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딸<김주애>을 ICBM 앞에 세운 이유 [에버라드 칼럼]
미사일로 여성에 대한 반감 상쇄
9세 후계자, 수뇌부 불안정 반영
장남은 김정철처럼 후계자 제외
미사일로 여성에 대한 반감 상쇄
9세 후계자, 수뇌부 불안정 반영
북한이 지난달 18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을 시험 발사했을 때 국제사회의 관심은 화성-17형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옆에 서 있던 하얀색 코트 차림의 어린 딸 김주애에 더 쏠렸다.
북한의 김씨 일가는 대대로 가족사를 비밀에 부쳤다. 김정일이 많은 여성 사이에 여러 자식을 두었지만 주민들은 몰랐다. 김정일 사망 전 필자의 한 북한 친구가 김정일의 부인, 자녀들의 이름을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내가 알려주는 걸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바짝 당겨 앉아 이름들을 되뇌곤 했다. 김정일과 달리 김정은은 2012월 7월 관영 매체를 통해 부인 이설주를 공개했다. 자녀에 대해선 일절 알리지 않았다. 김정은은 딸 김주애를 왜, 지금 공개했을까. 이 정치적 행위의 목적은 무엇일까.
북한 매체에 따르면 화성-17로 북한의 미래 세대를 지키겠다는 김 위원장의 메시지를 전달하려 김주애를 등장시켰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자녀를 모두 불러 좋은 아버지 이미지를 부각하지 않았을까. 북한 매체는 김주애를 '존귀하신 자제분'이라고 표현했는데, 간부들의 눈에는 ICBM 발사 현장에서 김정은의 손을 잡고 있는 자녀가 후계자로 비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은-이설주 사이에 자녀는 딸 둘, 아들 하나가 있고 김주애는 두 번째 자녀라고 본다. 왜 첫째가 아닌 둘째, 그것도 딸을 후계자로 소개했을까. 열악한 북한 여성의 지위를 개선하려는 차원이라면 국제사회가 손뼉 칠 일이지만, 남성 우위의 봉건적 북한 사회에서 지도층의 반발을 무릅쓰고, 더구나 장남을 두고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힘과 군사적 힘을 보여주는 거대한 미사일 앞에 김주애를 세운 건 여자란 점을 상쇄하려는 노력은 아니었을까.
세습은 아직은 먼 훗날의 일이다. 어린 김주애를 이렇게 일찍 전면에 내세우면 따를 수 있는 문제들이 있다. 먼저 성장하면서 구설에 오를 가능성. 2001년 도쿄 디즈니랜드를 방문하려던 김정남(김정은의 이복형) 사례가 좋은 예다. 김정은의 마음이 바뀔 가능성도, 정권 반대 세력들이 후계자 주변으로 몰릴 위험성도 있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후계자 발표에 신중했던 이유다.
일련의 미사일 시험 성공으로 자신감이 충만한 김 위원장이 김씨 일가의 집권 지속은 물론 여성을 후계자로 지목할 정도로 정권 기반이 튼튼하다는 메시지를 대내외에 보내는 것이란 시각도 있다. 하지만 '왜 첫째 아들이 아닌 둘째를 지금 전 세계에 소개하느냐'는 질문에는 답이 되지 못한다. 정권 기반이 확고하다면 그의 선대처럼 왜 더 기다리지 못하는 걸까.
일각에선 김 위원장의 건강 문제로 일찍 후계자를 소개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이번 미사일 발사 전 31일간 김정은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설사 김정은이 오래 못 산다 해도 권력을 세습하기에 김주애는 너무 어리다. 동생 김여정에게 권력을 주고 가족의 안위를 보장받는 딜을 하는 시나리오가 더 설득력 있다.
아홉 살 딸을 카메라 앞에 세울 수밖에 없었던 다른 이유는 뭘까. 2010년 얻은 아들(정보가 맞는다면)이 지도자감은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김정일도 김정은의 형 김정철이 유약해 후계자에서 제외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도력을 판단하기에 열두 살은 너무 이르다. 그렇다면 신체적, 혹은 정신적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한 탈북자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전 연인 현송월과 사이에 아들을 하나 두었다고 한다. 현송월은 지금도 김 위원장을 종종 수행한다. 현송월과의 권력 다툼 속, 이설주가 김 위원장에게 김주애를 일찍 후계자로 공개하도록 압력을 넣은 건 아닐까. 만약 이설주의 아들에게 문제가 있다면 이런 주장은 더 설득력이 있다. 조선시대 궁궐 정치의 모습이다.
필자는 여러 번 북한 정권이 직면한 그러나 대책 없는 문제, 즉 경제와 코로나 등을 언급했다. 북한 수뇌부에 가장 큰 위협은 정권의 불안정성이다. 김주애의 출현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확립된 행동 강령을 철저하게 따르는 북한에서 지도자가 아홉 살 여자아이를 후계자로 언론 앞에 세우는 것은 매우 기이한 일이다. 북한 간부들도 놀랐을 것이다. 북한 정권 수뇌부에서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는 듯하다.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언젠가 알게 될 것이다.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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