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나뒹구는 대통령 조화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

2022. 12. 2.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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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원·청란교회 목사, 동서대학교 석좌교수(가족생태학), 하이패밀리 대표

화환(花環)은 둥글게 고리로 만든 꽃을 말한다. 크리스마스 무렵, 문 앞이나 벽에 걸어 두었다. 리스(wreath)다. 악령을 쫓기 위해 사용되었던 화환이 우리나라에서는 장례식의 조화(弔花)로 쓰인다. 처음에는 1단짜리가 2단짜리로, 지금은 3단짜리로 커지면서 부와 권력의 상징이 되었다. 집안이나 인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고인보다 조화에 나부끼는 리본의 이름 석 자와 직함이 중요해졌다. 장례식장은 국회의원, 지자체장 등 정치인들에게 자신을 광고하는 데 적격이었다. 가성비 뛰어난 홍보 수단이 되었다. 기막힌 짝짜꿍이었다.

이런 3단짜리 조화가 결혼식장에서는 축하화환으로, 행사장에서는 행사화환으로, 요즘은 검찰청 앞에 전시되어 응원과 연대를 위한 수단으로 소비되고 있다. 2020년 발표된 한 조사에 의하면 국내에서 유통된 근조화환은 388만개, 축하화환은 대략 202만개다. 여기에 행사화환 100만개를 더하면 690만개의 화환이 국내에서 소비됐다(‘화환 유통체계 개선방안’, 단국대).

근조화환 한 개에 쓰이는 국화는 대략 100송이, 축하화환에는 색이 선명한 거베라 65송이가 쓰인다. 줄잡아 꽃값은 약 7000억원에 이른다. 그 가운데 약 50~60%가 재활용되고 있다. 말 그대로 꼴값하는 셈이다.

지난 10·29 핼러윈 참사 때도 어김없이 대통령의 조화가 전달되었다. 하지만 유족들에 의해 내팽개쳐 나뒹구는 꼴 사나운 모습을 보아야 했다. 나는 정확히 그 조화의 모습에서 조화의 운명을 보았다. 맞다. 조화는 죽어야 한다. 그래야 산다. 본래부터 우리나라 전통 장례에는 아예 꽃이 없었다. 꽃은 재배되지도 않았고 유교 예법과 꽃은 거리가 멀었다. 일본에서 수입된 문화가 어느새 3단짜리 조화로 굳어졌다.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혹자는 그러면 화훼업자는 어떻게 되냐고 주억거린다. 안다. 문제는 꽃 소비가 국화에만 한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돈은 화훼업자가 아닌 유통업자가 벌고 있다. 오히려 다양한 종(種)의 꽃들이 소비되는 게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 꽃은 고인과의 추억이나 꽃말에 따라 조문객이 준비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상주가 국화꽃을 미리 준비해 둔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건네준 국화를 고인에게 바친다. 그것도 한 번 주었으면 그만이지 ‘주었다 빼앗다’를 반복한다. 코미디 중 코미디다. 망자가 배꼽 잡고 웃을 일이다.

이제 이런 무의미한 허깨비 조문을 접어야 한다. 조문이나 애도의 방식은 천 사람이면 천 가지 방식이 있다. 미국의 전 대법관 긴즈버그 장례식에서 일이다. 한 남성이 찾아와 들고 있던 종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세 차례의 팔굽혀펴기로 조의를 표했다. 이날 찾아온 대다수 사람이 고개를 숙이거나 손으로 십자가를 그으며 애도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조문이었다. 주인공은 긴즈버그의 ‘20년 지기’ 개인 트레이너 브라이언트 존슨이었다. 긴즈버그의 운동을 도왔던 그로서 할 수 있는 최상의 애도였다. CNN은 “존슨이 고인이 된 긴즈버그에게 (둘만의) 딱 맞는 방식으로 조의를 표했다”고 보도했다.

영화 ‘태이킹 챈스’(로스 카츠 감독, 케빈 베이컨, 톰 앨드리지 출연)에서 명 장면 중 하나가 소대장의 애도 편지다.

“친애하는 펠프스 귀하,
지금 챈스 일병의 죽음을 전달받으셨으리라 여깁니다. 귀하의 상심에 뭐라 전할 위로의 말이 없지만 저와 저의 소대원 모두의 조의를 전하고자 합니다. 부모님이 어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믿어 주십시오. 소대장인 저에겐 챈스는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해병의 허세가 아닌, 조용히 그의 임무에 충실한 챈스였습니다. 그를 폄하하는 사람이 있어도 그는 웃는 모습으로 그것을 무색하게 하였고, 치열한 전투 속에서도 전우애를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명예로운 챈스 펠프스 일병을 위하여 이 자리에 함께했습니다. 영웅은 세상을 달리하였지만, 그는 영웅으로 살아 함께합니다. 아이러니하지만 저는 확신합니다. 미 해병뿐 아니라 이 세상은 더 많은 챈스 펠프스와 같은 이가 필요할 것입니다.”

배철현 교수는 말했다. ‘기억(記憶)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최고의 예의’라고. 기억을 통해 그 대상이 부활한다. 이때 기억을 소환시키는 것은 그 흔해 빠진 싸구려 조화(弔花)가 아니다. 이야기다. 내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기억하며 우리는 비탄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삶을 창조해 나가게 된다. 그 이야기가 사회 공감이 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는 말은 요기 베라 감독의 야구 명언이다. 뜻밖에도 이 말은 장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장례는 끝났지만 애도는 계속된다. 이별에서 슬픔을 제거해버리는 마법은 없다. 울음이 멈출 때까지, 기억이 희미해질 때까지 애도하며 작별하는 것만이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애도는 슬픔이 가라앉을 때까지다.

10·29 핼로윈 참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유가족들의 아픔은 장례가 끝난 다음부터 시작된다. 신발 하나 치울 수 없다. 그가 살아 돌아오면 신발이 있어야 해서다. 과태료를 물고서도 못하는 게 자식의 사망 신고다. 사랑하는 자식이 진짜 사라지는 것 같아서다. 아프고 시린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의 장례에는 이야기가 없다. 대통령실은 아마도 이런 일을 하라고 사회공감 비서관 자리를 둔 것 같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나도록 그 자리 하나 채우지 못하고 있다. 조타수 없는 배가 어디로 갈 것인가. 막막하다.

한국 사회는 참사가 반복됐다. ‘서해 훼리호 침몰, 성수대교, 대구지하철, 삼풍백화점, 천안함, 세월호….’ 지난 40여년 동안 40여건의 대형 참사였다. 앞으로도 또 어떤 일이 가슴을 치게 할는지 알 수 없다. 그때마다 대통령 조화가 나뒹구는 꼴을 보아서는 안 된다. 대통령실의 분발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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