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상의 시시각각] 윤 대통령, 마거릿 대처가 될 수 있을까
윤석열 대통령은 5월 첫 국회 시정연설에서 영국 전시내각 때 처칠과 애틀리의 '파트너십'을 거론했다. 갓 취임한 대통령의 협치 의지가 주목받았다. 그러나 최근 노동계에 대한 강경 대응을 보면 윤 대통령의 롤 모델이 윈스턴 처칠에서 마거릿 대처로 바뀐 듯하다. 대처는 고복지·고비용·저효율의 '영국병(病)'을 과감한 개혁으로 돌파했다.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가라앉던 영국을 서방 주요 국가로 다시 만들었다. 개혁 핵심은 기득권 노조와의 정면 대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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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성 노조와 정면 대결 선택 비슷
대처는 중산층 지지로 11년 집권
지지율 뒷받침돼야 개혁도 가능
」
1970년대 영국에서 노조의 위세는 하늘을 찔렀다. 1973~74년 탄광노조 파업은 에드워드 히스가 이끌던 보수당 정권을 무너뜨릴 정도였다. 그러나 노조의 과도한 투쟁은 국민, 특히 중산층을 질리게 했다. '불만의 겨울'이라 불리던 78년 말~79년 초 공공부문 총파업 사태가 그 정점이었다. 기차·버스·지하철이 모두 섰다. 진료를 거부당한 환자가 죽어나갔다. 여론의 70%가 "노조가 심각한 사회문제"라고 답했다. 79년 5월 총선에서 대처가 이끄는 보수당이 압승한 배경에는 이런 노동계의 '패착'이 있었다.
화물연대 파업에 업무개시명령이라는 초강수를 선택한 윤 대통령의 뇌리에도 '한국병'이라는 단어가 자리 잡고 있을 법하다. '법과 원칙'이야말로 새 정부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유시장과 민영화 강조, 공공부문 축소, 낭비적 복지의 효율화 같은 정책 기조도 대처와 윤 대통령이 닮았다.
그러나 이미지가 겹친다고 정치 여건까지 비슷한 건 아니다. 총선에서 세 번이나 승리하며 11년 동안 집권한 대처는 전후 최장기 총리라는 명예를 안았다. 그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임기 1기 때는 산업구조 조정으로 실업률이 폭증하면서 지지율이 20%대까지 떨어졌다. 때마침 발발한 포클랜드 전쟁(1982년)에서의 승리가 아니었다면 재집권이 힘들 정도였다. 대처의 개혁 성과가 수치로 확인된 것은 임기 2기인 80년대 중반이 돼서였다.
윤 대통령의 임기는 이제 4년 반 남았다. 당장 1년4개월 뒤엔 정권 후반기의 운명을 가를 총선이 기다리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노동·연금·교육 등 '3대 개혁'을 과제로 꼽고 있다. 개혁이라는 게 반발은 눈앞이고, 성과는 더디기 마련이다. 개혁 성과를 총선 전략으로 내걸기 힘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그 과제를 마냥 미적대면 보수층의 지지마저 잃을 가능성이 있다. 딜레마다.
영국병을 치유한 대처의 업적은 크지만 그늘도 깊다. 2013년 대처가 사망했을 때 노동자의 도시 리버풀에서는 "마녀가 죽었다"는 환성이 터졌다. 죽음 앞에서도 풀리지 않은 증오다. 그래도 대처가 과감한 개혁을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은 '미들 잉글랜드'라 불리는 중산층의 확고한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어떤가. 취임 6개월 현재 지지율은 30%대다. 당내 갈등, 인사 문제, 잇따른 태도와 말실수 등으로 지지층 다수가 이탈했다. 반대가 지지의 배를 넘는다. 돌아선 지지층 중 일부는 절대 비토(veto)가 되는 현상까지 관찰된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정치적 책임 회피, 언론에 대한 감정적 대응 등이 이런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내후년 총선에서 개혁의 '성과'보다는 여전히 개혁의 '필요성'을 앞세워 지지를 호소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상황에서 지지율마저 지지부진하면 어떻게 될까. 악재가 거듭돼도 지지율이 더 빠지지 않는 건 윤 대통령으로선 다행이다. 하지만 이에 만족하는 건 위험하다. 문재인 정부도 40% 콘크리트 지지에 만족하다 정권을 내줬다. '콘크리트'라는 말 자체가 탄력 회복성이 작다는 뜻이 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영국 노조가 대처를 도왔던 것처럼 지금 민주당은 당 대표 지키기에 올인하면서 윤 대통령을 돕는 형국이다. 그 반사이익이 사라지는 순간 윤석열 정부는 더 위험해질지 모른다. 이제 보고 싶은 것만 볼 게 아니라 봐야 하는 것에도 눈을 돌릴 때다.
이현상 논설실장 leeh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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