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함대' 격침한 일본, 축제 분위기 물씬
아시아 최초 2회 연속 16강 진출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 독일전 이어 교체 카드 승부수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일본이 '전차군단' 독일에 이어 '무적함대' 스페인까지 격파했다. 이로써 일본은 2018 러시아월드컵에 이어 2회 연속 월드컵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이는 아시아 국가 최초의 기록으로 '사무라이 블루' 일본 축구가 다시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이 이끄는 일본 축구 대표팀은 2일 오전 4시(이하 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칼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열린 스페인과 2022 카타르월드컵 E조 조별리그 최종 3차전에서 도안 리츠(프라이부르크), 다나카 아오(뒤셀도르프)의 연속골에 힘입어 2-1 역전승을 거뒀다.
이날 경기에서 스페인은 일본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였다. 볼점유율에서 8대2 수준으로 스페인이 앞섰다. 이에 하지메 감독은 교체 카드를 꺼내들고 일종의 승부를 걸었다. 오른쪽 공격수로 나선 구보 다케후사와 왼쪽 윙백 나가토모 유토를 빼고 공격수 도안 리쓰와 미토마 가오루를 투입했다. 후반 3분 만에 교체로 들어간 도안은 동점 골을 터뜨렸다. 자신감이 붙은 일본은 3분 뒤 역전 골까지 이끌어냈다. 도안이 페널티 지역 오른쪽에서 찔러준 패스를 미토마가 연결했고 이를 다나카가 슈팅해 역전골로 만들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하지메 감독의 용병술이 다시 한번 빛났다는 해석도 나온다. 지난달 23일 독일과의 경기에서 하지메 감독은 후반 10분 만에 교체 카드 3장을 사용했다. 이어 후반 28분 2명을 추가로 교체 투입하면서 교체 카드를 모두 사용했다. 결과론적인 평가지만, 하지메 감독의 이른바 '교체 카드 승부수'는 성공했다. 경기 직후 그는 "축구는 경기하지 않으면 결과를 모른다. 지금까지의 세계 축구를 생각하면, 오늘의 승리는 '서프라이즈'라고 하는 것 생각하지만, 일본 축구의 레벨은 세계에 가까워지고 있다"라고 말해, 독일을 상대로 한 승리는 우연이 아닌 실력임을 강조했다.
유럽 전통의 강호 독일에 이어 스페인까지 꺾으며 '죽음의 조'로 불린 E조에서 1위로 16강에 진출한 일본이지만, 과거 성적은 형편 없었다. 일본 축구는 1990년 J리그 출범을 시작으로 세계 무대에 등장했다. 첫 출전한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일본은 조별리그 세 경기 전패를 당했고, 이후 일본은 조별리그 탈락과 16강 진출을 번갈아 경험한다. 2006년에는 단 1승도 거두지 못해 조 최하위를 기록했고, 2010년에는 16강에 올랐지만 승부차기에서 탈락했다. 2014년에는 승점 1점을 거두는 데 그쳤으며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일본은 8강 진출을 눈앞에 앞두고 벨기에를 상대로 2-0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결국 2-3으로 역전패했다.
당시 감독은 하지메 감독으로 국민적 비난에 직면했으나, 도시마 고조 일본축구협회장의 전폭적인 지지로 감독직을 유지한다. 고조 회장은 "일본의 장점을 살려 '일본 다움'을 내는 것이 필요하다"라며 하지메 감독 선임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그렇게 신임을 얻은 하지메 감독은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 일본 스타일의 축구를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빠른 기동력을 무기로 패스를 하며 전방을 압박하며 골 기회를 노리는 일본 축구는 이미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전술이다. 그러나 여기에 허를 찌르는 선수 교체와 용병술이 맞물리면서, 아시아 국가에서는 최초로 2회 연속 16강 진출이라는 기록을 만들어냈다.
사실 하지메 감독의 이런 극적인 용병술은 처음이 아니다. J리그 산프레체 히로시마에서 감독 경력을 시작한 그는 국제축구연맹 (FIFA)에 따르면 4-3-3과 5-4-1 전술을 바꿔가며 사용했다. 국가대표팀 감독이 된 이후에는 4-2-3-1 전술, 또는 팀 에이스가 최전방 공격 라인에 가담하는 4-4-2와 비슷한 전술을 가동했다. 이런 그의 작전은 상대 전술에 탄력적이고 효과적으로 대응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는 독일전을 승리로 끝낸 뒤, 언론 인터뷰에서 "여러 가지 계획을 구상한 가운데 경기에 돌입했다. 잘못되었을 때의 준비도 하고 있었다. 한 점 차 승부가 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침착하게 후반에 경기 운영을 바꿔 승부를 걸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여기에 또 다른 승부수, 해외파를 과감하게 줄이는 일종의 세대 교체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 축구의 스타일로 잘 알려진 일명 '패스 축구'는 여럿이 협동해 공격하며 유기적인 호흡을 맞추는 것이 필수다. 그러나 해외파는 경기 중 스타 플레이어가 될 수 밖에 없고, 조직력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 하지메 감독의 생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그는 이번 카타르 월드컵을 앞두고 철저히 본인 취임 후 평가전에서 실험한 선수 위주로 뽑았다. 그는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컨디션적인 부분과 젊은 선수들로의 세대 교체를 고려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런 기준으로 하지메 감독이 발탁한 아사노 다쿠마는 독일과의 경기에서 후반 37분에 교체 투입, 강한 오른발 슛으로 역전골을 만들어냈다.
일본 열도는 현재 축제 분위기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하지메 감독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승리를 축하했다. 기시다 총리는 "모리야스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국민이 용기와 기운을 얻었다. 진심으로 승리를 축하한다'고 전했다"며 "모리야스 감독은 '일본의 모든 이들에게 용기와 기운을 전할 수 있어 매우 기쁘다'고 대답했다"고 통화 내용을 소개했다.
한편 일본은 F조 2위로 16강에 오른 크로아티아와 8강 진출을 다툰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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