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위대한 알코올중독자’<62>] 금주 투사의 노래

데스크 2022. 12. 2.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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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주> 우리나라는 음주공화국이라 할 만큼 음주에 관대한 사회입니다. 반면, 술로 인한 폐해는 매우 심각합니다. 주취자의 강력범죄가 증가하고 알코올중독자가 양산됩니다. 평화로운 가정과 사회가 풍비박산나기도 합니다. 술 때문에 고통 받는 개인과 가정, 나아가 사회의 치유를 위해 국가의 음주·금주정책이 절실하게 요청됩니다. 술은 야누스의 얼굴을 가졌습니다. 항상 경계해야 하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들려드립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62화 금주 투사의 노래


“석규 네 말이 맞았네.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금주정책을 의도적으로 회피한다는 네 말에 긴가민가했었는데 이제 보니 요점을 정확하게 짚은 분석이었어.”


블랙&화이트에 앉아 자초지종을 듣고 난 이철백이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김석규의 지인들이 걱정과 위로의 마음을 담아 마련한 차담회였다.


“그렇다면 금주운동이 일어난 김에 금연까지 잡겠다며 담뱃값 인상했던 건 뭔데. 그건 정부에서도 금주정책에 대한 의지가 있었다는 방증 아냐?”


“금주정책에 대한 의지가 있었던 게 아니라 담뱃값 인상을 위한 들러리가 필요했던 거야. 뿐만 아니라 음주조장론을 불식시킬 수 있는 좋은 건수였고. 졸지에 나는 완전히 토사구팽 당한 거지.”


한종탁의 의문을 김석규가 깔끔하게 정리해 주었다.


“볼테르가 이렇게 말했지. 나는 당신의 사상에 찬성하지는 않지만 당신이 부당하게 탄압 받는다면 당신을 위해 싸우겠다. 그처럼 나도 석규의 금주운동에 찬성하지 않지만 석규가 부당하게 탄압 받는다면 석규를 위해 싸우겠어!”


이철백이 주먹을 불끈 쥐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나도 금주운동에 반대하지만 석규가 부당하게 탄압받는다면 석규를 위해 술을 줄이겠어!”


“석규 씨를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을 위해서 술 줄이는 거지.”


한종탁의 선언에 아내 노지연이 기가 끅 찬다는 듯 대꾸했다.


“이렇게 좋은 일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쪽박은 깨지 말아야지. 우리도 김석규 소장에게 한

표를 던지겠어.” 임봉식과 아내 정수진의 지지 발언에 덧붙여, “금주 운동에 내심 찬성하고 있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더욱 찬성해야 할 거 같아요.” 방선희의 말이 이어졌고, “당신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해봐.” 김석규의 아내 박미옥의 지원사격이 대미를 장식했다. 블랙&화이트는 시나브로 김석규 금주운동가의 장도를 격려해주는 출정식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김석규는 방송활동 정지는 물론 정부 부처와 대기업, 지자체에서의 강연마저 잇따라 취소되면서 본의 아니게 여유 있는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자 김석규는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속담처럼 이번 참에 차분히 자신의 금주운동 사상과 활동, 최근의 탄압사례를 엮어 책으로 펴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좋아!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내가 음주와 비평사의 강용태 사장을 소개해 줄게.”


김석규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조해주며 이철백이 일사천리로 집필을 위한 다리를 놓아주었다.


김석규는 이철백의 도움을 받아 집필하면서 SNS에 틈틈이 자신의 근황을 알려나갔다. 자신의 활발한 금주운동 전개로 술집 경기가 침체되어 경제지표가 하락하자 손발을 묶어놓을 목적으로 당국의 탄압이 있었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자신은 저작을 통해 금주운동을 더욱 확산시키겠다. 조만간 출간될 책 제목은 ‘금주운동에서 금주투쟁으로, 역전의 용사 김석규’다. 여러분의 기대와 성원 부탁드린다.


SNS를 통한 홍보 전략은 음비 사장 강용태의 아이디어였다. 김석규는 집필에만 매진하고 이철백은 SNS 홍보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고 강용태는 언론에 한번이라도 더 소개될 수 있도록 기자인맥을 총동원했고 야당 국회의원들과 재야 시민사회단체 대표들과의 접촉도 늘려나갔다. 본의 아니게 제도권의 금주운동가 자리에서 밀려난 김석규가 재기하는 길은 재야의 금주투사가 되는 것이었고, 그러자면 진영논리에 편승하는 게 낫다는 것이 강용태의 판단이었다.


