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가요계, 아무것도 없다

입력 2022. 12. 2.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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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지난 몇 주간 대중음악과 관련된 뉴스를 보는 마음이 더없이 씁쓸했다. 냉장고에서 화려한 포장에 싸인 유통기한 지난 식품을 하루가 멀다고 발굴하는 기분이었다. 그 가운데 가장 뜨거운 화제는 가수 이승기와 소속사 사이에 벌어진 음원 수익 불공정 배분 공방이었다. 이승기가 소속사에 보낸 내용증명으로 세상에 알려진 사건 내용은 사뭇 충격적이었다.

지금이야 방송인으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그가 고등학교 시절 ‘내 여자라니까’로 데뷔한 가수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없다. 아직도 전국 방방곡곡의 연하남에게 사랑받고 있는 이 노래를 부른 이승기가 18년 동안 발표한 노래 137곡으로 정산받은 총금액은 다름 아닌 0원이었다. 음원 판매로 발생한 100억원 넘는 수익에 대한 최소한의 정산도 이뤄지지 않은 것이었다. 여기에 이승기를 비롯한 관련 스태프를 향한 소속사 대표의 가스라이팅 및 폭언에 대한 문제도 불거졌다. 상식을 벗어난 처사에 많은 이들이 허탈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속 답답한 일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해가 다르게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는 세계 속의 K팝 시장에서 벌어지는 양상도 기기묘묘 그 자체였다. 여성 그룹 이달의 소녀 소속사는 지난 25일 공식 팬카페에 공지 하나를 올렸다. 멤버 츄가 앞으로 더 이상 그룹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공지문에 쓰인 표현이 이상했다. 일반적으로 멤버 관련 공지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 제명과 퇴출이라는 표현이 강조돼 쓰였고, 폭언과 갑질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공지보다는 폭로처럼 보이는 공지문이 부른 파문은 일파만파로 퍼졌고, 며칠 뒤 일부를 제외한 그룹 멤버 대부분이 소속사를 상대로 전속계약 효력 정지 가처분신청을 냈다는 추가 보도가 이어졌다. 독자적 세계관과 완성도 높은 음악, 탄탄한 해외 팬덤으로 나름 자리를 잡아가던 6년 차 그룹의 이런 엔딩을 기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달의 소녀가 이런 상황에 놓이기 한 달여 전 남성 그룹 오메가엑스 사건이 있었다. 한 팬이 우연히 목격한 소속사 대표의 폭언 및 폭행 현장이 SNS를 통해 퍼지면서 공론화된 사건은 결국 대표 사퇴, 소속사 측의 멤버들을 향한 억대에 달하는 배상금 요구 내용증명, 여기에 반박하는 가수의 법률대리인을 대동한 공식 기자회견이 이어졌다. 11명 전원이 재데뷔 멤버로 구성돼 있어 그룹 활동에 대한 의지가 더 간절할 수밖에 없었던 데다 정신적·육체적으로 극한에 몰리기 쉬운 해외 투어 기간 일어난 사건이라는 점에 더 뒷맛이 썼다. 현지에서 사건이 터지자 해외에 체류 중인 멤버들의 귀국 항공편을 일방적으로 취소해 자신들의 사비를 털어 한국에 돌아오게 만든 소속사 에피소드까지, 어디가 연예계 바닥인지 보여주려는 쇼라고 해도 이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일련의 사건을 보고 있자면 도무지 의리가 없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짧게는 1년 반에서 길게는 18년까지, 이들의 관계 속에는 의무와 책임을 나눠지겠다는 마음으로 전속계약을 맺고 한 몸처럼 움직인 이들이 서로 마땅히 갖춰야 할 기본적 존중과 근본이 상실돼 있다. 수익이 발생하면 적절히 배분할 것, 계약이 끝나는 경우 특정 사건으로 촉발된 게 아닌 이상 ‘계약 해지’라는 사실 적시 이외의 추측 가능한 모든 언급을 삼갈 것, 함께 일하는 파트너를 노예로도 그렇다고 진짜 가족으로도 생각하지 말 것. 하나같이 딱히 어려운 것도 복잡한 것도 아닌, 그저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에만 충실했다면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영화 ‘베테랑’의 명대사 가운데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가 있다. 고 강수연 배우가 원조로 유명하기도 한 이 말은 돈보다 충무로 영화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지켜나가자는 의미를 담은 문장이었다. 이 말을 지난 몇 주 동안 일어난 한국 대중음악 사건사고에 적용해 보고 싶다. 돈은 있(어 보일지 모르)지만 가오는 없다. 가오만 없나. 의리도 상식도 멋도, 아무것도 없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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