나 나의 소중한 식물 친구들을 위한 거니까.
▲ 워터코인을 키우는 컵 |
ⓒ 이나영 |
심플한 단색의 원형이나 사각형 화분이 깔끔해서 선호하는 편이었는데, 화분도 나름 유행이라는 게 있어서 한동안은 빛이 좀 바랜 색감이나 잔잔한 무늬가 들어간 화분을 사모으기도 했었다. 도자기나 시멘트 화분은 아무래도 무겁다보니 간단하게 식물을 키우기 위해 플라스틱 화분을 쓰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플라스틱 화분은 간편하기는 하지만 재질이 얇아 햇빛을 받으면 흙의 온도가 너무 많이 올라가고, 통풍이 잘 되지 않아 식물에게는 좋은 소재가 아니라고 한다.
요즘엔 유약이 발라져 있지도 않고 아무런 무늬도 없는 토분이 보이면 반가운 마음에 구입하곤 한다. 토분은 화분 자체가 미세한 통기 구멍이 있어 화초가 숨을 쉬기도 좋고 물을 주면 화분 자체가 물을 머금고 있다가 흙과 식물에게 천천히 수분을 공급하기도 하여 화초가 좋아하는 소재라고 한다.
식물을 담아 키우면 예쁠 것 같아 구입한 초록색 컵이 있다. 다육이를 심어보기도 하고 작은 화초를 몇 번 심어보기도 했는데 화분이 아니라 컵이라 바닥에 구멍도 없고 배수가 잘 되지 않아 거기에 무언가를 기르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다 워터코인을 사서 물을 붓고 담아놓으니 이제야 제 주인을 만난 느낌이다.
▲ 식물을 위한 인공조명 |
ⓒ 이나영 |
예뻐서 실내에서 키우고 싶은데 빛이 없으면 잘 자라지 못하는 화초들이 있다. 그럼 실내에서 키우다 가끔 야외에 내놓고 빛을 보게 해주며 기운을 차리게 하고 다시 안으로 들이곤 하는 정성을 쏟아야 한다. 사무실은 마땅히 내어놓을 바깥 장소도 없으니 화초를 기르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다 화초에게 햋빛 대신의 역할을 해주는 식물 조명이 있다고 해서 구입을 했다. 책상 위에 두는 스탠드와 비슷한데 빛이 좀 강한 편이고, 타이머 기능도 있어서 매일 몇 시간씩 빛을 쪼여주고나서는 자동으로 꺼지는 시스템이다. 실재로 이 빛을 쓰고나서는 자꾸만 누런 잎을 떨어뜨리던 칼라데아프레디가 싱싱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화초를 잘 키우기 위한 조건은 적당한 일조량, 적당한 수분, 적당한 통풍이다. 햇빛과 물과 바람이라는 게 얼핏 듣기엔 참 간단하기는 하지만 식물의 종류나 상태, 식물이 놓여 있는 환경에 따라 화초마다 원하는 범위가 제각각 달라서 섬세하게 신경을 쓰고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게 하나 둘 장비가 늘어간다.
베란다의 화초에 시원하게 물을 뿌려줄 수 있는 길다란 호스라든지, 모종삽, 식물용 가위, 물조리개 등등. 그런데 또, 도구만이 전부가 아니다. 이 세상에는 흙의 종류도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식물이 시들시들하거나 벌레가 생겼을 때 처리해주어야 하는 약품의 종류도 다양하고, 무럭무럭 자라는 마음에 가끔 챙겨주면 좋다는 식물 영양제도 검색을 하다보면 끝도 없다.
내가 키우는 화초에 잘 맞는 크기의 화분을 사서 마음에 드는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고, 하루에 몇 번 빛을 쬐어주는 정성을 기울이면 쑥쑥 잘 자라고 새 잎을 내어놓을 때의 보람과 뿌듯함은 꽤 긍정적인 에너지를 준다.
사실 이 세상 모든 취미 생활에는 이른바 '장비병'이 있기 마련이다. 식집사에게 장비병이란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내가 키우는 풀과 나무와 꽃의 생명과 건강을 위한 장비라고 생각하니 선택에 좀 더 신중해지고 정성을 기울이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아닌 어떤 대상을 위해 챙겨주고 마음을 기울이게 되는 일을, 이렇게 식물을 기르며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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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https://brunch.co.kr/@writeur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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