국가가 경제 활성화를 위해 음주를 조장한다며 김석규가 제기한 음모론은 정작 본인이 방송과 강연에서 불이익을 받게 됨으로서 설득력을 얻었고, 김석규는 SNS를 기반으로 금주투사 이미지를 구축해 나갔다. 또한 강용태의 판단이 적중하여 야당과 시민사회단체에서 정부여당을 공격할 빌미로 금주운동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도 들려왔다. 그러는 와중에 김석규의 저작이 출간되어 마치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부은 듯 금주운동이 힘을 얻었고, 김석규는 단연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야당과 시민사회에서는 과도한 음주가 정부여당을 도와주는 것이란 인식이 팽배해지자 회식자리에서 술병을 치우는 등 공개적인 음주행위를 지양했다. 그리고 금주와 절주 정책을 당장 시행하라며 정부여당을 압박했고 대대적인 범국민대회를 예고했다. 김석규는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금주․절주를 위한 범국민대회에 연사로 초빙 받아 사자후를 토했다. 스스로를 탄압받는 민주투사로 상정하자 문득 가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광장에 운집한 인파는 김석규의 열변에 시청이 떠나갈 듯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를 보내주었다.


인산인해를 이룬 군중 속에 민정호 서기관도 있었다. 민정호는 차관의 지시를 받고 김석규의 동향을 감시하고 있었다. 민정호는 김석규의 연설을 들으며 공직자로서의 무기력함과 자괴감을 동시에 느꼈다. 박정희 시대에 국가경제를 위해 국민이 희생해야했던 것처럼 아직도 국가경제를 위해 국민건강이 희생되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기만 했다. 민정호는 김석규의 자문 해촉을 요구하는 청와대 행정관 김우환에게 적극적인 반대의견을 개진하지 못하고 슬그머니 동의해준 자신을 책망했다.


김우환은 3개월 전에 민정호를 찾아와서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는 속담처럼 금주운동이 일어난 김에 금연운동을 전개하자며 담뱃값 인상을 거론했다. 이에 민정호는 반색하며 담뱃값 인상뿐만 아니라 흡연경고 사진 게재도 요청했다. 흡연경고 사진 게재란 담뱃갑 앞뒷면 상단에 폐암, 후두암, 구강암, 심장질환 등의 혐오스러운 장면을 노출시킴으로써 흡연자의 욕구를 감퇴시키자는 게 그 목적이었다.


하지만 김우환은 경고 사진 게재는 재정부에서 완강하게 반대하는 사안이라며 담뱃값 인상만을 의제로 삼자고 했다. 평소 재정부에서는 담배세입 감소를 우려해 담뱃갑에 경고 사진을 게재하는 것을 반대해 왔었다. 민정호는 담뱃값 인상 역시 금연으로 이어져 세입감소를 야기하는데 그건 재정부에서 반대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김우환이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대답했다.


“재정부에서 2천원 인상안은 동의를 하기로 했어요.”


“2천원 인상으론 금연효과가 전혀 없습니다. 담뱃값이 최소 8천원 이상은 되어야 실질적인 금연효과가 있습니다.”


민정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모 연구원의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2천원 인상’은 금연정책이 아니라 세입정책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2천원 인상’은 세입을 가장 많이 증대시킬 수 있는 꼭짓점인데 그 이상이 되면 세입이 오히려 감소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8천원 이상이 되면 세입 감소가 최고치가 되는데 이는 곧 실질적인 금연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했다.


“담뱃값을 당장 8천원으로 올려보세요. 여론이 가만있겠어요? 이번엔 2천원만 인상하고 다음을 기약하기로 합시다.”


김우환이 시뮬레이션 결과를 전혀 모르는 것처럼 능글맞게 말했다.


“우리 부에서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래요?”


민정호의 확고한 거부 의사에 김우환이 불쾌한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김우환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느니, 잘 검토해 보라느니’ 하는 의례적인 말도 하지 않고 곧장 나가버렸다. 일개 서기관에게 거절당하리라고 예상하지 못한 듯 단단히 화가 난 모습이었다.


박태갑 소설가greato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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