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월드컵의 ‘존중’, 한국에선 무리인가

고세욱 2022. 12. 2.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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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세욱 논설위원


카타르월드컵으로 연일 눈과 귀가 즐겁다. 스타들의 활약, 아시아팀의 선전, 처음 선보인 반자동 오프사이드 판독기술이 풍성한 화제를 낳았다. 경기 외적인 재미도 쏠쏠하다. 국가 연주 때 침묵한 이란 선수들을 통해 히잡시위와 정권의 탄압이 세계에 재차 각인됐다. 성소수자 차별, 이주노동자 인권, 친환경도 화두로 떠올랐다. 축구공에 세계의 정치, 경제, 외교의 일단이 소소히 녹아들어간 현장. 지구촌 최대 축제의 영향력을 실감한다.

월드컵은 우리가 잠시 잊고 있던 가치도 일깨워줬다. 스포츠맨십의 핵심인 ‘존중(respect)’이다. 방탄소년단(BTS) 정국은 개막식에서 공식 주제곡 ‘Dreamers’를 통해 “이곳은 열정과 존중을 지키는 사람들의 것이야(Here's to the ones, that keep the passion, respect)”라 외쳤다. 월드컵이 존중으로 시작됨을 알렸다.

우루과이 수비수 디에고 고딘은 지난 24일 한국과의 경기 후 손흥민의 성치 않은 얼굴을 어루만지며 격려했다. 안와골절에도 조국을 위해 헌신한 선수에 대한 안쓰러움과 존중이 담긴 ‘쓰담’이었다. 29일엔 잉글랜드의 조던 핸더슨이 경기 도중 웨일스 선수의 뇌진탕 증세를 발견하고 상대 벤치에 이를 먼저 알렸다. 정치적 앙숙인 미국과 이란은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에 맞붙었다. 패한 이란 선수들이 하염없이 울자 미국 선수들이 이들을 포옹했다. 경쟁 중인 선수를 적이 아닌 함께 그라운드를 누비는 동료로 존중하기 때문에 나온 모습들이다. 승패의 길목에서도 스포츠 정신을 구현하려는 움직임은 뭉클하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우리나라에서 존중은 월드컵이나 스포츠의 틀 밖에선 힘을 못쓴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노사, 세대, 남녀, 정규직-비정규직 사이에서 ‘남을 돕고 배려한다’는 게 ‘상대만을 이롭게 한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극단 풍조가 퍼져 있다. 지난 18일 국회 운동장에서 여야 친선 축구대회가 22년 만에 열렸다. 경기에 참여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에게 “지금 시국에 이럴 때냐” “정신차려라”는 악플이 쇄도했다. 친선이라는 낮은 수준의 동행도 욕을 먹는 판이다. 상대를 존중하며 역지사지하는 거국적 협력은 어불성설이다.

그래서일까. 사회 각계의 갈등을 조정하고 의견 수렴을 하는 정치의 기능은 사라지고 벼랑끝 승부와 진영논리의 사고만 팽배해졌다.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하루가 멀다하고 ‘전례 없는’ 갈등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비속어 파동, 특정 언론사의 전세기 탑승 배제, 야당 지도부 외면, 대참사 후 인적 쇄신 모르쇠는 과거 정권에선 볼 수 없던 일이다. 안정적 리더십을 위해선 타협, 설득의 기술과 인내가 필요한데 일방 통행만 고집한다. 전에는 지지율이 낮으면 국민 눈치라도 봤건만 윤 대통령은 거침이 없다. 존중보단 기선제압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게 이득이라 여기지 않고선 작금의 현실을 설명키 어렵다.

야당도 물러섬이 없다. 대통령의 무대뽀 정신에 막가파식 응전만 내세운다. 사법리스크에 노출된 당 대표를 보호하기 위해 진흙탕 싸움을 마다 않는다. 한 손엔 가짜뉴스, 한 손에는 쪽수다. 대통령을 공격하기 위해 외국 대사 말을 날조하고 첼리스트의 거짓말까지 동원한다. 중동 특수를 기대할 네옴시티 진출을 엑스포와의 빅딜설로 분탕질한다. 국익이 대수냐는 투다. 야당의 대선불복성, 편가르기용 예산 편성 시도를 보면 국민이 준 다수 의석이 이렇게 오용될 수 있구나 절감한다. 이러는 사이 경제는 서서히 침몰 중이다. 무역수지 적자는 25년래 최장으로 치닫고 내년 성장률은 1%대로 주저 앉을 전망이다. 금융시장의 돈맥경화는 좀처럼 풀릴 기미가 없다. 금융·실물의 복합위기 속에서 정치권은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 대응이 더 급해 보인다. 파업이 줄지어 대기 중이다. 나라가 굴러가는 게 신기할 정도다.

격리된 채 월드컵을 시청하던 중국인들은 마스크 없는 수많은 관중들을 보고서야 ‘현타(현실 자각)’가 왔다. 당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에 의문을 품었고 백지 시위로까지 이어졌다. 월드컵의 나비효과다. ‘존중’이라는 월드컵 가치가 우리 사회에도 비슷한 파장을 일으킬 수 있을까. 현실을 봤을 때 씨알이 먹히겠냐마는 이 기회에 한 사람 한사람의 자각이 쌓였으면 싶다. 증오·혐오·진영이라는 한국의 병적 현상에 실금이라도 그어지면 그 자체로 월드컵은 축복이다.

고세욱 논설위원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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