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축제가 끝나고 난 뒤 우리는

이가현 2022. 12. 3.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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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현 온라인뉴스부 기자


이태원 참사 이후 한 달이 지났다. 월드컵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우린 참사가 남긴 상처를 잠시 잊은 듯 보인다. 진통제를 맞은 것처럼 말이다.

희생자 유족과 생존자, 그리고 그들의 고통에 공감했던 시민들이 끔찍한 상처에서 회복됐으면 하고 바란다. 그렇다고 이 일을 쉽게 잊었으면 하는 말은 아니다. 월드컵이란 축제가 끝나고, 크리스마스와 연말의 들뜬 분위기가 걷히고 났을 때 냉정한 현실을 마주하는 일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있어서는 안 됐을 그 일을 잊지 않고, 이후에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고민하는 것. 그걸 희생자 유족과 생존자들의 몫으로만 남겨둘 수는 없다.

괜한 노파심을 부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참사 이후 기사 반응을 통해 본 여론의 변화는 우려할 만한 것이었다. 물론 기사 조회 수와 댓글 반응이 여론을 온전히 반영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일련의 흐름을 보여주는 역할은 할 수 있다.

참사 이후 일주일간 관련 기사의 조회 수는 폭발적이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반영된 결과였다. 댓글 반응 또한 정부의 무능한 대처를 비판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이슈마다 달리 나타나는 포털별 사용자 반응 차이도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그리고 2주가 지나고, 3주가 흐르자 조금씩 댓글에는 희생자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서울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오열하며 윤석열 대통령의 화환을 쓰러뜨린 유족을 향해 “또 시작됐다”며 비아냥대는 댓글이 달렸다. 그리고 거기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공감을 눌렀다. 희생자 고(故) 이지한 배우의 모친이 애끊는 심정으로 아들에게 쓴 편지가 공개됐을 때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댓글은 일부 사용자가 과대 대표되는 경향이 있다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기사 조회 수는 여론이 어떤 이슈에 관심이 있는지에 대한 대략적인 지표가 된다. 참사 직후 약 2주간 사람들은 이태원 참사 관련 기사에 큰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 이태원 참사 관련 기사를 사람들은 잘 읽지 않고 있다.

한 이슈가 발생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그 속도가 예상보다 너무 빠르다는 점이다. 아직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윤 대통령의 엄호 아래 아직도 직을 수행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 장관의 거취 문제와 국정조사 카드를 놓고 지난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경찰은 용산서장, 용산구청장, 이태원역장만 여러 차례 소환했을 뿐이다.

왜 자기 일처럼 오래도록 애도하지 않느냐고 하는 게 아니다. 이 사건이 제대로 수사되고 종결되려면 삼엄한 감시가 있어야 하는데, 그 감시망이 너무 빨리 허물어지고 있는 것 같다. 아무리 권위적인 정부라 할지라도 가장 두려운 것은 결집된 여론이다. 거대 야당이나 언론의 비판에 비할 수 없다. 이 참사는 간명하다. 정부가 해야 했을 일을 안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책임을 지는 자리에 있는 대통령과 장관이 참사 이후 보여주고 있는 태도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이미 학습된 바가 있어서 더욱 걱정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태원 참사가 세월호 같은 전철을 밟게 될까 우려스럽다. 세월호 참사 이후의 양상도 비슷했다. 물론 이태원 참사보다 여론의 변화가 늦게 나타나기는 했다. 진상 규명은 더뎠고, 그사이에 여론은 여러 갈래로 나눠져 일부는 유족을 악마화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결국 세월호의 상처는 제대로 치료되지 못한 채 얼기설기 봉합돼 아직도 아픈 상흔으로 남아 있다. 이태원 참사도 비슷하게 흘러갈 것이라는 회의, 세월호를 통해 학습된 무기력에 사람들이 갇힐까 두렵다. 이를 경계해야 한다.

이태원 참사 유족들은 지난 28일 유가족협의회를 만들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사건 초반 연락처를 공유받지 못해 각자 흩어져 있던 유족 60여명이 일단 모였다. 진상 규명은 이제 시작 단계다. 우리는 유족의 외침으로만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걸 안다.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있어야 동력을 얻는다. 여기에 정치권이 국정조사처럼 해야 할 일을 제때 해준다면, 우리는 세월호의 뼈아픈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축제가 끝나고 나면 다시 같이 아픈 현실을 직면하자. 10월 29일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만의 일로 외롭게 남겨두지 말자.

이가현 온라인뉴스부 기자 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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